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라는 연극과 책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지금도 가끔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런데 이 작품의 제목을 우리말로 번역하려면 영 민망하게 되는데, 곤혹스럽게도 ‘보지의 독백’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스럽다고 보이는 이 제목의 이미지와 달리 연극에서 깊은 감동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억울하고 부당하게 왜곡돼온 여성의 성적 주체성에 대해 여성 성기가 가장 어두운 곳에서 외치는 절규와 호소에 공감하는 바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이름이란 어디에 ‘이른다’는 뜻과 연관이 있어서 이름의 주인이 이르렀으면 싶은 것, 됐으면 싶은 것, 그답게 꽃피웠으면 하는 것, 그가 도달했으면 싶은 목표로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다. 또 이름이 무의식적으로 우리를 그 목표로 이끌어가는 힘을 발휘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한 사회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어떤 것을 부르는 이름과 호칭을 살펴본다면 그것이 어떤 환경에 있으며, 무엇을 지향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럼 ‘성기’의 이름은 어떠한가?
‘보지’(寶池)의 어원은 ‘보배로운 연못’이라는 뜻에서 나왔다고 본다. 남성의 성기와 합일해 인간이 누리는 가장 궁극적인 느낌인 무아지경의 기쁨을 얻는 곳이라는 것과,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생명, 한 우주를 만들어내는 통로라는 점에서 말 그대로 보배로운 연못으로 부를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곳인 것이다.
남성의 성기를 이르는 ‘자지’(子枝)라는 이름 또한 ‘자식을 낳는 가지’라는 뜻이다. 자지라는 이름이 생명의 씨앗을 만들어내는 줄기라는 인식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사실 자지나 보지는 전혀 남을 경멸하는 뜻이 없고 다만 생명의 원리를 표현했을 뿐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이름들이 욕으로 비속어로 전락한 것은 그 사회가 성을 터부시했기 때문이다. 사회가 터부시하는 어떤 것을 자신을 향해 공개적으로 드러내 부르면 대다수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듣고 왕따당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위협이 되고 모욕이 되는 것이다.
이런 문화 속에서 특히 여성은 자신의 성기를 부끄러워해서 자신 있게 부르지 못하고 ‘밑’이라든가 ‘거기’라고 이름 붙이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성기를 더러워하거나 천하게 생각해 ‘지저분한 곳’으로 말하고, 심지어는 극단적으로 혐오하면서 자신의 성기를 ‘시궁창’으로 표현하는 이가 있을 정도다. 우리 일상에서도 사내아이의 ‘자지’보다 여자아이의 ‘보지’를 거론할 때 훨씬 당혹해하고, 그래서 저도 모르게 ’자지‘에 살짝 편승해 ‘잠지’ 정도로 부르는 모습을 보게 된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우선 오래전부터 내려온 남성 위주의 이데올로기가 여성의 주체성을 억압해온 탓이 크다고 본다. 그중에서도 여성의 성적 정체성을 억압한 것이 여성의 진정한 자아실현에 큰 장애물로 작용했다는 점을 깊게 통찰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가장 밑바탕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곳에 부끄러움과 더러움, 하찮음의 느낌을 가지면서 나를 나답게 활짝 꽃피운다는 것은 밑뿌리부터 흔들리는 기반 위에 세워진 집과 같기 때문이다.
성의학자인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사회적 요인과 더불어 개인적 요인 또한 덧붙이고 싶은데 여성이 개인적으로 자신의 성기를 너무나 보배롭고, 예쁘고, 황홀한 그 무엇으로 인식할 수 있는 만족할 만한 성적 경험이 없던 것도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의외로 많은 여성이 밤을 두려워하고 섹스를 기피하고 있으며, 다음과 같은 솔직한 표현을 하기도 한다. “남자가 노력하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항상 빨리 사정해버리니 오르가슴을 느끼기 어려워요.” “내 평생 섹스가 왜 좋은지 모르겠고, 남자는 그저 제 욕심만 챙기는 것 같아요.” “내가 꼭 정액받이가 된 것 같고 남자 성욕의 배설구나 쓰레기통이 된 느낌이에요.” 이는 사회 이데올로기의 문제라기보다는 자신의 파트너와 몸과 마음과 영혼까지 멋지게 소통할 수 있는 섹스의 경험을 못해서 여성의 성적 정체성이 왜곡된 경우다.
그러고 보면 ‘자지’ ‘보지’라는 이름의 의미를 왜곡 없이 사회적으로 인식시키는 문화적 노력과 더불어 동서양을 아우르는 제대로 된 성 원리와 실천법을 알려주는 교육의 장이 만들어진다면 자아실현 지수와 행복 지수가 의외로 많이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재형 미트라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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