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준은 친구가 불쑥 내민 보따리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가져가보면 알 거야.” 친구 김태경은 그렇게만 말했던 것이다. 둘은 대학 시절 ‘74학번 이념 공부 모임’에서 만났다. 졸업 뒤 김태경은 ‘이론과실천’이라는 출판사를 차렸고, 강신준은 농협 조사부에 취직해 주경야독하며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펼쳐보니 원고 뭉치였다. 독일어판 1권을 한글로 번역한 원고였다.
군사정권 서슬 아래 가명으로 첫 번역
그 내용이 낯설진 않았다. 강신준은 대학 2학년 때 독일에 있던 누나에게 부탁해 독일어판 발췌본을 우편으로 받아 읽은 적이 있었다. 외국 우편은 안기부·문화공보부·체신부에서 차례로 검열하던 때였다. 대담하다 못해 무모한 짓이었지만, 못 보게 하니 더욱 호기심이 일었다. 일부러 표지를 바꿔 씌워 책의 정체를 군사정권의 공무원들이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만 이번엔 발췌본이 아닌 원본이었다. 익명의 ‘빵잡이’(징역을 살다 나온 운동권) 6명이 초벌 번역을 했으니 감수해달라는 게 출판사 사장이 된 친구의 부탁이었다. 그들 ‘빵잡이’의 정체는 지금도 알 수 없지만, 대학 3·4학년이면 ‘금서 번역’도 곧잘 해내던 시절이었다. 독문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강신준이 완결의 적임자라고 친구는 생각했을 터다. 그래도 그렇지, 쿠데타 주역인 전두환 대통령의 서슬이 밤과 낮으로 짜르르했다. 박사 논문 준비생 강신준은 제 앞길을 생각했다. 교수의 꿈은 둘째 치고, 다니던 직장마저 잃는다면?
거친 원고를 두루 감수해 펴냈으나, 결국 번역자의 이름은 가짜로 지었다. 한국 최초의 1권은 ‘김영민’이라는 허구의 번역자를 표지에 내붙이고 1987년 9월 세상에 나왔다. 그 운명은 여름 한철 매미와 같았는데, 오직 일주일 동안만 시중에 나돌았다. 문화공보부의 납본필증을 받아야 정식 판매가 가능했다. 책을 문공부에 납본하면 필증이 나올 때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어차피 허가해줄 일이 아니었다. 일주일 동안만, 필증 없이 책을 팔기로 했다. 예측한 대로 전두환 정권은 김태경 사장 등 출판사 관계자 2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했다. 그들이 잡히면 익명의 번역자를 알아내는 건 시간문제였다.
공안 검사가 강신준을 구했다. 실은 까지 구해냈다.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거든요. 경제학자들의 자문을 구하려 했는데, 아무도 나서는 학자가 없고…. 결국 검사가 혼자서 몇 번이나 읽었대요. 그래도 이적성을 입증할 논리를 찾지 못해 기소를 포기해버렸어요.” ‘금서’로 통했던 까지 덩달아 해금됐다. 무작정 기소하고 보는 요즘 검사들에겐 우스운 이야기로 들릴 것이다. 소련의 88올림픽 참가가 절실했던 당시 군사정권의 처지도 은근히 영향을 줬겠지만, 군인 출신 대통령의 진짜 마음을 이제 와서 캐낼 도리는 없다. 어쨌건 살판난 젊은 사장과 번역자는 곧바로 후속 번역에 착수했고, 이번엔 처음부터 강신준이 일을 도맡아 제 이름으로 책을 냈다. 1989년, 2·3권이 마저 나왔다. 한신대 해직 이후 강사로 떠돌던 김수행이 번역한 (비봉출판사 펴냄)이 나온 것은 그로부터 반년 뒤였다.
논문 준비하랴 은밀히 번역하랴 정신없던 젊은 경제학도는 이제 교수가 됐다. 그리고 20년 만에 다시 한번 (도서출판 길 펴냄)을 완역했다. 2008년 1권을 펴낸 뒤 2년여 만인 올해 8월, 마지막 3권이 나왔다. 2002년부터 시작한 번역 작업의 열매다. 강신준 동아대 교수(경제학)는 ‘옮긴이의 말’에서 “20년 동안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이제야 겨우 일부나마 내려놓는 기분”이라고 썼다.
