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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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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강호를 뒤흔든 비평의 강호

불멸회원 로쟈가 회고하는 인문학 커뮤니티 ‘비평고원’ 성장사…
10주년 카페북 출간을 계기로 돌아본 어제와 오늘
등록 2010-07-14 12:18 수정 2020-05-02 19:26
비평고원 10주년 카페북은 1072쪽의 어마어마한 두께에 그간의 역사를 담았다. 10주년을 맞아 비평고원은 하지 않던 일을 했다. 자축하는 오프라인 모임(오른쪽)을 마련한 것이다.

비평고원 10주년 카페북은 1072쪽의 어마어마한 두께에 그간의 역사를 담았다. 10주년을 맞아 비평고원은 하지 않던 일을 했다. 자축하는 오프라인 모임(오른쪽)을 마련한 것이다.

시작은 미미했다. 2000년 봄, 지방대학의 국문학과를 졸업한 한 청년이 대학원 진학을 위해 서울로 ‘유학’왔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서울살이에 외로움을 느끼다 마침 등장한 인터넷 세계에 빠져들었고, 별다른 생각 없이 ‘쿤데라와 고진의 고원’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다. 전자우편이 상용화된 지 1년 남짓이었고 ‘카페’라는 이름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붐을 타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가 좋아하던 작가가 밀란 쿤데라여서 운영자 닉네임은 ‘쿤데라’로 정했다. 관심을 갖던 일본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의 책들이 두세 권 출간돼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은 아직 번역되지 않았지만 인문학 동네의 ‘전설’로 떠돌고 있었다. 일종의 팬카페인 ‘쿤데라와 고진의 고원’은 이들을 조합한 이름이었다.

그들의 미약한 시작 ‘쿤데라와 고진의 고원’

쿤데라 소설의 애독자이자 고진의 를 흥미롭게 읽은 터라 나는 우연히 발견한 이 카페에 호감을 느끼고 가입해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대학과 학원의 강사 생활을 하면서 ‘로쟈’란 필명으로 인터넷 세상을 어슬렁거리던 때였다. ‘도스토예프스키’란 팬카페를 나름대로 운영 중이었지만 더 열심히 글을 올린 곳은 ‘쿤데라와 고진의 고원’이었다. 그건 이른바 대화의 ‘상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령 “쿤데라 작품엔 절대적인 가치(구원)나 종착역이 존재하지 않고 웃음은 바로 그 작품 전체 구조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세상 전체가 농담이 되는 것이죠. 한데, 도스토옙스키 작품엔 웃어서는 안 되는 ‘종착역’(구원)이 전제된 상태로 현실에 역투사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에서 유머는 진지함을 보충해주는 데 그치고 있습니다”라고 주인장이 주장하면, 나는 “도스토옙스키에게 웃어서는 안 되는 종착역이 있다는 건 그의 사상의 경우에 국한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아시다시피 도 미완성작이고, 거기엔 별개의 사상과 감정들이 극단의 스펙트럼까지 공존하며 이질적인 웃음과 비장함을 빚어내고 있습니다”라고 반박하는 식이었다.

아주 무겁지는 않더라도 제법 ‘진지한’ 대화가 자주 오고 갔고, 카페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인문학 전공자뿐만 아니라 대학생과 직장인이 가세했고, 관심사도 더욱 넓어졌다. 거기에 보조를 맞춰 2004년 말에는 카페명이 ‘비평고원’으로 개명됐다. ‘쿤데라와 고진’이라는 특수성이 ‘비평’이라는 보편성으로 전화된 사례라고 할 만하다. 닉네임을 ‘소조’로 바꾼 운영자 조영일씨의 표현을 빌리면, 비평고원은 곧 인터넷 공간의 ‘강호’가 됐다. 카페 개설 10주년을 기념해 출간된 책 (도서출판b 펴냄)의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적었다. “무협소설에 비유하자면, 한국 지성계가 환관들에 의해 유지되는 국가기구의 하나(교육 장치)라면, 비평고원은 오로지 자신의 무공에 의지하여 ‘의’(義)를 행하는 강호(또는 무림)라 하겠다.”

