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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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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롭게 영혼을 착취하는 노동

자본주의와 노동의 관계를 분석한 조정환의 <인지자본주의>와 한윤형·최태섭·김정근의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등록 2011-04-29 09:31 수정 2020-05-02 19:26

현대의 노동자는 ‘보이지 않는 노동력’을 끊임없이 소모하고 소모당한다. 뉴스룸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자료를 뒤적이는 기자들 역시 마감 내내 보이지 않는 노동력에 불을 지피며 기사를 생산해낸다. 기사를 쓰느라 손가락이 아프다거나, 통화를 오래해 목이 칼칼하다거나, 자료를 뒤적이다 종이 모서리에 손끝을 베인다고 산재(산업재해) 처리하진 않는다. 이를테면 ‘인지노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사를 쓰기 위해 기자들은 손가락의 힘을 기르기보다는 자신의 감각, 지각, 소통, 교감, 언어 능력 등을 십분 발휘해야 한다. 이들의 노동 강도는 표면적으로 쉬이 드러나지 않는다. 취재가 잘 안 될 때의 불안, 문장에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의 괴로움, 타사와의 경쟁, 편집장이 호출할 때 생기는 공포의 감정 따위는 인지화한 노동으로 발생한, 보이지 않는 산재들이다.

온 감각과 지각을 노동에 투입하라

국내 대표적인 자율주의 이론가 조정환( 대표 겸 상임이사)씨는 (갈무리 펴냄)에서 자본주의의 역사가 상업자본주의(14~17세기), 산업자본주의(17~20세기 후반)를 거쳐 오늘날 제3기인 ‘인지자본주의’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인지자본주의는 인지노동을 중요한 착취 대상으로 삼는다. 그에 따르면 인지자본주의는 이미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조직하고 통제하고 감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며, 우리 신체는 물론이고 이제는 감각·지각·추리·정서·기억·결정·소통 등 개인의 정신작용까지 통제한다.

지은이는 인간의 인지적 능력을 십분 발휘해야 하는 직업군으로 간호사, 컴퓨터 프로그래머, 학원강사, 영업사원, 기자, 텔레마케터,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예술가 등을 예시로 들었다. 이들의 노동 형태를 살펴보자. 간호사는 모니터에 나타난 정보를 눈과 두뇌를 사용해 해석하며, 자신의 몸을 이용해 주사를 놓거나 환자 몸을 일으킨다. 교사는 눈으로 학생들을 바라보며 목에 힘을 주고 자신의 입으로 말을 한다. 그러나 지은이가 이를 산업노동 혹은 신체노동이라 부르지 않는 이유는 생산과 소비의 과정에 물질적인 것이 도입되고 산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직업군에서 노동하는 것은 정신이며 영혼이고, 노동 과정 또한 영혼의 운동이다. 이 노동을 통해 생산되는 것 역시 소비 과정을 거쳐야 하는 물질적 생산물이 아니다.

간호사, 교사, 컴퓨터 프로그래머 등 지식노동·정보노동군을 넘어 감정노동 또한 인지노동 영역에 포함된다. 감정노동이란 배우가 연기를 하듯, 자신의 감정과 다른 표정과 몸짓을 하며 일하는 과정을 말한다. 지은이는 이전 자본주의에서는 우리 신체가 노동에 예속될 때 영혼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상태에 있었다고 분석한다. 인간이 기계를 대신해, 혹은 기계와 동일한 형태로 노동하던 시절을 떠올리면 된다. 과거의 노동자들은 컨베이어 벨트 위를 움직이는 콜라병 대열에서 불량품을 가려내며 기계화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해야 했지만, 적어도 노동 과정 중 자신의 영혼만큼은 스스로 지배할 수 있었다. 아침 출근 전 남편과 싸웠다면 부루퉁한 얼굴로 일할 수도, 기쁘고 슬픈 일이 닥쳤다면 그 감정에 취한 채 신체만 부지런히 움직이면 되었다.

그러나 인지자본주의하에서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 노동자는 노동 과정 중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맞춰 자신의 감정을 조절해야 한다. 자신의 실제 감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능숙하고 멋지게 감정의 가면을 쓸 수 있는지가 감정노동자의 능력으로 평가된다.

조정환씨가 지적한 ‘인지노동자’들은 같은 시기 출간된 (한윤형·최태섭·김정근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의 지은이들이 말하는 ‘미학화된 노동을 실천하는 존재’들과도 겹친다. 에서 예로 든 꿈이란 이름에 종속돼 착취당하는 연예인·프로게이머 지망생, 언젠가 사장이 되어 현재의 불평등을 타개하리라 다짐하며 불공정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네일 아티스트, 파티시에,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꿈꾸지만 현실은 야근에 찌들린 정보기술(IT) 업계 종사자가 그들이다.

사회로부터 강요받은 ‘열정노동자’ 또는 ‘인지노동자’들이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고 있다. / 한겨레 자료

사회로부터 강요받은 ‘열정노동자’ 또는 ‘인지노동자’들이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고 있다. / 한겨레 자료

가 자본주의의 역사 전체를 놓고 현재의 흐름을 해석한다면, 은 한국 사회에 특정해 나타나는 노동구조를 설명한다. 의 지은이들에 따르면, ‘열정노동’은 크게 두 가지를 배경으로 삼는다. 첫째,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와 신자유주의식 개혁이라는 1990년대 이후의 한국 상황이다. 당시 정부는 ‘신지식인’이라는 조어를 필두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만이 진짜 지식인이라고 선동했다. 산업구조를 대폭 개편하고 고용 안정성을 무너뜨렸다. 구멍 난 안정적 사회망을 메울 논리로 국가와 기업은 ‘열정을 가지고 스스로를 경영하라’는 식의 문장을 설파한다. 둘째로, 세계 자본주의의 흐름이 열정노동을 발명했다고 말한다. 세계화는 성실하고 정직한 노동자 대신 진취적이고 창의적이며 도전 정신으로 가득 찬 노동자를 원한다. 에서 말하듯 자신이 가진 인지 능력을 총동원해 일과 사생활, 집과 직장의 구분이 없는 워커홀릭을 원한다는 것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하라는 사회

의 지은이는 노동이 인지화될 때, 노동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행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인지자본주의하에서 노동자는 사회가 원하면 언제든지 노동을 밭아낼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은 제도화한 열정이 노동자를 가혹하게 몰아세우고 있다고 말한다. 열정노동은 힘들다 토로하는 노동자에게 ‘네가 좋아서 하는 일’ ‘그 정도 열정이 없어서야…’라고 자극하며 노동자에게 끝없이 일하라 한다. 그러면 언젠가, ‘당신은 장인이, 사장이, 전문가가 될 수 있을 터이니’라고 유혹하며 말이다. 쉬지 않고 일하란 명령으로 연속 펀치를 날리는 이 부조리한 사회는 까맣게 모를 것이다. 언젠가 우리가 열정으로 가득 찬 가슴 따위는, 노동만을 위해 준비된 인지 능력 따위는 사실 없었다 소리치며 파업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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