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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 없다, 독선가는 있었다

회사돈 유용, 고질적 임금 체불, 호신용 총기제조설 등 폭로되며 폐업한 영구아트… 해고된 직원들이 말하는 십수년의 전횡과 불통

제878호
등록 : 2011-09-21 16:51 수정 : 2011-09-2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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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주억거렸다. “미안합니다. 그때는 미안했습니다.” 12년 전인 1999년 7월, 한겨레신문사 사옥에 영구아트 직원 50여 명이 들이닥쳤다. 영화 <용가리>의 해외 수출액이 부풀려졌다는 의혹을 제기한 <씨네21>의 기사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ㅅ씨도 그 안에 있었다. 그날 ㅅ씨는 <용가리>를 만들고 있었다. 미술실로 찾아온 심형래 대표는 “무조건 한겨레신문으로 달려가라”며 직원들을 떠밀었다. “남○○ 기자, 자폭하라” 등이 적힌 손팻말도 나눠줬다. “기사가 틀렸다는 생각을 한 사람은 별로 없었어요. 그냥 가라고 해서 간 거죠.” 가라고만 했지 왜 가야 하는지, 가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게 심 대표였다. 심 대표의 지시를 거스를 수 없었다. 심 대표는 당시 입버릇처럼 “일할 사람은 많다”고 말했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적으로 돌려세웠다. 심 대표는 ‘대한민국 신지식인 1호’였다. 영구아트의 공고가 나면 지원자가 몰려들었다.

영구아트 대표 심형래. 문화방송 제공
<용가리> 때부터 반복된 체불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들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 알아야 했어요. 괴수 만들고, 빌딩(미니어처)을 만드는 일에 빠져서 그런 판단을 할 수 없었어요. 그 일을 돈을 받으며 할 수 있다는 게 설렐 정도로 좋았죠.”

지난 9월8일 영구아트 미술실 미니어처팀 4명을 만났다. 길게는 14년, 짧게는 11년 동안 이들 모두는 20대를 영구아트와 함께했다. 한국 영화사에서 이들이 특별한 존재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영구아트의 전부였다.

영구아트는 폐업 상태다. 현재 출입이 차단돼 있다. “사실 무근”이라는 영구아트 쪽 반박이 있었지만, 영구아트 직원들은 심 대표로부터 폐업을 직접 통보받았다. ㅅ씨도 동료들과 함께 대표이사실로 불려가 폐업이니 살길을 찾으라는 말을 들었다. 폐업만이 아니다. 법원은 지난 5월 영화 <디워> 제작비와 관련해 현대스위스상호저축은행이 심 대표를 상대로 낸 대출금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피고는 은행에 25억5천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뒤늦게 방만한 경영에 대한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심 대표가 회사로부터 대출받은 돈이 십수억원에 달한다거나 심 대표가 도박을 위해 회사 돈을 공공연히 유용했다는 등의 주장이 회사 관계자들의 육성으로 나오고 있다. 다만 입증할 서류가 등장하지 않을 뿐이다. 영구아트와 관련해 내사를 진행하는 한 경찰 관계자는 “자료가 충분치 않은 상황”이라며 “심 대표의 사기업이었던 만큼 협조를 받아 수사를 진행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뷰한 ㅅ씨 등 4명은 지난 8월 동료들과 함께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남부지청에 심 대표가 임금과 퇴직금 8억여원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진정을 냈다. “아무리 힘들어도 함께 간다고 했으면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당일까지 수백억원이 들어가는 테마파크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들은 폐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 징후는 있었다. 너무 오래 묵어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임금 체불은 영화 <용가리> 때부터 있던 일이라….” 영화 <용가리> 개봉 뒤 회사가 어려워지자 영구아트 스태프들은 사표를 쓰고 나가야 했다. 당시에도 임금 체불을 견딜 수 없어 나간 것은 아니었다. “살길을 찾으라”는 심 대표의 말과 함께 쫓겨났다는 게 상황에 부합한다. 그 뒤로도 영화가 제작될 때마다 월 150만원이 조금 넘는 임금은 수시로 체불됐고, “살길 찾아 떠나라”라는 심 대표의 말은 반복됐다. 그때마다 ㅅ씨 등 4명이 버텨온 곳이 영구아트다. 이유는 간단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돈까지 주니까.” 이번에는 체불 기간이 이전과 달리 길어졌다. 2009년 3월부터 월급이 나오지 않았다. “그 이후로 두 번이 더 나왔지만 그것도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사람들만 본봉 100%를 줬어요. 나머지는 50%로 만족해야 했죠.”