그가 짊어졌던 짐의 정체는 조금 복잡하다. 우선 ‘이론과실천판’ 은 1990년대 후반 출판사가 망하면서 절판됐다. 남아있는 ‘비봉판’ 은 영어판을 번역한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독일 사람이다. 독일어로 을 썼다. 정확한 번역은 당연히 독일어판을 따라야 하는데, 오랫동안 ‘완역된 원전’이 한국에는 없었던 것이다. 20년 전 번역에 대한 아쉬움도 컸다. “젊을 때라 용감하게 번역했지만, 실은 한두 번만 읽어본 상태였고, 한글로 다듬는 수준도 떨어졌거든요.”
그러나 진짜 ‘짐’은 따로 있다. 마르크스경제학의 현실이다. 한국경제학회 회원은 2천여 명이다. 비주류 경제학자들이 모인 사회경제학회 회원은 150여 명이다. 그나마 케인스주의 등을 주로 전공했고, 마르크스경제학 전공자는 10여 명 정도다. 박사학위 소지자를 포함해서 그렇다. “몇몇 대학에 겨우 하나씩 있지요.” 마르크스경제학 전공 교수들이 얼마나 있는지 물었을 때, 강 교수는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손가락을 짚어 헤아렸다.
“이 완역되자마자 1991년 소련이 붕괴했지요. 마르크스를 공부하겠다고 독일에 유학간 학자들이 돌아와서 ‘마르크스는 틀렸다’는 이야기만 하고 다녔어요. 을 한국의 현실에 본격적으로 접목시킨 학문적 논의는 거의 없었고…. 진보세력 가운데도 마르크스주의를 경시하는 그룹이 주류를 이뤘지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우리는 이 책을 제대로 공부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겁니다.”
영국 〈BBC〉가 1990년대 말, 지난 1천 년간 인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책을 조사해 발표했다. 이었다. 이 2008년, 정부 수립 이후 한국 사회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책을 조사해 발표했다. 이었다. “그런데도 정작 제대로 공부한 사람은 거의 없어요. 자본주의 비판 말고는 별 내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자본주의가 모순에 가득 차 있다는 건 요즘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알아요. 그걸 왜 3천 쪽에 걸쳐 썼을까요? 마르크스의 에는 ‘건설’의 내용이 있거든요. 자본주의 상품관계, 자본의 축적, 자본의 재생산 등을 품는 동시에 이를 넘어서는 ‘건설’ 말입니다.”
강 교수는 러시아 혁명과 북유럽 사회민주주의를 비교했다. “제2인터내셔널의 지도부였던 로자 룩셈부르크, 카우츠키, 베른슈타인 등이 모두 ‘러시아 혁명은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다’라고 했어요. 러시아 소비에트는 레닌주의, 또는 더 나쁜 왜곡인 스탈린주의지요. 마르크스주의의 전부는 아니지만 어떤 부분을 승계한 것은 오히려 북유럽입니다. 지난 100여 년 동안 그들이 구축한 엄청난 복지제도의 가닥마다 마르크스가 제시한 새로운 사회 건설의 처방이 담겨 있어요. 한국도 마르크스의 과학적 요소를 잘 추렴해서 북유럽 모델보다 더 좋은 생산체제를 갖출 수 있습니다.”
북유럽 모델의 가닥마다 숨은 마르크스식 처방그것이 완역본을 다시 낸 이유다. 20년 전, 영문 모를 보따리를 열었을 때, 전율했던 이유다. 옮긴이의 해제에서 강 교수는 이 탄생한 배경으로 ‘이상한 가난’을 꼽았다. 가난은 예전부터 있었으나, 죽도록 일해도 가난한 자본주의의 ‘특수한 가난’에 대한 의문에서 마르크스의 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상한 가난의 시대를 강 교수는 오늘에 다시 만난다. 은 여전히 까다로운 책이지만, 자본주의도 여전히 잔인하다. 둘 중에 무엇으로부터 희망을 얻을 것인가. 강 교수는 묻는다.
글 안수찬 기자 ahn@hani.co.kr·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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