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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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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짓도 그가 하면 예술!

신세대 문화 아이콘으로 등극한 ‘레이디 가가’…
하위문화 코드에서 출발해 전위적 예술상품으로 각광받기까지
등록 2010-04-01 16:56 수정 2020-05-03 04:26
레이디 가가. AP연합/ MATT SAYLES

레이디 가가. AP연합/ MATT SAYLES

‘레이디 가가’(Lady Gaga)는 어느새 롤모델이 되었다. 그의 창대한 시작은 노래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팝송 가운데 하나는 가가의 (Telephone), 비욘세가 피처링으로 참여한 노래다. 지난해 말부터 클럽을 장악한 노래는 “가가 울랄라~”로 시작하는 (Bad Romance), 역시 가가의 1집 리패키지 앨범 (The Fame Monster)에 실린 노래다. 2008년 9월에 발매된 (The Fame)은 2010년 3월 넷쨋주 현재 미국 빌보트 앨범차트 8위에 올라 72주째 차트에 머물며 전세계에서 800만 장 이상이 팔렸다. 이 데뷔 앨범에서 4곡의 빌보드 싱글차트 1위곡도 배출됐다. 그러나 이러한 숫자도 레이디 가가의 의미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다. 그는 단순가 가수가 아니라 지금 지구촌의 독보적 문화 아이콘, 어떤 삶의 태도를 대표하는 롤모델이 되었다.

기괴한 패션, 독특한 음악의 ‘튀는 인간’

가가는 도처에 있다. 팝의 영향력이 가요의 위세에 눌려 있는 한반도에도 가가는 도처에 보인다. 를 부르며 나온 손담비의 선글라스를 보면서 가가의 앨범 재킷 사진이 떠오른 것은 오래전 얘기다. 포털 사이트에서 ‘가가’를 검색어로 치면 나오는 기사를 요약해보면 이렇다. 개그우면 정주리가 케이블 방송에서 스타일 관련 프로그램 사회자를 맡게 되자 “레이디 가가를 닮고 싶다”고 일성을 터뜨린다. 2AM 조권은 “10년 뒤에 남자 레이디 가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라고 담대한 포부를 밝힌다. 의 출연진이 기괴한 미션을 하는 과제 중에 다른 스타 따라하기는 없어도 가가 따라하기는 들어간다. 오늘도 케이블 방송은 ‘가가와 리한나 중 누가 진정한 패셔니스타인가’를 열심히 비교하며 가가의 손을 들어준다. 지금껏 데뷔 앨범 하나로 누가 이렇게 화제가 된 적이 있던가.

한국에선 가가의 노래보다 가가의 패션이 화제다. 그는 란제리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심지어 거품(!)만 걸치고 사진을 찍고, ‘개구리 가가’ ‘바닷가재 가가’ ‘펭귄 가가’란 이름을 팬들이 지어줄 정도로 기괴한 의상을 입고 나온다. 여기에 밴드 멤버들과 자기 때문에 애인이 필요 없다 같은 가십도 전해진다. 이렇게 가가는 한국에서 뮤지션이기 앞서 입고 다니는 모든 옷과 하고 다니는 모든 말이 화제가 되는 유명인(Celebrity)이다. 그렇지만 패리스 힐턴처럼 이미지만 소비되는 유명인도 아니다. 가가는 자신의 의상을 직접 디자인하고 무대를 직접 연출하는 예술가다. 그에겐 창작 집단인 ‘하우스 오브 가가’(Haus Of Gaga)가 있는데, 가가는 이를 통해 의상, 무대장치, 퍼포먼스 등을 스스로 만든다. 가가는 “음악과 패션과 무대장치 등이 하나의 패키지”라고 말한다. 사실 레이디 가가가 자체가 뮤지션이자 퍼포머이자 행위예술가인 하나의 패키지다.

레이디 가가는 현실 참여도 마다하지 않았다. 백악관 인근에서 열린 동성애자 궐기대회에 참여해 연설을 하는 가가.

레이디 가가는 현실 참여도 마다하지 않았다. 백악관 인근에서 열린 동성애자 궐기대회에 참여해 연설을 하는 가가.

물론 패키지의 핵심은 음악이다. 음악적 저력이 없었다면 벌써 1년 넘게 시도 때도 없이 히트곡을 쏟아내는 레이디 가가는 없었을 것이다. 지난 3월28일로 24번째 생일을 맞은 뮤지션 레이디 가가는 10대 초반부터 작곡을 시작해 데뷔 전에 푸시캣 돌스 같은 스타들에게 노래를 작곡해주었고, 자신이 부르는 대부분의 노래를 직접 만드는 싱어송라이터다. 게다가 어떤 프로듀서와 작업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꿰뚫는 감각도 있다. 팝의 정상에 오른 여자 가수 중에 가가처럼 출발부터 싱어송라이터였던 인물이 있었던가? 더구나 그는 클럽에서 디제이로 일하고 스트립댄서로 춤췄던 경험까지 음악적·예술적 자양분으로 삼는다.

