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 대한 프리뷰 기사를 쓰면서 대략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있다. “한때는 팝의 양로원이었던 한국이 변하고 있다.” 2009년을 보내면서 그 문장을 너무 성급하게 썼다는 생각을 했다. 당연하지. 오아시스를 시작으로 비욘세, 빌리 조엘, 레이디 가가, 위저, 베이스먼트 잭스, 크립스(조니 마), 미카,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 등을 한 해에 볼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느냔 말이다. 그런데 2010년을 앞둔 지금, 지난해 그 문장을 써먹었으면 역시 같은 생각을 하며 괴로워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표현을 그리 빨리 써먹었다니 너무 촐랑댔어, 하면서. 올해는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대형 뮤지션들이 한국을 찾는 까닭이다.
2010년은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대형 뮤지션들이 한국을 찾는다. 방한 예정인 뮤즈, 킬러스, 그린데이(왼쪽부터).
새해 첫 주, 1월7일에 영국 밴드 ‘뮤즈’가 세 번째 공연을 위해 내한한다. 2007년 초 4집 투어로 처음 한국을 찾은 이래, 그해 여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도 그야말로 환상적인 라이브를 선보인 그들이다. 스스로 인간이길 포기한 듯한 완벽한 연주는 그렇잖아도 복잡한 사운드가 담긴 앨범을 그대로 재현하는 걸 넘어 레코딩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라이브의 에너지를 사방으로 뿜어낸다. 그들이 공연을 하고 간 자리에는 언제나 극찬의 리뷰가 따르고 확 올라간 입지가 함께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랬다. 아무래도 관찰과 기록을 위해 공연을 보는 처지인지라 웬만하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지만, 그들의 첫 내한 공연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난리를 쳤던 기억이 또렷하다. 펜타포트 공연을 보면서 취재 수첩에 “음악의 자궁 안에 들어와 있다”라는 괴상한 메모를 휘갈겨썼더랬다. 함께 공연을 본 어느 뮤지션은 “너무 잘해서 싫을 정도네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헤비메탈과 기타팝, 프로그레시브 록의 장점만을 고루 취합해 거대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뮤즈는 최근 앨범 에서 더 견고한 자의식과 아트 록의 방법론을 시도했다. 큰 공연장에서 볼수록 그 장엄함을 만끽할 수 있는 음악이다. 2010년 시작으로는 더없이 적합한 공연이 될 것이다.
뮤즈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그린데이’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다. 날짜는 1월18일. 뮤즈와 마찬가지로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공연을 한다. 너바나가 불을 지핀 그런지 혁명에 펑크 리바이벌을 더하며 그 시대를 완성시킨 그린데이다. 그들과 함께 시대를 풍미했던 많은 밴드들이 하나둘 사라져갔지만 그린데이는 2004년 으로 경력을 ‘리셋’시켰다. 로큰롤 하이스쿨의 악동 학생 같았던 그들이 어엿한 교사가 되어 로큰롤 하이스쿨에 취임한 것이다. 1994년 앨범인 에 담겨 있던 같은 노래들이 ‘루저’라는 단어가 지금과는 다른 의미였던 19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이들에게 손짓한다면, 같은 최근의 히트곡은 지금 청춘의 열기를 뿜어내는 이들을 유혹한다. 추억이자 동시대인 몇 안 되는 밴드, 그린데이의 라이브도 정평이 나 있다. 2004년, 그들은 서머소닉 페스티벌 참가를 위해 일본을 찾았다. 히트곡을 줄줄이 연주하며 객석을 후끈 달군 뒤 앙코르 무대에 올라 퀸의 을 연주했다. 소극적이기로 유명한 일본 관객이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도 그때의 느낌을 받을 수 있으리라. 심장을 손으로 눌렀다가 어루만졌다가 다시 쥐어짜는 듯한 그 느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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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데이가 한국을 떠난 뒤에는 ‘킬러스’가 첫 내한 공연을 갖는다. 2월6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리는 킬러스의 공연도 많은 록 팬들을 설레게 하는 건 마찬가지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결성돼 ‘미스터 브라이트사이드’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그들은 최근 앨범이자 3집인 에서 을 줄줄이 히트시키며 명성을 이어나가고 있다. 미국 록의 격정과 영국 록의 모던함을 고루 갖춘 그들은 뮤즈, 콜드플레이와 더불어 2000년대에 등장한 밴드들 중 가장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가는 밴드일 것이다. 그 말인즉슨, 지금이 경력의 정점 또는 정점으로 가는 길에 있다는 얘기다. 이런 팀의 공연을 보는 것이야말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기도 하다.
어디 그뿐인가. 3월20일에는 에릭 클랩턴, 지미 페이지와 더불어 영국의 3대 기타리스트로 꼽히는 제프 벡이 한국을 찾는다. 4월4일에는 노르웨이 출신으로 모던 록 팬들 사이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포크 록 듀오,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두 번째 내한 공연이 열린다. 유력한 소문이 돌고 있는 아티스트들까지 포함하면 1년 내내 거물급 뮤지션들의 내한이 이어질 전망이다.
이렇게 갑자기 내한 공연이 쏟아지는 데에는 몇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한국 공연 시장의 지명도와 신뢰도가 국제적으로 많이 올랐다는 점이다. ‘옐로나인’ ‘액세스’ ‘프라이빗 커브’ 등 몇몇 기획사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성공적인 공연이 이어졌고, 이는 다른 아티스트들도 믿고 한국을 찾을 수 있는 근거가 됐다. 게다가 한국을 찾는 뮤지션마다 관객의 수준에 경탄했고, 이를 자신의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하면서 일종의 보증수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업계와 관객의 이인삼각이 펼쳐진 셈이다.
음악산업의 중심이 앨범에서 공연으로 쏠리면서 뮤지션들의 월드 투어에 포함되는 도시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도 한몫한다. 새 앨범이 나오면 음원을 홈페이지나 마이스페이스 등을 통해 공개하고, 대신 더 많은 이들을 공연장으로 불러들이는 일은 더 이상 새로운 전략도 아니다. 앨범에서 음원으로 음악의 포맷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원은 ‘소유 없는 복제’와 다름없다. 복제는 원본에 대한 열망을 부른다. 음악에서 가장 궁극적인 원본이란 당연히 공연이다. 인터넷을 통해 더 쉽게 음악을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앨범을 소유하고 있을 때의 뿌듯함이 사라진 자리를 공연 관람에 대한 열망이 대체하는 것이다. 초대권 구하기가 꽤 쉬웠던 한국의 공연 시장을 변화시키는 열망이다. 그 열망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아티스트들을 이 땅의 무대에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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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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