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와 집단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자유주의는 때때로 횡포로 존재한다. 예컨대 경제 논리에 적용된 자유주의는 개인의 경제활동에 대한 국가의 규제를 걷어냈지만, 시장의 자유로운 ‘파괴성’은 잔인한 양극화로 세상을 갈랐다. 자본주의는 어떤가. 산업의 발달과 경제 발전을 부른 자본주의가 인간의 삶에 내린 혜택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은 자연과 사회를 소중히 여기던 인간 공동체의 목표를 엷게 퇴색하도록 했다.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주는 혜택이 세상의 몇몇에게만 축복이 되고 어느 한쪽은 여전히 가난과 불평등과 소외로 신음해야 함은 부조리하다. (후마니타스 펴냄)는 이런 지점을 고민하고, 이제는 대안을 찾아야 할 때라고 말한다.
혼란 속에서 싹튼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미국 컬럼비아대학 소속 바너드칼리지의 정치학과 교수인 지은이 셰리 버먼은 유럽 현대사와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활발한 연구와 독창적 분석을 해왔다. 그는 20세기 후반 지구의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평온한 시절을 보낸 유럽에 호기심을 가진다. 20세기 전반까지 전쟁과 경제위기, 정치·사회적 갈등으로 혼란스럽기만 하던 유럽에 무슨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답을 찾기 위해 셰리 버먼은 20세기 유럽의 이데올로기 투쟁을 중심으로 민주적 수정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출현, 각 사상이 발달하는 데 기여한 행위자와 요인에 초점을 맞춰 유럽 정치를 분석한다. 특히 독일·오스트리아·프랑스·이탈리아·스웨덴에 초점을 맞춰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융성과 쇠퇴, 프랑스의 민주적 수정주의의 출현, 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일의 민족사회주의를 두루 훑는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특히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는 어떻게 발달했는지에 주목한다.
스웨덴은 1919년에서 1932년 사이 10개의 서로 다른 정부가 차례로 들어설 정도로 정치적 혼란을 겪었다. 셰리 버먼은 19세기 후반 유럽 국가 중 가장 민주화가 덜된 나라가 스웨덴이었기에 그 정치적 후진성이 오히려 자연스런 ‘정치 개혁’을 불렀다고 분석한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뒤 유럽 대륙의 물가와 생활비는 세 배나 뛰어올랐다. 중립국이던 스웨덴에도 불황의 바람은 불어닥쳤다. 1920년대 중반부터 상황이 나아졌지만 실업률은 여전히 높았고, 노동자와 시장의 갈등은 심각했다. 셰리 버먼은 당시 스웨덴 정부 각료의 말을 빌려 “한 가지 한탄할 만한 사실은 지난 몇 년간 스웨덴이 파업, 보이콧, 공장 폐쇄의 나라가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이 분야에서 스웨덴은 세계의 모든 기록을 깨뜨렸다”고 말한다. 스웨덴 국민은 1920년대를 보내면서 자본주의에 배신감을 느꼈고, 안정된 정부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정치체제에 환멸을 느꼈다. 당시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던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서는 급진적 우파 운동이 융성하거나 파시스트, 민족사회주의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스웨덴 좌파는 급진적 우파가 성장하는 데 맞서 민주주의의 몰락을 피하면서 안정된 다수 연합을 공고히 했다. 당시 정치·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사회민주주의가 떠올랐다.
셰리 버먼은 급진적 우파에 대항해 성장한 스웨덴 사회민주주의가 그 핵심 개념의 일부를 우파에 기대고 있음이 흥미롭다고 지적한다.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노동자 집단에 손을 내미는 것과 동시에 급진적 우파가 자주 사용하던 ‘국민’ ‘민족’ 등의 개념도 받아들여 사회적 연대를 꾸려나갔다. 1928년 당 의장직을 맡은 페르 알빈 한손은 당을 ‘국민의 가정’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이는 당시 유럽 다른 지역의 파시스트·민족사회주의 운동의 기반이 됐던 개념이다.
이후 스웨덴 사민당은 국민 공동체적 연대에 호소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스웨덴 민족의 보호자로 규정했다. 그러는 한편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기술의 발전과 부를 이용하면서도 시장의 ‘파괴성’을 규제하고자 했다. 생산을 막거나 파괴하는 방식으로 경제에 간섭하지 않고, 부를 최대한으로 이끌어내 사회 전체의 선을 위해 분배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경제적 목표였다.
셰리 버먼은 당시 스웨덴 사민당의 성공에서 사회민주주의적 대안과 잠재력을 찾아보자고 한다. 그는 현재 세상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다른 어떤 것보다 사회민주주의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적극적인 비전”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한국의 진보 진영에서 ‘야권 통합의 키워드’로 활발히 논의되는 ‘진보적 자유주의’는 그에게는 논리에 맞지 않는 개념이다. 그는 ‘자유주의의 승리’를 주장하는 보수의 반대편에 선 진보 진영에서도 역시나 자유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유주의의 중요성을 재발견하자는 논의를 자유주의의 변용을 취하려는 것이라고 읽는다.
“시장은 하인으로선 훌륭하지만 주인으로선 끔찍하다”
사회민주주의는 일부 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한다. 혹은 지지를 받더라도 전폭적이지는 않다. 사회민주주의 비판론자들은 “시장이 하인으로서는 훌륭하지만 주인으로서는 끔찍하다”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논리가 허약하다고 지적한다. 자본주의와 시장의 기능을 인정하면서도 효율성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을 중시하고, 사회적 연대를 이끌어내려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청사진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경쟁사회에서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가는 일반 시민들에게 정치가 우선이냐, 경제가 우선이냐, 이데올로기가 무엇이냐는 낱낱의 삶에 비해 너무 추상적인 것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유럽의 정치를 바탕으로 쓰인 이 책의 주장은 질풍노도를 겪은 한국의 정치·사회에 꼭 들어맞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이상 경쟁에 지치지 않는 삶을 다음 세대에 넘겨주고 싶다면 어떤 이데올로기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표를 주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이런 논리, 저런 주장,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봐야 하는 이유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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