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기획

화장실에 봉인된 12년 전의 핏빛 진실

피살자는 있으나 살인자는 없는 범죄 영화화한 <이태원 살인사건>…
부조리한 결말은 관객의 몫으로

제777호
2009.09.09
등록 : 2009-09-09 16:14 수정 : 2009-09-10 14:33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 배우 정진영. 사진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살인의 추억’은 1990년대에도 있었다.

1980년대 미궁에 빠진 살인의 장소가 경기 화성의 한적한 논밭이었다면, 1990년대 잔인한 살인의 추억은 서울의 이태원을 배경으로 한다. 1997년 4월 이태원 햄버거 가게에서 벌어진 홍익대생 조중필씨 살해사건. 미군속의 아들과 한국계 미국인, 분명히 둘 중의 한 명이 일면식도 없는 한국인 청년을 죽였다. 하다못해 금품을 노려서도 아니었다. 이른바 재미로 사람을 죽인 ‘쾌락살인’. 그리고 12년이 흘렀다. 분명히 죽은 사람은 있는데, 여전히 죽인 범인은 없다. 한 명은 대법원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받았고, 다른 한 명은 흉기 소지 등 다른 혐의로 1년여를 복역한 뒤 한국을 떠났다. 그날의 이태원엔 화성의 미궁과 윤금이씨 살해사건의 비명이 겹쳐졌고, 그 뒤로도 오랫동안 이태원엔 섬뜩한 말들이 떠돌았다. 사소한 충돌만 있어도 그날의 악몽이 겹쳐서 흉흉한 소문이 되었다. 그렇게 그날의 사건은 이태원을 넘어서 한국 사회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더구나 비극은 도저하되 해원은 난망하다. 한 명의 용의자는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서 살인 혐의를 다시 물을 수 없게 되었고, 다른 한 명은 출국금지 연장이 소홀한 틈을 타서 이 땅을 떠났다. 오로지 유족의 비명만이 현재형으로 떠돌 뿐이다. 때로 예술은 현실에서 해원이 불가능한 원혼을 불러서 굿판을 벌인다. 그래서 언젠가 누군가는 고인의 넋을 여기로 불러서 못다 한 울음을 울게 하고, 원통한 사연을 다시 알려야 했는지 모른다. 조중필씨 살해사건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은 촬영을 시작하며 흔히 지내는 고사 대신에 위령제를 지냈다. 1980년대 미국 문제를 다룬 <오! 꿈의 나라>를 만들었고, 2003년 비전향 장기수를 다룬 <선택>을 연출했던 홍기선 감독이 그렇게 해원의 메가폰을 잡았다.

그러나 <이태원 살인사건>은 짐작과 달리, 반미 영화가 아니다. 주연배우 정진영씨의 말처럼 “주류와 비주류, 진실과 거짓, 은폐와 폭로, 방관과 도발같이 대립적인 면들이 복잡하게 뒤섞인” 영화다. 한국과 미국, 교포와 동포 나아가 인간과 인간의 문제가 이태원이란 탈영토의 공간에서 뒤엉킨 상징적 사건을 <이태원 살인사건>은 실화에 바탕해, 그러나 픽션을 가미해 영상으로 옮겼다. 이렇게 망각에 반대하는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을 영화의 내용과 감독의 말들을 종합해 분석했다.

“사람을 죽인 건 용서할 수 없는 죄다.”

<이태원 살인사건>에서 조중필씨 살해사건을 담당한 박대식(정진영) 검사는 살인 혐의를 상대방에게 미루는 용의자에게 낮지만 단호한 말투로 이렇게 말한다. 영화의 중반을 넘어서 나오는 대사지만, 이것은 이 사건의 영화화를 시작한 이유로 들린다. 영화는 피 튀기는 장면으로 시작해 피투성이 모습으로 끝난다. 조중필(송중기)씨가 누군가의 칼에 찔려서 피를 처절하게 내뿜는 장면에서 시작한 영화는 피투성이 조중필씨가 밀폐된 화장실 공간에 방치된 모습으로 끝난다. 정진영씨의 말처럼 스릴러의 장르적 재미를 우선했다면, 영화는 용의자 중 한 명인 피어슨(장근석)이 웃는 모습으로 끝나야 옳았다. 그러나 영화는 자신을 범인이 아니라고 믿어준 검사의 방을 나서며 웃는 피어슨의 모습 뒤에, 조중필씨가 살해당한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 피 흘리며 방치된 장면을 더한다. 그것은 검사가 믿었던 인물이 살인범일 수도 있다는 영화적 반전보다, 이런 비극을 불러온 책임이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도 있다는 뼈아픈 응시가 중요하다는 선언이다. 그래서 정진영씨는 “그렇게 어영부영 범인을 찾지 못한 억울한 일이 한둘이 아니었고, 이태원 화장실은 한국 사회의 축도란 의미”라고 해석했다.


