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책 속의 책] 좋은 삶을 다 함께 고민하는 사회



공리주의와 평등적 자유주의를 넘어 공동선을 찾는 여정 <정의란 무엇인가>
등록 2010-07-03 15:30 수정 2020-05-03 04:26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김영사 펴냄, 1만5천원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57·미국 하버드대 교수)은 존 롤스(1921~2002) 이후 영어권 정치철학계를 대표하는 사람 중 하나다. 27살에 하버드대 교수가 된 샌델은 29살 때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를 펴내 명성을 얻었다. 샌델은 이 책에서 롤스의 평등적 자유주의에 대응해 ‘공동체주의’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이후 샌델은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마이클 월저, 찰스 테일러와 더불어 공동체주의 4대 이론가로 알려졌다.

전체냐 개인이냐

2009년에 출간한 는 지난 20여 년 동안 수천 명의 학생과 함께했던 ‘정의’ 강의를 바탕으로 삼아 쓴 책이다. 통상의 정치철학서와 달리, 수많은 구체적인 사례를 실감나게 제시함으로써 ‘정의’라는 추상적 개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철학적 고민은 둘 이상의 원칙이 서로 충돌할 때 그 모순을 해결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이 죽어야만 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것은 도덕적 원칙이다. 동시에 사람의 생명을 가능한 한 많이 살려내는 것도 도덕적 원칙이다. 이 두 원칙이 충돌할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이 도덕철학의 출발점이 되는 셈인데, 정치철학도 다르지 않다. 샌델의 이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딜레마를 다룬다.

샌델이 여기서 정의를 둘러싼 딜레마적 요소로 제시하는 것이 ‘행복’과 ‘자유’와 ‘미덕’이다. 전체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 정의냐, 개인들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정의냐, 아니면 공동체의 미덕을 장려하고 ‘좋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 정의냐? 행복을 극대화하려다 보면 개인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다 보면 공동체의 미덕이 훼손될 수 있다. 이 딜레마적 상황을 살필 때 샌델이 먼저 검토하는 것이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다. 벤담의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요약되는데, 전체의 행복이 최대치가 되게 하는 것을 정의로 간주한다. 벤담은 이런 생각을 1780년 에서 피력했는데, 5년 뒤 이마누엘 칸트는 (1785)에서 벤담의 사상을 맹비판했다.

벤담의 논리는 전체의 행복을 위해 소수 개인들을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결코 정의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칸트의 주장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을 수단으로 삼지 않고 목적으로 대하는 것이 정의다. 인간이란 이성을 사용해 스스로 법칙을 세우고 그 법칙에 입각해 행위할 수 있는 존재다. 자기가 세운 원칙을 자기가 지키는 것, 이것이 바로 자유다. 인간은 누구나 이 자유를 지닌 존재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200년 뒤 롤스는 칸트의 이 주장에 입각해 ‘평등적 자유주의’ 이론을 제시했다.

정치가 개인의 도덕적 판단에 개입해야

샌델은 칸트와 롤스의 자유이론이 매우 설득력 있기는 하지만, ‘무엇이 좋은 삶이냐’에 대한 대답을 괄호로 묶어놓은 채, 모든 사람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정의의 일반적 원칙만 이야기한다고 비판한다. 그리하여 샌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관으로 눈을 돌린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의는 좋은 삶이라는 미덕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정치는 시민에게 무엇이 좋은 삶인지 터득하게 해주는 것이다. “정치의 목적은 사람들이 고유의 능력과 미덕을 계발하게 만드는 것, 곧 공동선을 고민하고, 판단력을 기르며, 시민 자치에 참여하고, 공동체 전체의 운명을 걱정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미덕을 장려함으로써 좋은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정의다.

샌델은 지난 수십년 동안 미국의 진보 정치가 시민의 도덕적·정치적 신념을 존중한다면서 그 신념의 내용을 외면하고 모른 척해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회피에서 나온 존중은 가짜이기 십상이다.” 샌델은 좋은 삶을 다 같이 고민하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의 모습이라면서 정치가 개인의 도덕적 판단과 실천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는 것이 결국 공동선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고명섭 기자 한겨레 문화부문 michael@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