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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아파트의 거실이 유독 넓은 이유는?

가족문화·전쟁·경제발전 등 역사의 세밀한 변화에 반응해온

주거 형태의 역사 <한국 주거의 공간사>
등록 2011-01-13 08:29 수정 2020-05-02 19:26

내 주거 공간의 역사를 읊자면 이렇다. 우선 현재 나의 기거지는 원룸. 처음 원룸을 봤을 때, 싱크대가 방 안에 들어와 있는 구조에 조금 뜨악했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꽤 합리적인(혹은 어쩔 수 없는) 공간이라 생각하며 산다. 이전의 주거 공간은 오피스텔. 원룸과 별반 다를 건 없다. 하나 차이가 있다면 오피스텔엔 베란다가 없고 사무실 같은 답답하고 조그만 창문이 달려 있어 여름에는 그야말로 ‘오피스’처럼 에어컨을 부득이 켜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전의 공간이라면 친구와 나눠 살았던 다세대주택, 그 이전의 공간이라면 지금 나의 부모·형제가 사는 빌라, 그 이전의 공간이라면 마당에 허영스레 파인 연못에 모기만 들끓던 1980년대식 2층 양옥, 그 이전의 공간이라면 유년 시절 아파트 붐이 일면서 지어진 작은 5층 아파트다.

‘ㅅ’ 모양 지붕에 담긴 80년대의 과시욕

마지막 남은 시민아파트인 서울 중구 회현동 제2시민아파트. 1968년 발표된 ‘서민아파트 건립계획’에 따라 서울시에는 우후죽순 시민아파트가 들어선다. 그러나 관 주도하에 획일적으로 지어진 시민아파트들은 공간에 대한 배려 없이 무미건조하고 삭막하기 그지없었다.한겨레 신소영

마지막 남은 시민아파트인 서울 중구 회현동 제2시민아파트. 1968년 발표된 ‘서민아파트 건립계획’에 따라 서울시에는 우후죽순 시민아파트가 들어선다. 그러나 관 주도하에 획일적으로 지어진 시민아파트들은 공간에 대한 배려 없이 무미건조하고 삭막하기 그지없었다.한겨레 신소영

개인의 공간사를 괜스레 읊은 이유는 (돌베개 펴냄)가 시대별로 설명하는 공간들과 ‘나의 공간’을 자꾸만 비교하고 추억하게 했기 때문이다. 책은 1876년 개항기부터 2000년대까지, 130여 년 한국 주거 공간의 역사를 훑는다. 그 역사의 끝머리 4분의 1 정도를 살아온 나는 그간 유행해온 공간들에서 만족과 불편을 거듭하며 지내오고 있었던 것이다.

지은이 전남일 가톨릭대 교수(소비자주거학)는 책을 통해 기존 건축사에서 중요하게 다룬 양식보다는 평면과 배치도에 집중하고, 그 공간 구조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핀다. 역사상 명멸한 다양한 주거 유형을 빠짐없이 살피고, 이런 관찰은 분류와 범주화로 이어진다. 변화한 주거 유형이 정착하고 보편화하는 과정을 고찰하고 각 유형들의 특성을 정리한다. 관찰과 정리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마지막에 도달하는 탐색의 주제에 연결된다. 건축적·공간적 진화에 인간 삶의 변화가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는 것이다. 그는 한국 주거 공간의 변화를 살피면서도 그 사이사이에 낀 삶의 단편들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역사의 틈을 이어내는 연결점이자 앞으로의 변화를 점치게 하는 과거의 소중한 유산이기 때문이다.

산과 물, 방위 등 지리적 요소를 최대한 반영하고 땅의 이치를 살펴서 주택의 터를 정하던 한국의 주거 공간은 사회가 급변하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많은 변화를 겪는다. 도시 필지가 협소해짐에 따라 마당과 사랑채의 의미가 약화되고, 유리문을 설치해 대청을 내부 공간화해 사용한다. 가사가 직계가족 중심으로 바뀌면서 부엌이 안방·건넌방과 직출입할 수 있도록 내부화한다. 1930~40년대에는 이런 구조의 도시 한옥이 한창 보급되는데, 한국전쟁이 일어나며 많은 가옥이 파괴된다.

