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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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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임감! 그 애사심!



공동체에 헌신하는 ‘갯과’ 조선희 전 한국영상자료원장…
진짜 갯과는 고양이처럼 홀로 세상과 대면하는구나
등록 2010-05-12 06:54 수정 2020-05-02 19:26

젊을 때 죽 해오던 일을 접고, 40~50대에 새 일을 시작하는 것. 내가 40대 후반이다 보니 이제껏 해온 일을 그만두는 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주변에서 나온다. ‘인생 이모작’이란 말도 이와 비슷한 것일 텐데, 사는 게 말과 달라서 막상 ‘이모작’을 보란 듯 성공적으로 해나가는 이가 많지 않다. 나 역시 오래 다닌 신문사를 그만두고 영화 일 한다고 해놓고 별 성과가 없다. 아직 과정이라고 생각하지만, ‘과정’이라는 말이 위로가 되는 듯하면서 끔찍하기도 하다. 이렇게 계속, 평생이 과정이라면…, 으.
그러는 동안 어딘가 아픈 것 같은데 병원 가면 ‘별 탈 없다’는 말을 듣고 나오는 일이 잦았다. (누군가 갱년기 증상이라고 했다.) 나와는 전혀 무관할 것으로 여기던 우울증 비슷한 증상도 겪었다. (지난해 시나리오 초고를 하나 쓴 직후 정서적으로 좋지 않아 정신과를 갔더니 의사는 ‘크리에이션 피버’라고 했다. ‘크리에이터’가 되기도 전에 ‘크리에이션 피버’부터 앓다니….) 이런저런 증상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얼마 전 나보다 한참 일찍 ‘인생 이모작’을 시작한 한 여자 선배를 만나고 새삼 알았다.

조선희 전 한국영상자료원장. 일러스트레이션 임범

조선희 전 한국영상자료원장. 일러스트레이션 임범

조선희(50)는 나보다 두 살 많지만, 언론사 입사는 7년이나 빠르다. 에 다니다 창간 때 옮겨와 문학담당 기자로 이름을 날렸고, 을 만들어 편집장을 했고, 2002년 언론사 생활 20년을 접고 소설가로 나섰다. (소설책도 두 권 냈다.) 최근 3년 동안은 한국영상자료원장을 맡았다가 임기가 끝난 뒤 다시 집에 들어가 소설을 쓰고 있다. ‘이모작’ 잘하고 있다고 보이지 않는가.

한국영상자료원장 임기 말에 조선희는 책을 냈다. 이라고 한국 원로 영화감독들에 관해 쓴 책인데, 그를 만나 책을 받고 3일 지나 전화가 왔다. “그 책에 아무개 감독에 대해 쓴 부분 봤어?” “아직 안 봤는데….” “이거 영 관심이 없구만!” 전화가 뚝 끊겼다. 큰일 났다 싶어 얼른 아무개 감독 부분만 읽고서 전화를 했다. “어때? 재밌어?” “재밌어, 재밌어!” “그렇지? 그게….” 글 잘 쓴다는 말을 오래전부터 들어온 사람인데, 칭찬에 굶주려 하다니. 그리고 얼마 지나 전화가 왔다. 술 마시자고 했다.

품행 단정하고 정숙한 조선희를 ‘술꾼’이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그도 분위기가 맞으면 술을 제법 마신다. 둘이서 폭탄주를 돌려 마시며 그가 한 말인즉, 책이 초판도 다 안 팔렸다는 거였다. 그나마 팔린 게 대부분 자신이 사서 지인들에게 돌린 것이라고 했다. 이러니, 지금 준비하는 소설도 기껏 썼는데 몇 사람만 보고 마는 게 아닌지 우울해지더라는 거였다. (그가 전에 낸 소설책들은 반응이 좋았지만 열광적이진 않았다.) 그날도 기분이 자꾸 가라앉는 것 같아 술 마시고 풀어야겠다고 했다.

흔히 사람을 ‘갯과’와 ‘고양잇과’로 나눌 때, 내 생각에 조선희는 ‘갯과’였다. 공동체를 걱정하고, 공동체에 책임지며 헌신하는…. (그의 장편 에도 ‘갯과’의 품성이 보인다.) 1995년 을 창간할 때 조선희는 회사 경영진과 잡지의 방향을 놓고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게 정점에 이르던 어느 아침에 일어나니, 아파트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어지더라고 했다. 또 언젠가는 꿈에 사람 몇이 안 좋은 모습으로 나타나, 잠에서 깬 뒤 신문사 걱정에 밤새 뒤척였다고 한다. 그 책임감! 그 애사심! 그가 언론사를 떠날 때 내가 그랬다. “조 선배는 집단 안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조선희가 회사를 떠난 지 몇 년 뒤, 그가 한국영상자료원장 후보에 올랐다는 말을 듣고 난 당혹스러웠다. 창작하겠다고 나선 사람에게 옆길 같았다. 그에게 전화를 했더니, 비로소 근황을 털어놓는데 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무기력감, 우울증 같은 것에 시달렸다고 한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이 필요해 보였다. ‘역시 갯과인데….’ 소설가의 꿈이 컸겠지만, 그가 성취를 이룬 자리에서 오래 죽치며 누리지 않고 새로운 길로 간 데는, 후배들에게 일을 물려줘야 한다는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도 적잖이 작용했겠구나 싶었다. ‘진짜 갯과는 그 갯과스러움 때문에 집단을 떠나, 고양이처럼 홀로 세상과 대면하는 길로 가는 거구나!’

한국영상자료원장으로 있으면서 조선희는 활기차 보였다. 임기 끝날 때 그랬다. 이제 가뿐하게 창작에 전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래도 ‘갯과’가 다시 홀로 새 일을 시작하려니 초조함이 생기는 모양이지만, 아무리 봐도 ‘크리에이션 피버’부터 앓는 나 같은 이가 걱정해줄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얼마 전에 봤더니 그랬다. 지금 준비 중인 소설을 다 마치기 전에 죽거나 크게 다치면 어쩌나 싶어 걱정이라고. 그 막강한 책임감이라면 잘하지 않겠나.

임범 애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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