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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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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km/h 속도에 세계를 싣고

2008~2009년 트랙터로 전국일주한 강기태씨,
러시아에서 시작해 프랑스로 끝나는 트랙터 세계여행 5월 출발
등록 2010-03-19 07:02 수정 2020-05-02 19:26

올해 28살, 경남 하동 출신 한 젊은이가 꿈이었던 세계 여행을 준비 중이다. 여행 수단은 시속 40km가 최대 속도인 농기계 트랙터. 농부의 아들인 그는 트랙터를 타고 1년간의 긴 여행을 떠난다. 20대에 꼭 이루고 싶던 일이다. 출발일은 오는 5월 초. 러시아에서 시작해 프랑스로 끝나는 대륙 여행 준비는 거의 끝났다. 트랙터가 가지 못하는 바닷길은 배에 트랙터를 선적해 갈 예정이다. 빠르고 쉬운 하늘길 대신 트랙터를 타고 힘들고 더디게 땅길을 밟는 건 배짱 좋은 이 ‘트랙터 여행가’의 인생 철학 때문이다.

남미를 트랙터 타고 갈 수 있다면

40km/h 속도에 세계를 싣고. 강기태 제공

40km/h 속도에 세계를 싣고. 강기태 제공

때는 바야흐로 2005년. 당시 대학 4학년이던 강기태씨는 졸업 뒤 체육교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확보해둔 상태였다. 그런데 ‘배부르게도’ 취업이 싫어졌다. 교사가 적성에 맞지 않았고, 20대 때는 더 놀아야 한다는 소신(?)이 있었다. 장애물 넘기를 하듯 대학문을 나오고 취업문을 넘느라 젊음을 시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평균수명이 80살까지 늘어 인생이 길어졌는데 죽기 전에 안하면 후회할 일을 젊을 때 다 하기 위해서” 그는 여행하며 놀기로 했다.

강씨는 누구보다 도전정신이 가득 찬 여행가였다. 체 게바라의 젊은 날 여행기인 영화 를 보고 즉흥적으로 친구와 남미 여행을 계획했다. 기왕이면 메시지가 있는 여행을 하자는 뜻으로 농사꾼 아들답게 트랙터 여행을 도모했다. 어린 시절부터 봐오던 트랙터는 느려도 우직하게 목적지에 데려다줄 믿을 만한 교통수단이었다. 하지만 남미까지 트랙터를 운반할 일, 기름을 보충할 일 등 여러 문제가 여행가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트랙터도, 친구도 없이 홀로 중앙아메리카로 여행을 떠났다. 그 뒤 ROTC 장교로 군복무를 했다. 군 생활 동안에도 미완의 꿈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군 복무와 복학 생활을 마친 3년 뒤, 다시 “도전!”을 외쳤다.

트랙터 여행이 성사되려면 가장 먼저 트랙터가 필요했다. 여행계획서를 만들어 여러 농기계업체에 보냈다. 가족도 말릴 만큼 엉뚱한 여행 계획에 선뜻 트랙터를 빌려주겠다며 연락을 주는 업체는 없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한 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최선을 다해 ‘국내 최초의 트랙터 전국 투어’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끝냈다. 이틀 뒤, 업체에서 반가운 전화가 왔다. “강기태씨, 트랙터 협찬할게요. 축하해요.”

트랙터를 구한 뒤부터 여행 계획은 순조롭게 풀렸다. “트랙터 한 대로 한반도를 돌며 농촌의 현실을 알리고, 20대의 패기와 도전정신을 세상에 보여주겠다”는 강씨의 여행 계획을 알게 된 하동군청에서 기름값에 보태라며 150만원을 지원해줬다. 무일푼 여행에 노잣돈이 생겼다. 트랙터엔 전국에 홍보할 하동군 특산물도 실렸다. 2008년 9월, 포부도 당당한 트랙터 한 대가 마을 주민들의 환송을 받으며 길을 떠났다. 트랙터에는 ‘젊음, 열정, 그 아름다운 비상’이라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강씨가 3년 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트랙터 여행가의 꿈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트랙터는 길 위를 느리게 달렸다. 돈이 아닌 몸으로 하는 여행길에선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도 달랐다. 농·축·수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손을 돕고, 고아원·양로원 등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잠도 밥도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받으며 해결했다. 지나가는 길에 들른 어느 칠순 잔칫집에서 노래 한 자락을 뽑아 식사를 해결하고, 농번기 일을 돕고 방 한 칸을 빌려 잠을 잤다. 넉살 좋고 배짱 좋은 그를 사람들은 경계 없이 대했다. 책상머리를 박차고 나와 길 위에서 인생을 배우려는 젊은이의 열정과 패기에 박수를 쳐주기도 했다. 길은 안정된 직장에서 얻을 수 없는 깨달음을 줬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사람 안에서 살아가라는 가르침”이다.