“도박하러 정선까지 택시타고 가더라”

월급 없이 2년이나 버텼다. 일부는 밤에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일부는 퇴직금을 정산받기도 했다. 폐업을 주장하면서도 폐업을 믿고 싶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이들의 일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미니어처를 만드는 일이 좋아서 버틴 10여 년이었다. 이들을 화나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ㅅ씨 등은 “(인력을) 다 털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심 대표의 말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니들이 지금까지 한 게 뭐 있냐. 한 푼이라도 투자받아온 적이 있느냐”며 “나는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당당함에 화가 치밀어올랐단다.

“나이가 들어 쉽게 부릴 수 없는 스태프들은 다 쫓아내고 젊은 인력들을 다시 모아 해보겠다고 얘기하는데,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그때야 드는 겁니다. 십수 년 만에. 너무 늦었지만 말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심 대표가 다시 영화를 하면 우리 같은 희생자가 또 똑같이 나올 것 아닙니까.”

이들은 “(심 대표가 다른 것은 해도) 절대로 다시 연출을 해서는 안 된다”고 뜻을 모았다. “악한 캐릭터가 꿈꾸는 미래가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한 장면만 보여주자고 그렇게 말씀을 드렸지만 대화가 되지 않는 분이었죠.” <용가리> <디워> <라스트 갓파더> 등 영구아트가 만든 영화가 어떻게 보일지 알면서도 한 사람의 독단을 핑계로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던 자신들을 책망했다. <디워>의 미국 실패와 관련해 “영화 내용은 부족하지 않지만 미국의 불편한 교통 상황 탓에 어린이 관객을 모으기 쉽지 않아서 흥행에 실패했다”는 심 대표의 진단을 듣고도 더는 희망이 없음을 눈치채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했다.

연출력만 문제는 아니었다. 심 대표의 도박 의혹을 제기한 것은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기 전에 심 대표가 기업을 경영할 자질도, 도덕성도 없는 사람임을 알리기 위해서다. “회사는 월급을 주지 못하고 있는데 정선(카지노)으로 택시를 타고 달려가더라니까요. 경영진에서는 공공연히 시나리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것이니 이해하라고 직원들을 달랬어요.” ㄷ씨는 직접 최고위 경영진으로부터 심 대표의 도박에 대한 해명을 들었다. 그뿐만 아니다. ㄴ씨는 심 대표가 정선 카지노로 간 ‘3년 전 그날’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코엑스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디워>로 영상기술상을 받아서 미술실 직원들이랑 회식을 했죠.” 그날은 45회 대종상 시상식이 있던 2008년 6월27일 밤이었다.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심 대표는 서울에서 정선까지 요금을 흥정한 뒤 택시에 올랐다.

경영 부실이 폭로되는 것을 막으려고 문서 소각 작업을 벌였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지난 5월부터 경영지원팀 직원들이 회계 관련 서류를 직접 영구아트 한켠에서 태웠다는 것이다. 며칠 동안 일일이 전부 소각되는지를 확인해가며 담당 직원이 그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총기 제조설에 대해서도 새로운 얘기가 나왔다. 애초 2mm 합판을 뚫는 정도의 위력을 지녔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위력이 크다고 했다. “10mm를 뚫고도 남는 위력”이라고 말했다. 그 총은 어디에 쓰였을까. 미술실 관계자는 직접 심 대표의 책상 아래에 총집을 만들어 붙이기도 했다. 소품이 아닌 호신을 위해 불법적으로 제작된 것임을 방증한다.

