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6월23일 개봉했다. 11년간 제작해 10만 장의 그림이 쓰인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이 방학 한철을 휩쓸고, 국내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TV시리즈를 바탕으로 한 아동용 애니메이션이 겨우 명맥을 잇는 판에, 그 집념이 놀랍다. 은 2011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본선 진출작이다.
여기 또 하나의 작품이 있다. 한국인 감독이 인도의 인력거꾼을 촬영한 는 지난해 ‘다큐멘터리의 칸영화제’라는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 본선에 진출했다. 당시 네덜란드 언론의 가장 큰 주목을 받았지만, 올 12월에나 국내 개봉으로 접할 수 있다. 두 명의 ‘집념의 한국인’을 만났다. 을 그린 안재훈 감독과 를 찍은 이성규 감독. 때와 장소는 6월22일 을 만든 ‘연필로 명상하기’라는 애니메이션 공방.
“제작비 없으면 돈 벌어 다시 만들고”황진미(이하 황): 시사회에서 받은 ‘연필로 명상하기’ 홍보자료가 지극정성이라 놀랐다. 감독님 인상도 진짜 ‘연필로 명상하는’ 수도자 같은 느낌이 난다.
안재훈(이하 안): 애니메이션 하는 사람들은 수작업에 익숙해서 정성이 남다르긴 하다. 지금껏 애니메이션은 산업으로만 인식돼 있다. 산업이 아닌 방식의 작품을 그린다고 하니, 다들 ‘아직 정신 못 차렸구나’ 하는 반응이었다. 11년이나 걸린 것은, 중간에 제작비가 없으면 돈 되는 작품을 해가며 돈을 벌어 다시 진행하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을까 싶어서 시사회 땐 정성을 좀 들였다.
황: 은 1979년 즈음의 지방 소도시가 배경이다. 특별히 그때를 그린 이유는? 혹시 감독이 1963년생쯤 되나?
안: 1969년생이다. 1979년쯤으로 잡은 것은 1981년에 컬러TV가 나와서, 흑백TV 화면으로 집단적 기억이 형성된 마지막 시기이기 때문이다. 지방 소도시의 풍경 역시 1980년대 들어 급격히 바뀌었다. 향수를 품을 수 있고, 기억 속 흑백의 영상을 컬러로 복원하는 애니메이션의 판타지 효과가 확실하게 살 수 있는 시기라서 그때를 그렸다.
황: 정확히 말하면 1979년도 아니다. 김일 선수의 레슬링 경기가 열린 것은 1975년이고, 드라마 는 1973년 작품이다. 장소도 군산, 춘천, 이화동 등 여기저기 짜깁기했다. 그래서 더 꿈같다. 기억은 선형적이지 않고 중첩되니까. 묘하게 무의식을 건드리는 면이 있다.
안: 장소 짜깁기나 군중 장면에서 인물들의 얼굴이 다 각각인 것은 저기에 내 얼굴, 내가 살던 동네가 들어 있다는 느낌이 관객의 마음을 강하게 잡아끌길 원했기 때문이다.
대상과 불화가 드러내는 정직함황: 는 첫 장면에 ‘뻑’이 갔다. 디지털일안반사식카메라(DSLR)로 찍었다는데, 조명도 완전히 세팅된 것 같고. 앵글이나 화면 깊이감도 그렇고. 편집도 극영화보다 더 플롯이 살아 있다.
이성규(이하 이): DSLR에 놀라다니, 너무 늦은 반응이다. 화면 깊이감이나 조명 효과 같은 것은 더 좋게도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황: 2009년에 한국콘텐츠진흥원 방송영상콘텐츠 제작지원작으로 인도 콜카타에서 100일간 촬영한 작품인데, 영화 중간에 3년 전, 10년 전 화면이 삽입돼 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
이: 내가 1999년 인도에서 1년6개월간 카스트와 소작쟁의를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 을 찍었다. 2009년에 촬영할 당시 젊은이가 그 지역 출신이란 말을 듣고, 1999년 촬영 화면을 찾아서 그의 얼굴임을 확인했다. 그 동네엔 사진이 없어서 자신의 어린 시절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 어머니와 형님이 확인해주었다. 본인은 그제야 촬영팀이 가지고 갔던 과자의 맛이 기억난다고 하더라.
황: 콜카타의 인력거꾼은 에서 다루어졌다. 가 차별점을 가지려면, 대상을 보는 입장과 태도여야 할 것이다. 는 수미쌍관식으로 “찍지 말라”는 주인공과 이를 달래는 감독의 모습이 들어 있다.
이: 그 부분이 영화제에서도 많이 문제가 되었다. 특히 아시아인의 입장에서는 찍지 말라는데 찍은 것을 비윤리적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다투고 실랑이를 벌이는 것도 오랫동안 안 친한 사이니까 가능한 것이다.