1950년대에는 전쟁 중 파괴된 주택을 복구하는 데 최선을 다했던 정부가 관 주도의 공영 표준형 주택을 만든다. 최소한의 면적에 공간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목표다. 1970년대 중반 이후로는 획일화한 공영 표준형 주택 대신 민간 단독주택이 전국에 광범위하게 지어진다. 작은 정원에 잔디와 나무를 심어 가꾸고, 거실 아래 지하실을 두고 폭 60㎝ 정도의 발코니를 둔 전형적인 단독주택이 유행한다. 단독주택의 2층화 경향과 함께 대지 내 건물의 몸집이 커지면서 주인집과 임대 세대의 건물 공유가 이뤄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대문과 현관문, 화장실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사생활 보장 욕구가 강해지면서 층에 따라 나누는 수직적 분리가 이뤄진다. 1980년대의 다세대·다가구 주택의 원형으로 자리잡는다. 흥미로운 것은 1970년대 초반 지어진 단독주택의 지붕은 ‘불란서식’ ‘스위스식’ 등으로 불리는 ‘ㅅ’자 모양의 지붕이었는데, 전 교수는 이를 두고 서양식을 모방하고 부분적으로 집을 크게 보이려는 과시적 욕구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한다.

<한국 주거의 공간사>(돌베개 펴냄)

<한국 주거의 공간사>(돌베개 펴냄)

공동주택 유형이 단기간에 확산된 한국에서 가장 흔한 주거 공간인 아파트의 구조 형성 과정 또한 재미있다. 거실을 중심으로 사방에 방을 배치한 지금의 아파트 구조는 1960년대에 등장했다. 전 교수는 거실이 집의 중심에 놓인 것은 한옥에서 개방된 통로 공간 기능을 하던 대청의 개념이 어느 정도 유지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런 공간 구조는 가족모임에 손색없고 넓은 공간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거주자가 선호했다. 또한 서서히 핵가족화가 진행되고, 주거 공간 내 식침(食寢)이 분리되고, 각 공간의 기능이 명확하게 규정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싱크대와 식탁이 보급됨으로써 방에서 식사를 하던 관행이 사라지고 부엌 또는 그에 인접한 공간에서 식사를 하게 된 것도 이 무렵부터다.

1970년대에 진입하면서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분리가 강조된다. 침실은 공간의 후면에 배치되고, 때때로 이 공간을 구획하는 작은 복도도 등장한다. 평면을 분할해 남측면에 거실을, 안방을 비롯한 모든 침실을 현관에서 깊숙이 후퇴한 북측면에 배치하는 서구식 공간 구성 방식도 보인다. 그러나 이는 적어도 안방은 남향이어야 한다는 한국적 정서에 의해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고 예외로만 남아 있는 방식이다.

1970년대 지어진 아파트에는 침실 수가 많다. 당시에는 침대를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이지 않아 좌식 생활 공간에 적정한 크기의 작은 방들이 소형 아파트에도 서너 개씩 들어앉았다. 개인 공간 확보가 이유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3세대 이상이 한 집에 사는 경우가 줄고 입식 생활 중심이 되면서 방의 크기는 커지고 그 수는 줄었다.

개인 역사의 탐색이기도

전 교수는 “우리가 몸소 체험하는 공간이라는 구체적 실체를 관찰했으며, 무엇보다도 그 변화의 과정에 초점을 맞추면서 서술하고자 했다”고 밝힌다. 더불어 “공간에 대한 총체적 관찰과 분석을 통해 근현대 시기 한국 주거의 변화에서 내외적으로 존재하는 역사의 연속성을 찾아내는 작업을 시도했다”고 말한다. 그의 문장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글줄이 훑어가는 연구 과정을 따라가면서 자신이 지나왔던 주거의 변화를 회상하며 개인 역사의 연속성 또한 더듬을 수 있을 것이라고.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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