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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책] “세계에 눈을 떠라” 연암의 당부



예전 번역본의 오류를 꼼꼼히 바로잡은 김혈조 교수의 완벽본 <열하일기>
등록 2010-07-03 15:18 수정 2020-05-03 04:26
〈열하일기〉(1·2·3권)

〈열하일기〉(1·2·3권)

 

(1·2·3권)
박지원 지음, 김혈조 옮김, 돌베개 펴냄, 각 권 2만8천원

돌베개 출판사판 는 연암 산문 연구에 몰두해온 한문학자 김혈조 교수(영남대 한문교육과)가 새 번역으로 완역 출간한 것이다. 1932년 간행된 박영철본 를 저본으로 삼되, 기왕에 나와 있는 번역본들의 오류를 꼼꼼히 바로잡았다는 자신감이 넘치는 역작이다.

이용후생 사상이 녹아든 역작

조선 최고의 문학작품이라 일컬어지는 는 연암 박지원(1737~1805)이 1780년 5월 청나라 건륭제의 생일을 축하하려는 조선 사절단에 끼어 중국을 여행하며 보고 듣고 느낀 일을 기록한 기행문이다. 한양을 떠나 요동과 북경을 거쳐 열하로 나아가 그곳에 머물다 돌아오기까지 6개월 가까운 여행이었는데, 돌아오자 집필에 들어가 1783년에 완성했다.

청나라의 신문물을 목도하며 받은 충격과 이를 낱낱이 소개하겠다는 기록자의 치열한 자세가 배어 있으며, 중국의 역사와 풍속, 지리, 토목, 건축, 천문, 선박, 문화와 정치에 이르기까지 광범하게 섭렵한 방대한 저작이다. 이번 번역본에는 옮긴이가 중국에 머무는 동안 연암의 여정을 따라가며 찍은 사진 도판들이 단정하게 적소에 박혀 있다.

최초의 전문 번역은 의 저자인 김성칠이 1948~50년 내놓은 번역본인데, 안타깝게도 3분의 1가량만 번역됐다. 번역 사상 획기적인 저술로 꼽히는 건 북한에서 1950년대 발간된 리상호의 첫 완역본이다. 1966~73년에 출간돼 일반인과 학자들에게 널리 읽힌 이가원의 완역본 와 1982~84년 윤재영의 박영문고본 완역 등이 주요한 번역으로 꼽힌다.

옮긴이 김혈조 교수는 역자 서문에서 “기존 번역서들에는 밝히지 못한 전고와 오역이 대단히 많아서 원작 내용을 왜곡한 경우가 있었다”고 밝힌다. 그 요지는 김성칠본과 리상호본 이후 출간된 번역서들이 이 두 번역본을 베끼거나 과도하게 참조한 사례가 꽤 있다는 것이다. 두 번역본의 오류가 새 번역에서 되풀이되는 ‘오역의 베끼기’도 심심찮게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라마교에 대한 글인 ‘황교문답’에서 티베트에 다녀온 명나라 사람의 이름을 말한 부분을 리상호본이 ‘중 지광, 오향(吾鄕) 하객 등 여러 사람’이라고 번역했는데, 이후 이가원본 등 대부분 번역에서 오향을 사람 이름으로 베끼거나 얼버무렸다. 옮긴이는 오향(吾鄕)은 ‘우리 고향’이라는 뜻이므로 ‘승려 지광, 우리 고향의 하객 등 여러 사람’이 맞다고 말한다.

는 조선이 중국과 세계를 향해 눈을 뜨고 신문물을 받아들일 것을 외쳤던 230년 전 지식인 연암의 이용후생 사상이 녹아든 저작이다. 나오자마자 인기를 끈 ‘베스트셀러’였지만, 20세기 초까지 활자로 간행되지 못하고 사실상 불온서적처럼 (한문) 필사본으로 돌아다닌 책이기도 하다. 연암의 당대 조선에 대한 풍자와 가차 없는 비판, 정조의 연암 문체에 대한 낙인찍기 등이 그 까닭이다.

당대 조선에 대한 신랄한 풍자

는 ‘압록강을 건너며’(도강록)로 시작되는데, 서두에서부터 연암은 명나라가 망한 지 130여 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명이 중국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믿는 조선의 세태를 비판한다. 그는 “명나라 왕실이 오히려 압록강 동쪽에 존재”하고 있으니, 자신이 명나라 연호 ‘숭정’을 언급하는 것은 “숭정이라는 연호라도 존숭하여 중국을 보존하려는 까닭”이라고 비틀어 적는다. 요동 벌판을 지나면서는 조선의 고대 강역을 한반도로 축소시킨 역사가들과 의 저자 김부식을 비꼬는가 하면, 코끼리 이야기를 통해선 하늘을 창조주로 보고 매사를 이(理)로 해석하는 ‘경직된 주자학적 사유체계’를 신랄하게 꼬집는다.

는 연암의 후학 유득공이 말했듯이 “중국의 노래나 풍습에 관한 기록조차도 나라의 치란(治亂)에 관련된 것들이고, 성곽·궁실 묘사, 농사와 목축, 도자기를 굽고 쇠를 다루는 기술까지, 그 일체가 기구를 과학적으로 편리하게 사용하여 민생을 두텁게 하자는 이용후생의 길이 되는 내용”이다.

 

 

허미경 기자 한겨레 문화부문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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