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워홀의 상업적 거울



‘돈벌이용 초상화’란 평가 속에 대중적 반향 일으킨 문제작,

앤디 워홀의 <20세기 유대인의 초상 10점>
등록 2010-12-15 06:06 수정 2020-05-02 19:26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1928~87)은 1962년 상업미술에서 순수미술로 전향한 뒤 1987년 의료사고로 사망하기까지 단 한 번도 ‘한물간 퇴물’로 취급받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그의 최전성기는 추종자였던 발레리 솔라나스에게 총격을 받아 비명횡사할 뻔했던 1968년까지다. 죽을 고비를 넘긴 뒤에는 고질병인 돈 욕심이 더 심해져, 사교계를 누비는 명사들과 과시욕에 넘치는 졸부들의 초상화를 대거 수주·제작했다.

미국 문화계를 장식한 유대계 카르텔이 작품 평가에 영향을 끼치진 않았을까. 워홀의 <20세기 유대인 초상 10점>.

미국 문화계를 장식한 유대계 카르텔이 작품 평가에 영향을 끼치진 않았을까. 워홀의 <20세기 유대인 초상 10점>.

1979년 휘트니미국미술관에서 (Andy Warhol: Portraits of the 1970s)전을 개막하자, 비판이 쏟아졌다. 주문 제작한 초상화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기에, 평론가들은 “깊이가 없는 돈벌이용 작품”이라며 평가절하했고, 화상들은 “미술 시장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며 가격 붕괴를 점쳤다.

그러나 후대의 평가는 다르다. 워홀의 초상 연작이 “우리 시대를 반영하는 탁월한 거울”이고, “1970년대 미국 문화의 시대정신”을 담았다고 한다. 시장의 붕괴도 일어나지 않았다. 평가가 뒤바뀌는 데 큰 기여를 한 작품이, 흔히 ‘유대인 천재들’ 혹은 ‘유대인 명사 10인’으로 불리는, (Ten Portraits of Jews of the Twentieth Century·1980) 연작이다.

주변 인물에게 작품 제작에 관해 자문하는 일을 즐긴 워홀은 1970년대 중반 어느 날 변호사 출신 화상 로널드 펠드먼에게 이렇게 물었다. “뭐 아이디어 좀 없어요?” 그 자리에서 펠드먼은 미국 대통령 10인의 초상 연작을 제안했지만, 워홀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얼마 뒤 이스라엘에서 활동하던 화상 알렉산더 하하리가 펠드먼에게 “워홀에게 골다 메이어 이스라엘 전 총리의 새로운 초상 연작을 만들라고 해라. 미국과 이스라엘에서 팔아보자”고 제안했다. 워홀이 1975년에 제작한 골다 메이어 이스라엘 총리의 초상 다섯 점을 눈여겨봤던 것. 하지만 ‘누가 그 많은 골다 메이어를 사겠어?’라고 생각한 펠드먼은 이내 더 나은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그게 바로 유대인 명사 10인의 초상 연작. 워홀은 이 제안을 즉각 수용했다.

하지만, 역사 속의 수많은 유대인 명사 가운데 10명을 추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펠드먼과 워홀은 ‘워싱턴 광역지역 유대인 공동체 센터’에 전화를 걸어 자문했다. 그렇게 해서 해당 센터에 자리한 골드먼미술관이 프로젝트에 연루됐고, 관장인 수전 모르겐스틴이 이후 지난한 인물 선정 과정을 주도했다.

쟁쟁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선발된 최종 10인은 다음과 같았다. 루이스 브랜다이스(미국 최초의 유대계 대법관), 골다 메이어(여성 정치인·이스라엘 제4대 총리), 마르틴 부버(유대민족주의 철학가), 프란츠 카프카(소설가), 거트루드 슈타인(문인·현대미술후원가·레즈비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정신분석학자), 사라 베르나르(국제적 스타덤에 오른 최초의 유대계 여배우), 조지 거슈윈(작곡가), 막스 형제들(코미디언).

이 가운데 브랜다이스·메이어·부버는 이스라엘의 건국이념인 시오니즘을 대표하는 3인방으로, 유대인 역사에서 다른 인물들을 압도하는 중요성을 지닌다. 브랜다이스가 유대민족의 국가를 위한 철학과 법률을 일궜다면, 메이어는 현실 정치를 이끌었고, 부버는 정신문화를 꽃피웠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사회·문화·역사적 의의가 분명했던 워홀의 은, 대중에 공개되자마자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극심한 인종차별을 이겨낸 위대한 유대계 명사들을 기리는 동시에 유대민족에 대한 고정관념을 재확인·재생산하는 문제작으로 독해됐다.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미국의 유대계 엘리트 사회가 이를 ‘유대인의 특별한 사회적 위상을 강조하고 그 역사와 문화를 되돌아보는 기회’로 삼았다는 점이다.

미술·디자인 평론가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