특유의 도전정신으로 포장된 독선

심 대표의 프로젝트 가운데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것도 있었다. <디워>로 애국주의 논쟁이 일던 당시 “잠수함을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와 실제로 잠수함 미니어처를 만들었다. 이유는 “독도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잠수함만이 아니었다. 미술실에서는 잠수함에 들어갈 미사일을 만들기 위해 황 등 화약을 만들 수 있는 재료를 사들이기도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심 대표의 태도에 대해 주변의 만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때마다 심 대표는 “왜 안 된다고만 하느냐. 못해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니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 대표 특유의 도전정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려진 그 말은 사실 직원들에게는 불통을 의미했다.

2시간이 넘는 인터뷰 안에는 회한이 가득했다. 영화 <용가리> 시절을 물었다. 당시의 자료를 꺼냈다. “(영화 <디워>와 비교해) 삼류 에로비디오와 칸영화제 개막작 정도의 차이”라고 말했다. <용가리>에서는 실물과 흡사하게 만드는 데 주력했다면, 영화 <디워>에서는 단순 모형이 아닌 작은 축적의 건물을 축조했다. 폭파의 사실감을 위해 한옥·빌딩 등의 실제 제작 공법을 그대로 따랐다. 십수 년의 노하우에서 나온 것이었다. 직접 쌓아올린 노하우는 해외에서 먼저 알아봤다. ㅅ씨 등 미술실 스태프들은 <디워>가 미국에서 상영된 직후인 2008년 조지 루커스가 운영하는 영화제작사로부터 함께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조지 루커스 미술팀은 영화 스태프들에게는 꿈의 무대다. 영구아트가 만드는 미니어처와 컴퓨터그래픽(CG) 등은 시간·비용으로 추정해 할리우드에서는 불가능한 결과물이었다. 4명은 자신이 십수 년 동안 만든 조형물들을 일일이 기억해냈다. 영화에서 우리가 쉽게 지나치던 배경들이었다. 이물감을 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영화에 녹아들기까지 십수 년이 걸린 셈이었다.

“우리도 우리 기술이 아깝죠. 이젠 어디다 쓸 데도 없고.”

ㄴ씨 등 폐업한 영구아트의 인력들은 정작 영화 미술 쪽 일을 찾지 않고 있다. 인터넷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도 영화 일 쪽은 쳐다보지 않는다. “지긋지긋하다”는 말에 현재의 심경을 담았다.

ㄱ씨는 현재 일용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모델하우스에 들어가는 아파트 단지 미니어처 등을 만드는 일이다. 할리우드가 탐내던 기술자가 아파트 모형을 만들고 6분의 1짜리 가짜 소나무를 심는다. ㄷ씨와 ㄹ씨처럼 아예 미술과 상관없는 곳에 취직한 사람이 더 많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동료, 옷가게를 운영하는 동료도 있다. ㅅ씨처럼 드물게 영화 일을 이어가는 경우도 있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1인 제작 시스템으로 만든다. 미술실 스태프인 ㅅ씨가 만든 15분짜리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탱크보이>(2006)는 1시간30분짜리 <디워>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영화판 떠난 고급 인력

ㅅ씨는 또 한 편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준비 중이다. <로봇의 전설>(가제)은 인터뷰를 한 반지하 사무실을 제작 현장으로 삼고 있다. “상징으로 존재하며 실제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로봇을 누군가는 축제의 도구로 삼고, 어떤 사람은 권력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이야기”라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그가 만드는 ‘로봇의 전설’은 영구아트를, 심형래를 은유하는 세상인 듯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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