여행지마다 특산물 나누며 공정무역 알릴 계획

“어디서 잘까?” “어떤 봉사활동을 할까?” 일정을 미리 정해놓지 않고 떠나는 트랙터 여행은 전국 각지에서 소중한 인연과 추억을 만들어줬다. 강씨에게 경북 청송군 진도면은 이제 ‘제2의 고향’이다. 180일간의 부족한 여행 일정 중 14일을 머물 만큼 사람들과 듬뿍 정이 들었다. 가을 추수기에 일을 돕고, 사과축제에 힘을 보태고, 청송청년축구단과 어울려 축구 시합을 하면서 고향처럼 따뜻한 정을 느꼈다. 울릉도에서는 양아버지도 생겼다. 서울에서 홀로 여행 온 어르신과 2박3일 동안 함께 어울려 다니면서 부자의 인연을 맺었다. 강씨가 트랙터를 몰고 서울에 입성했을 때 양아버지는 가족에게 그를 소개하며 따뜻하게 맞아줬다. 시속 40km의 느린 속도는 스치고 지나가는 인연 하나도 오랫동안 이어줬다.

일정을 미리 정해놓지 않고 떠나는 트랙터 여행은 전국 각지에서 소중한 인연과 추억을 만들어줬다. 한겨울에 노상에서 텐트 치고 잠을 자고, 농번기에 일손을 거들며 식사를 해결하는 일이 수고롭지 않았다. 때론 우연히 만난 유명인사의 응원이 힘이 되기도 했다. 트랙터는 ‘사람 안에서 살아가라는 가르침’을 줬다. 강기태 제공

일정을 미리 정해놓지 않고 떠나는 트랙터 여행은 전국 각지에서 소중한 인연과 추억을 만들어줬다. 한겨울에 노상에서 텐트 치고 잠을 자고, 농번기에 일손을 거들며 식사를 해결하는 일이 수고롭지 않았다. 때론 우연히 만난 유명인사의 응원이 힘이 되기도 했다. 트랙터는 ‘사람 안에서 살아가라는 가르침’을 줬다. 강기태 제공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 유명 인사의 응원이 힘이 되기도 했다. 봉하마을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울에선 ‘밥퍼’ 최일도 목사가 강씨의 여행에 기운을 북돋아줬다. 느리게 가는 트랙터 여행에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지며 그는 유명인이 되기도 했다. 지역 방송사의 취재대상이 되면서 방송을 본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사인을 요청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6개월의 여행을 마치고 2009년 4월 고향 하동에 돌아왔을 때 그는 지역의 유명인이 돼 있었다. 책을 내자는 제안도 받고, 트랙터 여행에 대한 강연 요청도 들어왔다. “트랙터 여행을 꼭 하겠다고 수첩에 적으면서 책도 내고 강연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꿈에 도전하는 순간 이 모든 일들이 차례대로 찾아왔다”는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다른 꿈도 이뤄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젊음이 울지 않도록 치열하게 살고 싶은 그는 이제 1년간의 세계 여행을 준비 중이다. 한 사람의 도전이 내뿜는 힘의 크기를 전국투어를 통해 실감한 그는 이제 세계를 향해 발을 딛는다. 러시아·몽골·터키·불가리아 등을 거쳐 프랑스에서 끝나는 일정이다. 나라별로 비자를 받고, 각 나라 대사관으로 연락해 트랙터 여행이 가능한지 조언을 들었다. 구글어스를 통해 미리 트랙터가 지나갈 여행길을 눈으로 살피고, 나라별 여행 정보도 다 모았다. 이번 여행에선 커피·초콜릿 등 나라별 특산물을 여행지에서 주고받으며 공정무역을 알릴 계획이다. 문제는 여행 노잣돈. 예상 경비만 최소 4천만원으로 이 중 기름값이 2500만원을 차지하는데 아직 후원금이 충분히 모이지 않았다. 강씨는 “아무것도 없는 농사꾼의 아들이 맨땅에 헤딩하며 지금까지 꿈을 이뤄왔는데 이번 계획도 잘되지 않겠냐”며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남들이 백수라고 놀릴지라도 하고 싶은 일을 후회 없이 다 해보고 싶다”는 그에게 트랙터 여행은 멀고 먼 인생의 목표도 느리게 가다 보면 이룰 수 있다는 힘을 준다.

돈 되지 않는 하고 싶은 일 수첩에 빼곡

트랙터 세계 여행을 끝내면 다음 계획은 무엇일까? “여행을 하다 보니 제가 얼마나 무지한지 알겠더라고요. 공부를 더 하고 싶어요. 그 밖에도 돈 되지 않는, 하고 싶은 일들이 아직 수첩에 빼곡히 적혀 있으니 다 해봐야죠.”

누구는 그에게 “꿈만 먹고 산다”고 했지만 그는 “꿈 없이 사는 삶이 얼마나 슬프냐”고 되물었다. “길다면 긴 인생에서 20대의 젊음을 아낌없이 쓰고 싶은” 게 그의 바람이다. 남들보다 빠르게 좋은 직장을 얻는 게 인생의 성공을 의미하진 않는다. 국내 최초의 ‘트랙터 여행가’ 강기태씨 앞에 열기구를 타고 도는 80일간의 세계 일주보다 더 흥미로운 모험이 기다리고 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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