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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블로그에 엔딩은 없다

희귀병으로 세상 떠난 블로거 ‘물만두’ 홍윤씨,

좁은 추리소설 시장 다독인 2천여 편 독후감의 따뜻했던 숨결
등록 2011-01-13 07:43 수정 2020-05-02 19:26
블로거 ‘물만두’는 추리소설 부흥의 중앙에 있었다. 그가 남긴 리뷰는 1838편에 이른다.

블로거 ‘물만두’는 추리소설 부흥의 중앙에 있었다. 그가 남긴 리뷰는 1838편에 이른다.

마이리뷰 1838편, 마이리스트 159편, 마이페이퍼 1497편.

숫자가 멈추었다. 너무 많고, 한편으로 너무 적다. 비공개글까지 합치면 총 1만2334편이다. 인터넷서점 알라딘 리뷰어로 활동한 물만두(홍윤)가 지난해 12월13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봉입체근염이라는, 점진적으로 근육이 약화되는 병을 20년간 앓아왔다. 향년 42살.

물만두는 2000년 3월2일 리뷰를 처음 올렸다. 뜸했다. 다음 리뷰는 6월이었다. 대부분 만화책이었다. 갑자기 폭풍처럼 리뷰들이 올라왔다. 6편을 올린 9월20일에 추리소설 두 편이 포함돼 있다. 첫 추리소설 리뷰다. 로스 맥도널드의 과 루스 렌들의 이다. 10월24일 엘러리 퀸 시리즈, 10월25일 킨제이 밀혼 시리즈, 10월26일 애거사 크리스티 시리즈, 28일 캐드펠 시리즈가 등장한다. 이후로 리뷰는 추리소설만으로 좁혀지고 하루에 많으면 10편, 평균 2편씩 오른다.

추리소설 웹사이트 ‘하우미스터리’의 운영자 윤영천씨는 “추리소설 마니아들 사이에서 물만두는 한 명이 아니다, 2~3명이 함께 아이디를 쓰는 것이다, 물+만두가 있다라는 말들이 오갔다”고 한다.

생의 마지막 숨 닿은 곳, 손끝

2000년 10월29일에는 9개의 리뷰가 오른다. 캐드펠 시리즈 4권, 애거사 크리스티 시리즈 3권, 시오노 나나미의 책에 빚을 갚기 위해 살인을 하는 이다. 리뷰는 이렇다. “인물과 지명을 한국적으로 바꿔서 미묘한 긴장감이 사라졌고 재미가 반감된 느낌이다. 이런 유치한 번역은 이제 그만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2000년대 이전 추리소설이 이런 식이었다. 번역은 엉망인 경우가 많았고, 작은 출판사에서 저작권도 없이 볼품없이 나와서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인물과 지명을 한국식으로 개명하기도 했다. 물만두는 2000년대 추리소설 부흥의 중앙에 있었다. 추리소설을 내는 편집자들은 모르는 이가 없었고, 그에게 책을 보내 리뷰를 부탁하곤 했다. 추리소설 마니아이자 출판사에서 추리소설을 냈던 나혁진씨는 “추리소설 시장은 작다. 추리소설을 내는 작은 출판사에 있을 때 그가 재밌다고 써주는 게 많은 도움이 됐다”고 회상한다. 그의 평이 따뜻했기에 더욱 좋았다. “별점이 너무 후하다는 생각도 했죠. 그런데 직접 책을 만들게 되면서 책의 장점을 보는 리뷰어는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의 리뷰는 별 4개, 아니면 별 5개였다. 단점이 많이 보여도, 항상 장점으로 감쌌다.

정말 많이 읽고 많이 썼다. 나혁진씨는 그가 보내는 책 모두에 대해 써줬던 리뷰어라고 물만두를 기억한다. 다른 리뷰어들에게 책을 보내면 5권 중 1권 정도 리뷰가 올라온다면 물만두는 5권 모두를 썼다.