<이태원 살인사건>의 범죄 현장 검증 장면. 피어슨(장근석)은 마치 본 것이 아니라 한 것처럼 생생한 재연을 해서, 그가 범인이 아니라고 믿는 박대식(정진영) 검사를 혼란에 빠뜨린다. 사진 선필름 제공

“뭔가 보여줄게, 따라와.”(I’ll show you something cool, Come with me.)

피어슨인가, 알렉스(신승환)인가. 누가 이 말을 했나. 이 말을 한 자가 범인이다. 그러나 끝끝내 명쾌한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이태원 클럽에서 놀던 18살 동갑내기 알렉스와 피어슨은 친구들과 가까운 햄버거 가게로 간다. 여기서 피어슨은 날카로운 칼을 꺼내서 자랑한다. 칼을 놓고 기싸움을 벌이던 이들이 화장실로 향한다. 분명히 누군가 한 명이 나머지 한 명에게 “뭔가 보여줄게, 따라와”라고 말한다. 그리고 벌어진 끔찍한 살인. 이태원 햄버거 가게에 들렀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던 조중필씨는 오른쪽 목에 3번, 왼쪽 목에 4번, 복부에 2번, 칼에 찔려 숨진다. 그러나 둘은 서로에게 죄를 미룬다. “우리가 죽였어요. 근데 나는 안 죽였어요.” 그렇게 둘은 살해 혐의자이자 유일한 목격자가 된다. 이어진 치열한 진실게임. 감독은 살인이 벌어진 공간에 주목한다. “재미로 죽였단 것이 패스트푸드 문화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즉흥적으로 바로바로 해치워버리는 난폭한 문화 말이다.” 그렇게 패스트푸드점에서 벌어진 패스트 살인이었을까.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감독은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 알렉스, 겉만 코리안이지 말하는 거나 행동하는 거나 유에스(US)입니다.”

알렉스의 아버지(고창석)는 이렇게 아들을 “뉴욕이 본적인 아이다”라고 말한다. 알렉스가 재미동포라면, 피어슨은 어머니가 한국인, 아버지가 멕시코인, 국적은 미국이다. 감독은 그날의 사건에서 미국과 관련된 한국인의 정체성, 이태원이란 공간의 문화적 혼재성에 주목했다. ‘한국인 한 명을 죽였을 뿐이다’. 무고한 청년의 지극한 비극은 ‘미국인’ 범인에게 단지 그것에 불과했단 것이다. 감독은 “용의자는 한국인 피가 흐르지만, 미국인에 가까운 행동과 사고를 가졌다”며 “그런 속에서 이런 사건이 나왔고, 그것이 우리 사회의 혼돈 중 하나”라고 말했다. 정말로 가장 개인적인 것은 가장 정치적인 것일까. 최소한 그날의 비극에서, 가장 개인적인 살인은 가장 정치적인 살인이 되었다. 여중생 사망사건에는 하다못해 군사훈련이란 최소한의 목적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재미로’ 죽였다는 용의자들의 말에선, 최소한의 합리적 동기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 누구나 칼에 맞을지 모른단 공포를 낳는다. 나아가 순수한 공포는 순수한 포비아(공포증)를 낳는다. 그래서 그날의 사건은 직접적 정치성은 없어 보여도, 가장 보편적인 정치성을 지닌다. 정치적이지 않아서 오히려 정치적인 아이러니가 있는 것이다.

“지가 피어슨 변호사야 뭐야.”

