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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체의 여성을 붓 삼아



‘인간-붓’을 지휘하며 추상표현주의 작품을 선보인 ‘공간의 화가’ 이브 클랭의 <인간측정학>
등록 2010-12-01 15:57 수정 2020-05-03 04:26

1960년 5월9일 프랑스의 현대미술가 이브 클랭(1928~62)은 파리의 국제현대미술갤러리에서 (Anthropométries de lépoque bleue)을 시연했다. 회화용 붓을 ‘과도하게 심리적인 도구’라며 거부한 작가는, 벌거벗은 여성들을 붓 삼아 특별히 제작된 청색 물감으로 공간에 그림을 그려 보였고, 이내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흥행사 기질을 타고난 클랭은 거대한 캔버스 두 폭을 벽과 바닥에 설치해 무대처럼 꾸미고 그 위에 종이를 덮은 뒤, 잘 차려입은 유력한 초청 관객을 객석에 앉힌 다음, 정교하게 연출된 서커스처럼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 특이한 행사는 턱시도 차림의 클랭이 지휘자처럼 등장해 무대 오른편에 일렬로 앉은 7명의 악사에게 연주를 지시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20분 동안 단음을 반복하고 다시 20분 동안 침묵하는 음악은, 작가가 작곡한 (Symphonie Monoton-Silence)였다.)
곧 벌거벗은 아름다운 여성 3명이 등장하고, 청색 안료를 몸통 앞쪽에 바르더니 온몸으로 그림을 그렸다. 작가는 이들 ‘인간-붓’을 지휘하듯 주변을 서성거리며 의미심장한 제스처를 취했고, 여성들은 조각 받침대를 이용해 벽면에 몸을 찍고 바닥에 엎드린 동료를 당겨 이리저리 추상표현주의적인 흔적을 남겼는데, 선글라스를 착용한 한 여성은 바닥에 반쯤 누운 채 몸과 손으로 모노크롬 회화를 그리기도 했다.

이브 클랭(왼쪽)이 1960년 5월9일 파리의 국제현대미술갤러리에서 <청색 시대의 인간측정학>을 시연하고 있다.

이브 클랭(왼쪽)이 1960년 5월9일 파리의 국제현대미술갤러리에서 <청색 시대의 인간측정학>을 시연하고 있다.

자기 브랜드화에 열심이던 클랭은 울트라머린블루를 제 상징색으로 삼았다. 1954년 청색을 사용하기 시작해 1958년 청색 모노크롬 회화를 처음 완성한 그는, 1960년 5월 특수 제작한 울트라머린블루에 ‘인터내셔널 클랭 블루’(IKB·International Kein Blue)라는 이름을 붙였다. 미술재료상인 에두아르 아당의 도움을 받아 제작된 IKB는 로도파엠에이(RhodopasMA)라는 푸른색 안료에 고착액인 에틸알코올과 에틸아세테이트를 섞은 것으로, 프랑스 특허기록소에 등재된 일련번호는 ‘#63471’이다.

이렇게 시작된 연작은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되며 미술계의 논쟁거리가 됐다. 훗날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미술사가 데이비드 홉킨스가 이를 “전통적인 남성 중심주의 작업”이라고 비난하기도 했지만, 결과물로 남은 회화와 기록영화를 본 몇몇 예술가들은 큰 자극과 영감을 받았다. 예컨대 1985년 미국의 현대미술가 마이크 비들로(1953~)는 (Not Yves Klein)라는 제목 아래, 클랭의 인체측정 작업을 그대로 재연함으로써 야릇한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클랭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1962년 5월 12일 영화 의 시사회에 참석한 작가는, 그날 저녁 가벼운 심근경색 증세를 겪었다. 영화가 자신의 작업을 ‘엽기 행각’으로 소개하자, 약한 심장이 치미는 화를 이기지 못했던듯하다. 3일 뒤인 5월 15일, 그는 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가 기획한 전시 의 개막식에 참석했다가 쓰러졌고, 다음달 6일 세상을 떴다. 레스타니는 1960년 클랭과 함께 ‘누보 레알리슴(Nouveau réalisme)’ 운동을 주창하고 이끌어온 인물. 허나 구심점이었던 클랭의 서거로 인해, “미국의 팝아트에 대한 프랑스의 화답”이라 불렸던 누보 레알리슴도, 금세 힘을 잃고 말았다.

미술·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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