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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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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여, 함무라비를 두려워하라

지구의 생명을 빼앗는 콘크리트 건물…
환경을 생각하며 나무로 짓는 ‘공정목재·공정주택’을 생각할 때
등록 2009-09-24 01:28 수정 2020-05-02 19:25
겉보기에는 우리 공동주택들과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모두 목조주택인 캐나다의 다양한 최신 공동주택들. 저밀도·친환경 공동주택의 대안으로 목조주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 구본준

겉보기에는 우리 공동주택들과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모두 목조주택인 캐나다의 다양한 최신 공동주택들. 저밀도·친환경 공동주택의 대안으로 목조주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 구본준

건축의 역사, 정확히는 건축법의 역사에는 뜻밖에도 함무라비왕이 가장 먼저 등장한다. 함무라비왕이 제정한 함무라비법전에 건축 관련 항목도 들어 었었기 때문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이 법전의 기본 정신은 물론 건축에 대해서도 철두철미하다. “건축한 이가 집을 제대로 짓지 않아 집이 무너져 집주인이 죽으면 건축한 이도 처형한다. 집주인의 아들이 죽으면 건축한 이의 아들을 처형한다.”

이 함무라비식 건축법 정신은 무지막지해 보여도 사실 무지하게 합리적이다. 똑같이 주고받는, 누가 더 이득 보거나 손해 보는 법이 없는 등가교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건축에서 이런 무한책임주의는 고대 바빌론만의 이야기가 전혀 아니라 세계 보편적인 것이었다. 중국만 해도 역사 유적인 명13릉 같은 중요한 건물에 쓴 벽돌 같은 자재들에 작업 담당자 이름이 적었다. 책임을 분명하게 하려는 것인데, 당연히 벽이 무너지면 그 벽을 쌓은 벽돌에 이름 적힌 인부들을 잡아다 죽였다.

바빌론부터 수천 년 지난 명나라 때까지도 이런 화끈한 원칙이 이어졌던 것이 보여주듯 건축물에 대한 책임은 언제나 무겁고 가혹했다. 왜 그랬는지 생각해보고 말고 할 필요도 없다. 건축이 사람의 목숨과 직결되는 중요한 업무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떤가? 와우아파트가 짓자마자 무너지고, 한강 성수대교가 한순간 동강나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는 일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극히 일부일 뿐, 대부분의 현대 건축물은 옛날 건물들보다 분명 튼튼해졌다. 강철과 콘크리트 같은 소재들 덕분에 집은 이론상으론 인류 역사상 가장 안전한 수준에 올라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현대의 집들은 거주자의 목숨을 덜 빼앗아가는 것일 뿐이다. 인류 역사상 어느 때보다 많이, 그리고 튼튼하게 짓는다는 현대 건축물들이 실제 죽이고 있는 대상은 그 속에 사는 인간 거주자들보다도 자연과 지구라는 거대한 거주자다. 자연의 비명이 들리지 않고 상처를 직접 보기 어려워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철근 콘크리트 건물들은 원자재 제조 과정부터 환경을 파괴하고 에너지를 엄청나게 소모하고 탄소를 배출한다. 짓고 나면 막대한 폐기물을 양산하는데, 재활용하기도 어렵다.

답은 명쾌하다. 좀더 친환경적인 건축물을 찾는 길이다. 환경에 더 좋은 재료, 재활용이 가능한 재료, 에너지 소모와 탄소 배출이 적은 재료가 무엇인지는 이미 답이 나와 있다. 강철, 콘크리트, 돌, 나무라는 집 짓는 4대 원소 중에서 그런 요구조건을 충족시켜주는 소재는 오로지 나무뿐이다. 나무는 살아서는 이산화탄소를 제거하고 탄소를 저장한다. 죽어서도 탄소를 저장하며 재활용이 가능한 유일한 건축 자재가 된다. 무엇보다 나무는 가공하는 과정에서 철이나 콘크리트처럼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다.

세계 각국은 다시 나무에 주목하고 있다. 크고 높아야 하는 대형 건축물은 나무 구조가 불가능하지만 대신 최대한 나무 자재의 비율을 높이고 있다. 기술 발달로 여러 층의 나무집도 등장하고 있다. 영국에선 9층 목조 건물이 선보였고, 캐나다에선 최근 목조주택 높이 규정을 4층에서 6층으로 2층 더 높게 허용하고 있다.

한국은 한옥이라는 목조주택에서 수천 년 살아왔으면서도 완벽하게 목조주택을 소거해버렸다. 건축학과에서도 목조 기법은 아예 가르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도 다행히 자발적으로 나무에 주목하는 새로운 시도들이 최근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한옥 호텔 ‘라궁’이 등장한 데 이어 국내 최대 규모의 목구조 건물로 짓는 새로운 호텔이 지금 만들어지고 있다. 나무로 구조를 이루는 골프장 컨트리클럽도 나왔다. 대기업 건설회사들도 빌라식 공동주택을 목조로 짓는 시도를 시작했다. 건축가 이현욱씨는 경기도 남양주에 국내 최초로 4층짜리 목조 공동주택을 설계해 시공할 예정이다. 물론 모든 건물을 나무로만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다행히 나무는 모든 소재와도 잘 어울린다.

함무라비 건축법은 사라졌지만 건축물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기본 의무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예전과 달리 우리는 거주자를 넘어 자연과 지구에 피해를 주고 있다. 공정무역과 공정관광 같은 개념들이 등장한 지금, 이제는 불법 벌목한 목재가 아니라 숲을 지속 가능하게 가꾸며 솎아내는 ‘공정목재’, 이런 재료들로 짓는 ‘공정주택’이란 개념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때다. 우리 모두가 나무집을 짓고 살기는 어려워도, 우리가 직접 집을 짓는 사람이 아니라 소비자일 뿐이어도 어떤 소재가 공정한 건축재료인지, 더 올바른 소재가 무엇인지 우리 모두는 고민해야 한다.

구본준 기자 한겨레 문화부 blog.hani.co.kr/bonbon

*‘시험에 안 나오는 문화’는 이번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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