홍기선 감독은 분단·미국 문제 등에 지속적 관심을 가져왔지만, <이태원 살인사건>을 단순한 반미 영화로 만들지 않았다. 사진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알렉스의 변호사가 박대식 검사를 향해서 뱉는 말이다. 이런 말을 들을 만큼 검사는 피어슨이 범인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당초에 미육군범죄수사대(CID)는 피어슨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박 검사는 ‘감히’ 미군의 조사를 뒤집는다. 부검의 소견과 용의자 조사, 주변인 진술 등을 통해서 검사는 알렉스를 범인으로 확신한다. 윗선의 검사는 두명을 공범으로 기소하라고 종용하지만 박 검사는 고집을 꺾지 않는다. 홍기선 감독은 “실제 검사는 이른바 비주류 검사로, 조직에 순응하는 인물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조직의 논리를 따르면, 이들을 ‘안전하게’ 공범으로 기소했을 것이란 얘기다. 감독은 영화가 검사의 시선을 따라간 이유로 “사건에 가장 깊숙이 들어간 인물이었고, 검사가 애매한 절충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영화에서 비주류 검사는 미군 조사에서 히스패닉 갱단으로 의심받고 쓰레기 취급을 당했단 얘기를 하는 피어슨에 은근한 동질감을 느낀다. 그렇게 미군의 결론도 뒤집는 열혈검사 박대식. 그러나 감독은 말한다. “그의 열정이 어쩌면 오류를 낳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우리 사회의 일부다.” 여기에 주먹구구식을 벗어나지 못했던 한국식 수사 시스템, 증인 소환조차 제대로 하기 어려운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문제 등이 진실 규명의 장애물로 영화의 저변에 깔려 있다.

“검사님, 정 모르시겠으면 그냥 찍으세요. 그래도 50% 아닙니까.”

사건 조사를 함께한 경찰이 “정말로 알렉스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냐”는 박 검사의 집요한 질문에 마침내 내놓는 솔직한 답이다. 영화의 전반이 확신의 과정이라면, 후반은 의심의 연속이다. ‘진짜 알렉스야?’ 일관된 진술을 하던 피어슨에게 몇 가지 의문점이 드러나고, 검사는 혼란에 빠진다. 범인을 잡는 것만큼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열혈 검사지만, 그도 미궁의 사건에 직면해 궁지에 빠진다. 그래서 영화는 확신과 의심을 오가며 여러 번 출렁인다. 그러나 감독은 긴장감을 ‘만드는’ 스릴러의 공식을 따르지 않고, 장르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 리얼리즘을 미학적 근거로 삼아온 감독답게 우직하게 사건을 밀고 간다. 감독은 “사건 자체가 공포”라며 “실재에서 오는 미스터리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보통의 장르영화라면 선택했을, 검사와 변호사의 갈등 구도도 비켜갔다. 감독은 “검사는 피어슨, 변호사는 알렉스와 갈등한다”며 “내가 믿는 사람이 혹시 살인자는 아닐까, 저 사람 속의 진심은 무얼까, 끝없는 미묘함이 영화의 포인트”라고 말했다. 이렇게 검사의 고뇌와 변호사의 의심은 감독의 고뇌와 의심이었고, 미제의 사건을 보는 관객의 시선이 될 것이다.

“말도 안 돼. 그런 법이 어딨어.”

결국 알렉스는 대법원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선고를 받는다. 더구나 피어슨을 살인 혐의로 기소해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말에 고인의 누나는 “말도 안 돼”라고 되뇐다. 그렇게 실제의 사건처럼 영화도 분명 둘 중의 하나가 죽였는데 누구도 범인으로 처벌받지 않는 부조리한 결말을 맞는다.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에 대형 로펌에 찾아간 알렉스의 아버지에게 로펌의 변호사는 말한다. “이기지는 못해도 지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차가운 말은 냉정한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버스 운전을 하는 서민 가정 청년의 억울함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았다. 영화의 마지막에 조중필씨의 어머니는 “다 안 죽였으면 내 아들은 누가 죽인 거냐고!”라고 비명을 지른다. 앞서 어머니는 검사에게 “힘드시겠지만, 우리 중필이 한을 꼭 풀어주세요”라고 간곡하게 당부했다. 그러나 비명은 여전히 현재형이고, 당부는 모두의 것이 되었다. 영화의 엔딩처럼, 피 흘리는 진실은 폐쇄된 화장실 안에 여전히 봉인된 채로 남아 있다. 영화의 개봉은 봉인된 진실을 여는 계기가 될까. 9월10일 영화의 개봉에 맞춰 블로그(blog.naver.com/itaewon2009)에서 ‘97년 이태원 살인사건 재수사 촉구 서명 댓글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영화 시사회에 참석한 유족은 “아직 공소시효가 남았다”며 “영화 개봉이 범인을 잡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검사 역 열연한 정진영

