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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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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의 자랑 조지 오웰의 르포

완벽한 객관적 묘사로 그려낸 1930년대 영국 북부 탄광 노동자의 삶 <위건 부두로 가는 길>
등록 2010-01-20 17:39 수정 2020-05-03 04:25

“필 가의 주택. 등 맞댄 집. 위에 둘 아래에 둘. 지하실 큼. 거실은 가로·세로 3m에 싱크대와 화로 있음. 아래층 나머지 방도 같은 크기이며, 응접실용인 듯하나 침실로 쓰임. 위층 방들은 아래층 방과 크기 같음. 거실 매우 어두움. 가스등 요금은 하루 4.5페니 정도. 화장실까지는 65m. 8인 가족에 침대 4개. 가족은 노부모 둘과 성년인 딸 둘(큰딸이 27살), 청년 하나, 그리고 어린아이 셋. 침대는 부모가 하나, 큰아들이 하나, 나머지 다섯 자녀가 둘을 함께 씀. 벌레 아주 많음(“한창 많을 때는 손을 쓸 도리가 없지요”). 아래층 방은 너무 더럽고 위층엔 못 견딜 악취가 남. 집세는 5실링7.5페니(세금 포함).”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위건 부두로 가는 길〉

화장실까지 65m, 가스등 요금 4.5페니…

박수는 이럴 때 치라고 만든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이 정도 ‘동업자’라면 ‘업계’의 자랑으로 삼을 만하다. 여간 부지런한 기자의 취재 메모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부류라면, 잠시 둘러보고 짐짓 “다 안다”고 말하지 않는다. ‘체험 삶의 현장’식으로 잠깐 겪어보고는 “내가 해보니 이렇게 힘들더라”고 떠벌리지도 않는다. 대신 지나칠 정도로 선을 긋는다. 대상을 완벽히 객관화한다. 그러곤 한 발짝 떨어져서, 소름이 끼치도록 세밀하게 있는 그대로를 그려낸다. 르포르타주의 힘은 ‘디테일’에서 나온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냐, 너?’ 궁금해진다.

“나는 상류 중산층 가운데 하급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상류 중산층은 1880년대와 1890년대에 처음 생겨나…, 빅토리아 시대의 번영기가 퇴조하면서 한 무더기의 잔해만 남았다고 할 수 있다. …이론상으론 정장 입는 법과 정찬 주문하는 법을 알았지만, 실제로는 번듯한 양복점이나 번듯한 음식점에 갈 형편이 도무지 아니었다.”

‘에릭 아서 블레어’가 (이한중 옮김·한겨레출판 펴냄)에서 쓴 자기소개의 일부다. 명문 이튼스쿨을 졸업한 뒤 제국의 첨병이 돼 버마로 갔고, 5년여 ‘주구’ 노릇이 역겨워지자 부랑자로 떠돌았다.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파를 위해 싸웠고, 파시즘과 스탈린주의의 광기에 맞서 펜을 벼렸다. 그새 (1933년)을 시작으로 (1938년), (1945년), (1949년)를 잇따라 남긴 그는 1950년 1월21일 마흔여섯 나이에 폐결핵으로 요절했다. ‘시대’와 불화하며, 폭풍처럼 몰아쳤다. 작자 조지 오웰의 삶이다.

‘레프트 북클럽’이란 진보단체의 부탁으로 잉글랜드 북부 탄광 노동자의 삶을 취재하기 위해 오웰이 ‘위건 부두’를 찾은 것은 1936년 1월께다. 그 무렵 풍광 좋기로 이름났던 영국 잉글랜드 북부(브리튼섬 중서부) 도시 위건의 부두는 이미 사라진 뒤였단다. 그럼에도 두 달여에 걸쳐 탄광지대를 면밀히 취재한 결과물에 작가가 굳이 ‘위건 부두’를 제목으로 언급한 이유는 뭘까? 뭔가에 대한 ‘그리움’과 ‘열망’ 때문이었을 게다.

“겨울날 저녁에 차를 마시고 난 뒤, 조리용 난로에선 불꽃이 춤을 추고, 난로 한쪽에선 아버지가 셔츠 차림으로 흔들의자에 앉아 경마 결승전 소식을 읽고, 어머니는 다른 한쪽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아이들은 1페니 주고 산 박하사탕 때문에 행복해하고, 개는 카펫에 드러누워 불을 쬐는 정경을 볼 수 있는 집은 정말 가볼 만한 곳이다. …우리 시대가 살기에 완전히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음을 나에게 일깨워주는 것은… 내 기억에 남은 노동계급 가정의 거실 풍경이며, 그중에서도 아직 영국의 번영기이던 전쟁 이전의 내 어린 시절에 이따금 보았던 정경들이다.”

탈고하곤 바쁘게 스페인 내전 현장으로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에선 탄광 노동자의 삶을 깊은 애정을 담아 예의 치밀함으로 그려냈다. 후반부는 체험을 바탕으로 한 오웰식 ‘민주적 사회주의론’이 힘있게 제시된다. 탄탄한 르포문학과 오웰의 자전적 정치평론을 한 권에 묶어놓은 셈이다. 특히 책 후반부에선 부르주아와 지식인 출신 사회주의자의 ‘위선’을 통렬히 비판했다. 이 때문에 책이 나온 뒤 ‘진보 진영’의 반발이 만만찮았는데, 정작 작가는 원고를 탈고하기 바쁘게 스페인 내전의 현장으로 달려갔단다. 오웰답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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