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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청소년 책] 10대의 이해력은 기대 이상이다

포화상태 어린이책의 틈새시장으로 성장한 청소년출판,
성인까지 아우를 완성도 높은 책으로 살아남으라

제783호
등록 : 2009-10-28 10:41 수정 : 2009-10-30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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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권하는 청소년 책 18]

청소년 출판은 좋게 말해 유망주요, 솔직하게 말해 애물단지였다. 청소년 출판에는 당위성만 있을 뿐 상업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청소년이 입시라는 덫에 걸려있는 한 청소년 출판에서 희망을 논한다는 건 근거 없는 낙관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청소년출판의 대한 기대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급기야 최근 2-3년 사이 청소년출판이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했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움직이고 있다. 가장 큰 동력은 시장의 요구다. 1990년대 중반이후부터 르네상스를 맞이한 어린이 출판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새로운 시장이 필요한 출판사들은 자연스럽게 틈새시장으로서 청소년 출판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어린이책을 읽고 자란 아이들이 십대로 접어들었다는 현실적 계산도 작용했다. 독서력이 높은 아이들이 논술에도 강하다는 생각이 설득력을 얻으며, 분위기는 무르익어 갔다(지금이야 정권이 바뀌며 대학입시에서 논술의 의존도는 현격히 낮아졌지만 말이다).

애물단지에서 베스트셀러로

2007년 <세계일보>가 고료 5천만원을 내걸고 청소년문학상을 제정하고, 정유정의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를 당선작으로 발표했다. 때를 맞추기라도 하듯 창비와 비룡소도 청소년문학상을 제정하고 나섰다. 2008년에는 제1회 창비 청소년문학상을 받은 김려령의 <완득이>가 출간 첫해에만 20만 부 넘게 팔리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2008년은 청소년문학도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복된 원년이었다.


베스트셀러가 나와야 출판사에 사람이 모이듯, 청소년문학도 문학상이 제정되고 베스트셀러가 나오니 신인작가들이 모여들었다. 지난 10여 년간 박상률·이금이·임정진 등 1세대 작가들이 외로이 싸웠다면, 최근 몇 년 사이 다채로운 색깔을 지닌 작가들이 청소년문학의 품 안으로 속속 들어오고 있다. 통로는 문학상이다. 2003년 <사슴벌레 소년의 사랑>을 제1회 수상작으로 시작해, 2009년 <열일곱 살의 털>을 제6회 수상작으로 발표한 사계절문학상이 시작이었다. 사계절문학상은 이옥수·신여랑 등 수상작가를 등단시켰을 뿐 아니라, 비록 수상은 못했지만 김남중·강미·정유정·전아리 등이 거쳐가며 작가들의 텃밭 구실도 해냈다.

여기에 이상운·남상순·김종광·이명랑 같은 성인작가들도 청소년문학에 힘을 보태고 있다. 2009년에는 공선옥 작가가 <나는 죽지 않겠다>를 발표했는데, 이외에도 몇몇 성인작가들이 청소년문학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그동안 활발하게 어린이책을 집필해온 이들도 청소년문학을 발표하고 있다. 이상권·이경혜·최나미·이현 등은 어린이책과 청소년문학을 넘나들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마당을 나온 암탉> 등으로 문학성을 인정받은 황선미 작가 또한 청소년소설을 연재하고 있다. 작가로부터 새로운 문학이 태동한다는 점에서 청소년문학의 작가군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문학상을 제정하고 작가가 모여들자 출판사 역시 바빠졌다. 일찍이 어린이출판의 성장을 지켜본 출판사들은 질세라 앞다투어 청소년출판을 시작했고, 일련의 시리즈물을 시장에 선보였다. 문학 일색이 아니라 청소년을 위한 교양 시리즈도 여럿 선보였다. 청소년출판이 문학의 성장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세대는 과학 등 폭넓은 지식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다만 교양서의 경우 청소년과 성인물의 구분이 사실 모호하다. 성인 단행본으로 출간됐지만 청소년 필독서로 자리잡은 <과학콘서트>나 <철학콘서트> 같은 책들을 보라. 성공할 경우 청소년과 성인 독자를 쌍끌이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청소년조차 외면하기 십상인 것이 바로 청소년 교양서의 운명이다.

하나같이 성장소설, 시사고발 같은 문제제기

이제 다시 청소년출판의 고민이 시작된다. 청소년출판이 당위성으로만 존재할 수는 없지만, 시장에 기대어 성장한다면 올바른 모습으로 자라날 리 없다. 예컨대 우리에게 청소년소설이란 성장소설과 동의어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 있다면, 그중 하나가 성장소설류다. 멀리는 <어린왕자>나 <갈매기의 꿈>을 수원지로 하여, 최근 10년 동안에도 <연어> <새의 선물>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이 우리 독자에게 성장의 꿈을 선물했다.

청소년출판에 대한 기대감이 무르익자 너도나도 성장소설임을 내세우는 책들이 눈에 띈다. 여기에 성인작가들까지 자신의 성장 이야기를 꺼내들고 합류한다. 정체성을 고민하고 자신의 현재를 깨고 나아가는 10대를 다룬 문학이라면 본질적으로 성장의 의미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청소년소설이 하나같이 성장을 주제로 삼아서는 곤란하다. 지난 30여 년간 성장소설을 읽었건만 우리 국민이 아직 덜 성장한 것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또한 10대의 현실을 반영한다는 이유로 청소년의 성과 연애, 임신, 학원폭력, 자살, 원조교제 등을 다룰 때 자칫 소재주의로 빠지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봐야 한다. 청소년문학이란 단지 문제제기가 목적인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아닌 까닭이다.

새롭게 등장하는 청소년문학은 조심스럽게 이런 한계를 허물고 있다.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는 과연 학부모와 교사가 이 작품을 청소년에게 권할 수 있느냐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많다. 하지만 그동안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낯선 풍경을 청소년문학으로 편입시켰다.

본질적으로 청소년문학이란 낯섦에서 비롯됐다. 처음 미국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청소년문학은 1960~70년대의 청소년들, 전 세대와 다른 그들의 모습을 담아내며 시작됐다. 태생적으로 청소년이란 어른들의 허위의식, 부모의 보호, 답답한 기성세대의 권위를 박차고 나가려 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어른의 처지에서 청소년문학이란 때로 읽고 싶지 않고, 존재 자체만으로 피곤한 골칫덩어리다.

청소년을 위한 책 이전 한 권의 책

청소년과 한 번이라도 책을 함께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 있다. 대부분의 10대는 기대 이상으로 깊이 있는 책들을 충분히 소화한다. 청소년출판은 주제와 표현방식에 제약이 없고, 한 권의 책으로서 완성도가 높아야 한다. <완득이>나 <위저드 베이커리>가 성인에게 새로운 문학적 시도로 여겨지듯, 고미숙의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가 인간에게 왜 공부가 필요한지를 통쾌하게 고찰한 책으로 받아들여지듯, 청소년을 위한 책 이전에 한 권의 책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때 청소년출판의 미래 또한 존재한다.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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