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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당신의 감정을 평가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변화시킨 ‘감정문화’를 추적하는 문화비평서 <감정 자본주의>
등록 2010-04-09 11:52 수정 2020-05-02 19:26

20세기 초부터 미국 경영자들은 심리학자들에게 생산성 문제에 대한 조언을 부탁하기 시작했다. 정신분석학자 엘튼 마요는 1924년부터 1927년까지 제너럴일렉트릭 산하의 공장 노동자들을 면담했다. 마요가 이끄는 연구진은 임상심리학의 치료 방식을 그대로 노동자들에게 적용했다.

마요의 연구, 정신분석학을 작업장으로

〈감정 자본주의〉

〈감정 자본주의〉

한 여성 노동자는 면담 중에 자기가 왜 상사를 싫어하는지 깨달았다. 그 상사가 자기가 싫어하는 계부를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여성 노동자는 어머니로부터 승진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었다. 그가 업무 수행에 차질을 빚은 가장 중요한 원인은 어머니였다.

자본주의의 황금기라 부르는 서구의 1880년대부터 1920년대 사이에, 경영 환경은 거대한 변화를 맞는다. 자본이 집중되고 생산이 표준화되고 조직이 관료화되고 대기업이 등장했다. 노사관계의 중요성을 깨달은 경영자들은 노동자의 인성에 주목했다. 마요의 연구 덕택에 심리학이 작업장에 파고들었다. 노동자의 사적 영역이 공적 영역으로 흡수되고 개인의 감정이 생산성 문제와 결합됐다.

(에바 일루즈 지음, 김정아 옮김, 돌베개 펴냄)는 자본주의(혹은 모더니티)가 어떻게 개인의 감정을 생산성과 연결시키는지, 어떻게 개인이 관계 맺는 방식을 변화시키는지 설명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노동경제학의 ‘감정노동’과 관계가 없다. 이 책은 문화비평서이며 지나치게 광대한 영역을 함축적으로 다루고 있다. 에바 일루즈의 논점을 따라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례들에 집중하는 것이다.

2005년 4월29일 는 결혼생활에 문제를 겪고 있는 뚱뚱한 여성을 출연시켰다. 남편과의 관계에 장애가 되는 것은 여자의 비만이었다. 패널로 출연한 심리학자는 여자가 비만을 방치하는 것이 남편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식으로, 이 토크쇼의 출연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분석대 위에 올려놓았다. 오프라 윈프리는 치료적인 방식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으로 유명세를 탔다.

임상심리학을 배운 저널리스트 대니얼 골먼은 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썼다. 그에 따르면 감정지능이란 “사회적 지능의 한 유형으로서, 자기와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점검하고…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결정하는 능력”이다. 한 다국적 컨설팅 회사는 감정지능을 경력사원 평가에 적용했다. 20점 만점에 평균 9점을 넘긴 사원은 다른 사원에 비해 139%의 추가수익을 올렸다. 로레알에서 감정능력 측정을 토대로 선발된 판매직원은 다른 외판원에 비해 1인당 9만1370달러 정도 높은 실적을 냈다.

모든 사적인 것은 공적인 것이다

위의 두 사례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에바 일루즈는 미국 사회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1909년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방문한 이래로 미국은 개인의 감정에 치료적으로 접근하는 인식의 혁명을 겪게 된다. 이전까지 지극히 자연스럽고 주관적이던 자아나 관계의 문제가 분석과 테크닉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정신분석학은 학계와 대중 사이에 폭넓게 걸쳐 있었다. 프로이트에 수정과 가필을 더한 심리학자들의 영향 아래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서점가를 점령했다. 자아는 ‘있는 것’이 아니라 ‘성취하는 것’이며, 이 성취를 위해 치료와 분석이 요청된다. 이상적 자아란 성취되기 어려운 것이므로 사회에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병리적인 자아들로 넘쳐난다. TV 토크쇼부터 출판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스런 감정을 호소하고 자기계발의 지침을 갈구한다. 이런 고통의 바다에 국가와 자본이 개입한다. 1946년 미국에 국민정신건강협회가 창설된다. 1950년 이 협회의 예산은 870만달러에 불과했지만 1967년 예산은 3억1500만달러였다.

자아가 ‘치료 내러티브’로 재구성되면서 노동생산성과 인간관계의 문제도 다른 방식으로 상상된다. ‘감정지능’으로 노동자의 생산성을 예측하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 있다. 에바 일루즈의 가장 중요한 논점은, 사적인 것들이 모두 공적인 것의 수면 위로 떠오른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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