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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숍 매직카드, 위조 민증

스캔에 포토숍 더해 위·변조 주민등록증 만드는 청소년… 더 많은 경제·문화 권리를 위한 ‘소극적’ 저항
등록 2011-05-26 02:42 수정 2020-05-02 19:26
만 18살이 되면 주민등록증을 받지만, 성인의 권리를 얻기 위해 이를 위조하는 청소년도 적잖다. 서울의 한 동사무소에서 새 주민등록증 입력작업을 하는 모습. 한겨레 이정우

만 18살이 되면 주민등록증을 받지만, 성인의 권리를 얻기 위해 이를 위조하는 청소년도 적잖다. 서울의 한 동사무소에서 새 주민등록증 입력작업을 하는 모습. 한겨레 이정우

10대들 사이에서 주민등록증 위·변조는 가장 일상적인 문화적 관행 중 하나가 되었다. 실제로 얼마 전에 배우 이준기가 ‘무릎팍 도사’에 나와 고교 졸업 뒤 유흥업소 취업을 위해 주민등록증을 변조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보통의 시청자라면 경악을 금치 못했겠지만 10대들에게 그 정도는 주야로 마주하는 일이다.

어른처럼 맘 놓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청소년을 하등인간으로 간주하는 우리 사회는 그/녀들에게 욕망의 실현을 허용하지 않는다. 바로 이때 ‘만 19~20살 성년’이라는 규준, 그리고 이를 증명하는 주민등록증이라는 장치는 욕망의 허용과 금지를 가르는 바로미터가 된다. 반면에 10대들은 금지된 욕망을 실현하려고 주민등록증을 벗기고 파내고 덧붙임으로써 정상적 인간이라는 범주에 도전을 시도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테크닉이 동원된다.

첫째, ‘민증’의 코팅 비닐을 벗겨 사진을 바꾸는 방법이다. 성인의 주민등록증을 어디서 줍든 훔치든 해서 본인의 사진으로 교체하고 다시 코팅을 하는 방식이다. 그러면 어떤 청소년이라 해도 감쪽같이 성인으로 대우받을 수 있다. 이런 친구들과 마주한 성인이라면 주민등록증 사진을 보고 그저 그/녀의 ‘동안’에 부러울 따름이다.

두 번째로는 가장 흔한 방식인데 ‘번호 파기’가 있다. 자신의 주민등록번호 앞자리를 바꿔 만 20살 이상으로 고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숫자가 931005라면 ‘3’자를 파낸 뒤 ‘0’자를 끼워넣으면 별 탈 없이 성인 행세를 할 수 있다. 식품위생법이 됐든 청소년보호법이 됐든 이 순간에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또래 사이에서는 한 학년에 2~3명씩 민증 ‘파는’ 것을 전문적으로 하는 작업자가 있을 정도다. 이 친구들은 주문자의 부탁을 받으면 수작업을 거쳐 매당 1만~2만원의 가격으로 부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그런데 주민등록증이 플라스틱으로 바뀌면서부터 재코팅에 의존하는 고전적(?) 수법은 쓸모없게 됐다. 그러나 궁하면 통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플라스틱 민증을 스캔하고 포토숍으로 숫자를 바꾼 뒤 컬러로 인쇄하면 만사형통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손쉬워졌다. 물론 진짜 민증에 비해 컬러 인쇄물은 위·변조라는 게 들통나기 쉽지만, 위·변조한 민증을 지갑에 넣은 채 보여주면 십중팔구 무사 통과다.

만약 친구가 민증을 위조한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녀는 어떻게 반응할까? 경찰에 신고할까? 친구를 신고할 리 만무하다. 불법이니까 당장 버리라고 할까? 그건 너무 ‘찌질’하다. 정답은 다음 중 하나인데, 내심 부러우면서도 무심한 척하든가, 박수 쳐주며 나도 하나 만들어달라고 하든가…. 그것도 아니라면, 더 훌륭하게 위조한 내 것을 꺼내는 방법도 있다. 양심의 가책?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경찰 등등에게 적발되느냐 아니냐 하는 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그/녀들은 참으로 솔직하다).

이렇게 민증 위·변조는 널리 전파된다. 그것은 매우 유용한 매직카드다. 궁지에 몰렸을 때 꺼내들 수 있는 조커와도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마술이 음주가무에만 사용된다 생각하면 억측이다(물론 대개 그렇긴 하다). 위·변조한 민증은 청소년인 ‘주제’에 밤 10시가 넘어도 그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는 특별통행증이며, 나아가 그 나이에 비해 최저임금을 웃도는 보상을 받고 알바를 할 수 있다는 고용허가증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렇게 하고 싶은 대로 살 거면 청소년으로서의 사회적 혜택도 버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그렇지만 10대들의 민증 위·변조라는 관행은 자신도 인간의 범주에 넣어달라는 ‘상징적’ 요구이자, 더 많은 권리를 향한 의지의 ‘소극적’ 실현이기도 하다. 나아가 어른들도 청소년에게 억눌림을 감내하거나 혜택을 버리라고 강요할 게 아니라, 자신들 역시 청소년과 동일한 혜택(예컨대 공공할인이나 장기휴가 등등)을 바란다고 솔직하게 요구하는 것이 더 합당한 이야기가 아닐까. 그러면 우리 모두 ‘인간’이 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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