“우리 사회의 책임을 묻는 영화”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 배우 정진영. 사진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이태원 살인사건>은 박대식 검사가 끌어가는 영화다. 다르게 말하면 박 검사를 연기한 정진영씨의 영화란 얘기다. 박 검사는 우리를 대신해 판단하고 갈등하는 캐릭터다. 그는 때로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고, 때로 의심을 지우려 애쓴다. 누가 진범인지 여전히 판단이 어려운 상황을 대변하는 인물인 셈이다. 그래서 정씨는 그의 캐릭터를 “영화의 가이드”라고 요약했다. 관객과 함께 영화의 전개, 사건의 추이를 따라서 확신과 의심을 오가는 역할인 것이다. 그렇게 고단한 재판의 추억을 몸으로 다시 겪어낸 배우를 만났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의 생각은.

=사실 나부터 감독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반미 영화에 반미 구도로 짜여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홍기선 감독이 무슨 의도로 이렇게 만들까 궁금했다.

-확신과 의심을 거듭하는 연기가 쉽지 않았겠다.

=의심과 확신의 롤러코스터를 타야 하는 역할이어서 연기의 설계도를 더욱 정밀하게 짜야 했다. 가끔 고민도 터뜨리는 캐릭터지만, 감정이 과하면 관객의 시선과 함께 가기 어렵다고 생각해 되도록 객관적인 길잡이가 되려고 노력했다.

-시사회에서 <이태원 살인사건>을 할리우드 스릴러가 아니라 ‘막걸리 스릴러’라고 했는데.

=사건을 극화하지 않고 나직하게 끌어가니까. 홀짝홀짝 마시다가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취하는 막걸리처럼 스멀스멀 감정이 쌓인단 뜻이다. 결국 범인이 누구다, 밝히는 것보다 오히려 우리 사회의 책임을 묻는 영화다. 영화가 고인의 얼굴로 끝나는 이유는 그의 죽음을 방치한 사회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지금껏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경우가 많지 않았나.

영화를 “감독의 의도의 덩어리”라고 생각하는 그는 <이태원 살인사건>을 “박 검사의 실수담일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실화에 바탕한 영화여서 극적 긴장을 위해 얘기를 마음대로 만들기 어려운 조건에서, 영화가 흡입력을 가지려면 배우들의 연기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정진영씨뿐 아니라 장근석·오광록·신승환·고창석씨 등 <이태원 살인사건>의 배우들은 저마다 만만치 않은 내공으로 맡은 역을 소화했다. 특히 좀처럼 속내를 알기 어려운 피어슨을 연기한 장근석씨는 한마디를 제외하곤 한국어 대사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능글거리는 표정과 광기 어린 눈빛으로 만들어낸 피어슨의 캐릭터는 영화관을 나서도 오랫동안 잔상을 남긴다.

※ <이태원 살인사건>의 모티브가 된 조중필씨 살해사건 일지

-1997년 4월 사건 발생

-1997년 5월 검찰, 재미동포 에드워드를 살인 혐의로, 미군속의 아들 패터슨을 흉기 소지 혐의 등으로 기소

-1997년 10월 1심 재판부, 에드워드에게 무기징역, 패터슨에게 징역 1년6개월 선고

-1998년 1월 2심 재판부, 에드워드에게 징역 20년, 패터슨에게 징역 장기 1년6개월·단기 1년 선고

-1998년 4월 대법원, 에드워드에 대해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판결

-1998년 8월 패터슨, 8·15 특별사면으로 석방

-1998년 11월 유가족,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검찰에 고소

-1999년 8월 패터슨, 검찰이 출국금지를 연장하지 않은 틈을 타 출국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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