황: 는 서구의 관찰자와 인도의 인력거꾼 사이에 어떠한 불화도 없이 매끈하게 봉합된다. 마치 전지전능하고 중립적인 시각이 있다는 듯. 오히려 더 위험하고 오만하다고 생각된다. 는 앞뒤에 관찰자가 오직 대상과 불화하는 방식으로 등장한다. 의미심장하다.
“한국적 정체성을 가진 풍경과 얼굴”황: 은 영화의 주제와 그림체가 일치하는 것이 장점이다. 특출한 재능을 갖지 못한 보통의 아이가 ‘1등만 기억하는’ 경쟁의 천국에서 어떻게 허무와 냉소에 빠지지 않고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지를 담담하게 말하는데, 수채화 톤의 그림체가 담담하고 서정적인 감성을 전달한다.
한: 사진과 그림이 다르듯 애니메이션은 실사와 다른 정감이 있다. 주제는 관객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우리끼리의 말이기도 하다. 그림을 그리지만 세계 최고가 될 수는 없는 우리가 꿈을 가지고 계속 가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녹아 있기에 10년을 끌고 올 수 있었다. 주인공이 육상을 하는 것도, 1등이 아니면 무의미하다고 여겨지는 대표적 분야라서 넣었다. 그런데 뛰는 장면과 군중 장면 표현이 너무 어려워서 아내(한혜진 공동감독)에게 엄청 욕먹었다.
황: 스틸사진으로만 보면 그냥 말갛고,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도 생각난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그런 생각이 안 난다. 한국의 풍경과 구체적인 시대를 담아낸 소품의 디테일도 강하고, 인물의 움직임이나 별 의미 없이 툭 던지는 대사 등 밀도가 높은 영화다.
한: 프랑스 기자가 보고 지브리 스튜디오의 일본 풍경과 확실히 다르다고 하더라. 나는 우리나라 아이들이 우리의 풍경과 얼굴이 담긴 애니메이션을 보지 못하고 자라는 것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여기서 일을 배운 후배들 중에 픽사 등 세계 유수의 스튜디오로 가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 그들이 처음 그린 것이 한국의 정체성을 가진 풍경과 얼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성인은 더 이상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는다. 음악 장르도 완전히 나누어져 있다. 극장에서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애니메이션을 보며, 소중한 날에 품었던 각자의 꿈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세대 간 단절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황: 조금 불만이 있다면, 학교 장면이나 철거 장면들이 너무 평화롭게 그려진 것 아닌가. 엄청난 훈육과 폭력의 시대이기도 했는데. 인공위성 발사 등은 ‘역사의 발전’을 확실히 믿는 것 같아서, 조금 격세지감이 느껴지기도 하더라. 요즘 젊은이들에겐 저때가 나른한 천국처럼 보일 것 같다.
한: 교문 앞 벌서는 장면 한 컷으로 지나가도, 각자의 기억 속에 훈육과 체벌은 다 생각나기 마련이다. 심각한 갈등은 다른 극영화에서 리얼하게 다루니까 애니메이션에서까지 다루고 싶지 않았다.
“자본주의·카스트 계급의 중첩”이: 도 노스탤지어에 관한 영화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상실된 가장의 이미지 같은 것 말이다.
황: 아닌 것 같다. IMF 이후 가장의 역할을 조명한 같은 작품과 는 완전히 다르다. 한 개인을 다루지만, 계급성이 명확하다. 부자 승객과의 실랑이나 아들의 공장에서의 장면, 그리고 10년 전 소작쟁의 장면에 뚜렷이 나와 있다. 아버지를 죽인 자들을 보면 어떨 것 같으냐는 질문에 아들이 “도망갈 것 같다”고 답한다. 자본주의적 계급과 카스트 계급이 중첩돼 드러난다.
이: 속마음을 들킨 것 같다. 이 정말 센 영화였다. 이번 영화는 그런 것을 좀 감추고, 개인에 집중해서 보여준 것인데.
황: 가장 전형적인 인물에 집중해서 보여주는 것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기본 아닌가. 이 생각나더라. 다큐멘터리 같은 극영화인데, 정치적인 대사가 한마디도 안 나오지만 진짜 정치적인 영화다. 쿠르드족이 누군지, 왜 그런 일을 하는지를 알면 끝난다. 콜카타의 인력거꾼도 그런 전형성이 있다. 12월 개봉작은 영화제 버전과 같나?
이: 아니다. 편집이 완전히 바뀌었다.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내레이션을 넣어야 한다는 요청이 많아서 고민 중이다.
황: 그러지 않는 것이 좋겠는데. 12월 개봉 때 보자.
글·대담 황진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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