그들의 강력한 무기, 고진과 지젝

얼마간 과장된 것이긴 하지만, 이 재치 있는 비유에는 지난 10년간 온라인의 대표적 인문학 커뮤니티로 성장한 비평고원에 대한 자부심이 담겨 있다. 2007년부터는 언론의 본격적인 주목까지 받게 된 비평공간은 이미 “저마다 무림의 고수를 자처하며 갈고닦은 내공으로 일합을 겨루는 공간”(), “고수들이 학벌이나 나이 등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필력으로만 자웅을 겨루는 공간”() 등의 평판을 얻은 터다. 조영일씨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비평고원의 존재 의의를 한국 사회의 “관료지성에 대한 일반지성(또는 대중지성)의 강력한 비판”이라고까지 규정했다. 크라운판 1072쪽에 달하는 이 묵직한 책의 무게가 그 비판의 무게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관료지성’에 대한 비판의 ‘무기’로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과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자주 참조된 것도 비평고원의 특징이라 할 만하다. 사실 조영일씨는 가라타니 고진 선집을 기획한 ‘전담 번역자’이기도 하며, ‘로카드’란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이성민씨 역시 지젝과 그의 친구들인 ‘슬로베니아 라캉학파’의 책 다수를 한국어로 옮겼다. ‘로쟈’ 또한 이들에 대한 글을 온라인에 많이 올린 사람 중 하나다. 한국 지식사회에서 고진과 지젝, 두 사람이 누리는 평판의 상당 부분은 비평고원에 빚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카페출석부’까지 포함해 전체 11부로 구성된 은 그러한 비평고원 10년의 궤적을 담고 있다. 조영일씨는 이 책이 ‘비평고원 베스트 앨범’이라기보다는 ‘비평고원 매뉴얼’로 생각해주기를 당부했는데, 이 유례없는 ‘카페북’ 혹은 ‘커뮤니티북’에서 차별적인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논쟁의 고원’ 장이다. 3편씩 대논쟁과 소논쟁이 선별됐는데, ‘카페 소통 논쟁’ ‘레비나스 논쟁’ ‘번역 논쟁’ 등이 대논쟁의 주제다. 책은 온라인 논쟁의 특성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많은 분량의 댓글까지도 그대로 옮겨놓았다. 편집자에 따르면, 이 논쟁적인 글들은 “탁월한 학술적 논쟁 혹은 고도의 공동 사유의 결과물이 아니다. 오히려 인터넷이 노정하는 취약성을 드러내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균형점을 찾으려는 지속적 ‘불균형 상태’를 보여주는 글들”이다. 그러한 ‘불균형 상태’야말로 제도권의 ‘관료지성’이 드러내놓기 꺼리고 기피하는 부분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거꾸로 이 독특한 ‘학술 공간’이 예외적인 생명력을 유지하는 비결일지도 모른다.

비평고원이 10년 동안 지속될 수 있던 원동력으로 조영일씨는 ‘오프라인적 요소 배제’를 꼽았다. 다른 온라인 지식 공동체들이 오프라인화를 추진하면서 흐지부지해진 사례와 견줘 그렇다는 것이다. 카페의 정기모임은 1년에 고작 한두 차례 정도이니 비평고원의 핵심 회원(‘불멸회원’)들조차 서로의 ‘안부’를 잘 알지 못한다. 지난 7월3일 저녁 서울 신촌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카페 정기모임은 그런 의미에서 드문 자리였다. 물론 출간을 기념하면서 10주년을 자축하는 자리였다. 회원 30여 명이 모인 이 자리에서는 10년 뒤 을 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덕담으로 나왔다. 그게 현실이 된다면 아마도 온라인 커뮤니티의 또 다른 ‘기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이 있는 건 아니다. 카페 회원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현재 1만 명이 넘었지만 일일 방문자 수는 정체 양상을 보인다.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회원 수도 기대만큼 늘지 않고, 이 때문에 ‘전성기’가 지난 것이 아닌가란 인상마저 준다. 말하자면 재충전과 재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그 계기가 될 수 있을까.

그들의 창대한 미래, ‘비평고원들’

비평고원의 회원이든 아니든 “비평고원이 한국 지성계(또는 한국 인문학)를 변화시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조영일씨의 말에는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비평고원과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가 10개 정도 된다면? 그리고 그것들이 10년, 20년 계속된다면?”이란 그의 질문이다. 이 질문이 여전히 우리를 들뜨게 한다면, 비평고원은 대표적 온라인 지식 공동체로서 앞으로도 꾸준히 자기 몫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평고원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비평고원들’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것이다.

로쟈 인터넷 서평꾼·blog.aladdin.co.kr/mram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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