2003년 알라딘이 리뷰를 블로그와 연동시키는 방식을 채택하면서 리뷰어가 블로그를 갖게 되었다. 블로그 태동기였다. 알라딘의 김성동 팀장은 “물만두님은 사이트의 퀄리티 자체를 비중 있게 만들어주신 분이다. 서비스를 빛내준 이상으로 블로그 정체성을 형성한 분이어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자랑스러웠다”고 말한다.

‘마을’(알라딘 서재의 옛말)은 마실 나가고 마실 오는 사람으로 붐볐다. 파란여우( 저자)에게는 물만두가 한창 좋았던 블로그 활동 시절을 기억하게 하는 사람이다. “생일이다, 500번째 리뷰다, 1만 명 방문자 돌파다, 어디 당첨되었다, 하며 정말 많은 이벤트를 하며 놀았습니다.” 물만두는 ‘대방출’ 이벤트를 여러 번 했다. 외국에 나가 있는 블로거도 선물을 받았다. 그는 댓글에는 꼭 답글을 했고, 블로그 이웃을 먼저 찾아가 인사를 건넸다. 파란여우와는 ‘성님, 아우’ 하며 지냈고, 메피스토와는 ‘만담 남매’로 통했다. 댓글놀이도 즐거웠다. 메피스토는 “치카님이 가끔 농담성 댓글을 만두님 서재에 올리면, 만두님은 그 글에 살짝 발끈하셨고, 전 물만두님 편들며 치카님을 괴롭히는 댓글을 계속 이어서 달곤 했다”고 한다.

파란여우는 물만두가 항상 낮추고 자신을 평범하다고 말했다고 기억한다. 2010년 리뷰를 묶어 책을 내자는 제안이 갔지만 그는 거절했다. 제안한 ‘가을산’이 사후 밝힌 비밀글은 이렇다. “전 그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쓰기 싫어지거나 힘 떨어질 때까지 블로그에만 올리는 걸로 만족하렵니다. 그동안 님들께 받은 보답도 못하는데 저를 더 염치없는 이로 만들지 말아주시어요.”

물만두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책을 놓지 않았다. 지난해 추석을 전후해 입원하고 퇴원하고, 기력이 쇠한 와중에도 5편의 리뷰를 남겼다. 11월1일, 3일, 9일, 11일, 그리고 마지막 리뷰는 11월17일 다. “빌 게이츠는 말했다. 인생은 불공평한 거라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안 된다고. 인생은, 특히 젊음은 독이 든 성배와 같다.”

유족은 마지막까지 힘을 쓸 수 있었던 것이 손가락이라고 말한다. 말이 어눌해진 뒤에도 타이핑은 할 수 있었다. 눈으로 책을 읽고, “놀랍도록 좋은 기억력”(파란여우)으로 과거 추리소설을 소환하고, 손으로 리뷰를 타이핑했다. 움직일 수 있는 근육은 별로 없었지만, 블로그에서는 오프라인의 그가 병에 걸렸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블로그의 아이디와 패스워드는 물만두가 남긴 유지다. 사후 ‘만순’이라 불린 동생이 물만두로 로그인해 그의 죽음을 전했다. 그의 리뷰가 그 책에 대한 첫 리뷰인 것만 640편이다. 추리소설을 읽는 사람이라면 그의 이정표를 다시 만나는 일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배드 엔딩도 받아들일 수 있으므로…”

그의 블로그 대문글은 이랬다. “인생은 미스터리, 책도 미스터리, 내 맘대로 미스터리다.” 2005년 7월 에서 추리소설 부록 ‘비밀의 백화점’을 만들며 추리소설 마니아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물만두는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를 이렇게 답했다. “배드 엔딩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물만두 추리소설 리뷰대회’가 인터넷서점 알라딘 주최로 열린다. (1월31일 마감) 바다출판사가 리뷰를 모은 책도 유족과 함께 준비 중이다. 그의 사이트는 계속 열려 있다. http://blog.aladin.co.kr/mulmandu.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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