노래·공연·퍼포먼스가 함께하는 그만의 팝아트

이 영민한 뉴욕 출신 여성은 팝의 역사와 록의 전통을 이해하고, 하위문화 코드를 전취해 상품으로 만드는 능력이 출중하다. 그가 창조하고 연출하는 ‘레이디 가가’라는 캐릭터 안에는 마돈나(의 페미니즘), 프레디 머큐리(의 드라마틱한 무대매너), 데이비드 보위(의 성별을 넘나드는 글램록) 등이 복잡하게 뒤섞이고 화학적으로 결합해 있다. 앤디 워홀이 캔버스로 팝아트를 했다면, 레이디 가가는 패션과 노래와 공연과 행위로 팝아트를 한다. 이런 맥락이 있기에 다른 이가 흉내내면 이상한 짓거리가 되는 춤도 가가가 하면 예술이 된다. 그렇게 가가는 팝의 역사를 제대로 종합한 바람직한 편집형, 나아가 음악과 무대연출과 의상뿐 아니라 태도까지 겸비한 ‘토털 패키지’가 되었다. 김작가 음악평론가는 “하위문화 코드를 모아서 레이디 가가란 캐릭터가 탄생했다”며 “지극히 전위적인 작품들을 지극히 대중적인 상품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가가에게 팝의 전설들이 앞다퉈 대관식을 해주었다. 엘턴 존이 그래미 시상식에서 레이디 가가와 피아노를 치며 듀엣곡을 불렀고, 마돈나는 란제리 차림으로 〈NBC〉의 에 나와 가가와 머리채를 쥐어뜯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그리고 당대의 디바인 비욘세가 에 가가를 피처링으로 초대했고, 얼마 뒤에는 가가의 에 비욘세가 피처링했다. 이것은 빌보드가 2009년 가장 핫한 가수로 가가를 꼽았다거나, 영국 음악상 시상식인 2010 브릿 어워드에서 가가가 3관왕이 되었단 숫자나 통계를 넘어서는 의미를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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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 자신의 앨범 타이틀처럼 가가는 순식간에 명성을 얻은 괴물 혹은 괴물 같은 명성을 얻었다. 그는 뮤직비디오 등에서 한 번도 고분고분한 이미지로 대중에게 아부하지 않았다. (Paparazzi) 뮤직비디오에서 금속 장치로 무장한 장애인으로 나와 자신을 그렇게 만든 남자를 독살한다거나, 에서 여자 감옥의 죄수로 나와 레즈비언 키스를 한다든가, 주류 팝의 틀에서 보면 과격한 이미지를 재현했다. 차우진 음악평론가는 “그러나 가가는 카메라 프레임 안에서만 일탈한다”고 지적했다. 연출된 ‘배드걸’(Bad Girl) 이미지가 현실의 마약·폭행 스캔들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 평론가는 “막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절대로 막살지 않는다”며 “삶과 음악의 분리를 팬들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는 면에서 정말로 팝적이다”라고 말했다. 여전히 록스타에겐 삶과 음악의 일치를 바라지만, 팝스타에겐 그것의 분리가 용인된단 것이다. 뒤집어, 레이디 가가는 그렇게 자기 인생의 철저한 경영자(CEO)이기 때문에 스타로 장수할 가능성도 커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가의 ‘똘기’는 연출로 보이지 않는다. 가가는 무대에서 입는 기괴한 혹은 독특한 의상을 실제 거리를 나서거나 여행을 다니거나 할 때에도 그대로 입는다. 가가는 “인생 자체가 퍼포먼스”라고 말하는데, 정말로 인생 전체를 무대로 생각하는지 평소에도 무대와 같은 스타일로 생활한다. 이렇게 무대 안팎을 아우르는 ‘똘기’ 앞에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던 이들도 무릎을 꿇는다.

금기에 얽매이지 않으며 자신만의 목소리 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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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똘기는 세상을 바꾸는 힘도 된다. 데뷔 때부터 양성애자라고 밝혀온 레이디 가가는 2009년 10월11일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 뒷마당에서 열린 동성애자 궐기대회(Gay Rights Rally)에 연사로 나와 사자후를 토했다. “안녕 친구들”(Hellow friends)로 연설을 시작한 가가는 동성애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던 스톤월 항쟁에 경의를 표하고 동성애자들의 아이콘인 주디 갈런드에 대한 애정을 표한 다음에 “내 목소리가 들리느냐?!”(Do you hear me?!)라고 외쳤다. 그리고 백악관의 오바마를 향해서 “우리는 변화를 원한다!”(We need to change now!)며 모두를 위한 평등한 권리를 요구했다. 이렇게 가가는 자신의 삶을 기획하고, 금기에 얽매이지 않으며, 나아가 스스로 인생을 즐기며 살려는 이들의 ‘워너비’(Wannabe·닮고 싶은 사람)가 되었다. 이들은 오늘도 ‘가가처럼 살아라!’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 레이디 가가는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되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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