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뜻밖에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언제나 따뜻한 말 같지만, 때로 영화 의 “우리 친구 아이가?” 하는 대사처럼 무언가 음험한 의미를 지니는 경우도 적잖다. 그렇게 친구란 단어는 도저히 친구가 될 법한 사이가 아닌 이들이 친구가 될 때에 빛난다. 반면에 당연히 친구가 될 만한 이들이 친구가 되는 일을 때로 ‘연줄’이라 부른다. 신동일 감독의 영화 는 방글라데시말(벵골어)로 ‘친구’를 뜻한다. 짐작대로 는 한국인과 방글라데시 ‘사람’이 친구가 되는 영화다. 이렇게 머나먼 이들은 나이도 가깝지 않다. 의 친구들은 29살 이주노동자 카림(마붑 알엄)과 17살 여고생 민서(백진희)다.
다행히 세상엔 그런 사람이 있다. 누구를 만나도 친구로 대하는 사람 말이다. 민서는 엄마도, 담임도 그저 친구로 대한다. 어떤 권위에도 주눅 들지 않고, 어떤 낯섦에도 이내 적응한다. 그런 민서가 집에 오는 버스 안에서 카림을 만난다. 물론 처음엔 민서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 그는 우리를 대신해 질문하고 행동한다. 옆에 걷는 카림에게 “3m 떨어져” 소리치고, 조금 친해진 다음엔 “때는 무슨 색깔이야?” 묻는다. 끝끝내 경계를 풀지 않는 우리와 달리 생각이 굳지 않은 소녀는 카림의 아픔을 보고 기꺼이 그의 ‘반두비’가 된다.
불행히 한국엔 이런 이들이 있다. 1년을 뼈빠지게 일하고도 임금 한 푼 받지 못한 이주노동자. 머잖아 체류 기간이 끝나는 카림은 1년치 체불임금을 받으러 가지만, 사장집 대문은 열리지도 않는다. 이제 카림의 친구 민서가 체불임금 추심에 나선다. 사실 민서는 버스에서 카림이 떨어뜨린 지갑을 슬쩍 가방에 넣었다 걸렸다. 경찰서에 가지 않는 조건으로, 민서는 카림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겠단 약속을 했다. 한국에선 약자의 약자인 이주노동자 카림에겐 역시나 힘없는 존재인 한국인 소녀조차도 의지할 구석이 된다. 카림에게 오히려 호통을 치는 사장이 적반하장의 대한민국을 상징한다면, 카림과 소통하는 민서는 그래도 남은 희망, 약자들 사이의 연대를 뜻한다.
그러나 는 임금 추심의 드라마가 아니다. 민서와 카림이 친구가 되는 동안에 스치는 눈길과 사연으로 지금 여기를 말하는 영화다. 한국인 가운데 성별과 나이의 카스트 하층에 위치한 ‘청소녀’, 단일민족 사회의 인종 카스트에서 가장 아래에 깔린 이주노동자, 이들의 동행은 어디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다. 이들이 같이 있는 모습만 보아도 한국인 아저씨·아줌마는 불편한 시선을 보내고, 민서의 엄마는 카림과 함께 있는 민서를 보고 불안해 어쩌지 못한다. 이렇게 는 이들이 왜 여기의 카스트 안에서 가장 아래에 위치한 존재인지, 스치는 시선과 부딪히는 문제를 통해 차곡차곡 쌓아간다. 예컨대 카림은 실업자와 알바생의 싸움을 말리다 오히려 엉뚱한 ‘내국인 연대’의 벽에 부딪혀 폭력범으로 몰린다. 가난한 엄마와 사는 민서가 선택할 삶의 방식도 많지 않다. 민서는 원어민 강사가 하는 영어학원에 다니기 위해 마시지 업소에서 일한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현실에 밀착한 영화인의 한 명인 신동일 감독은 곳곳에 촛불소녀 이미지와 MB 코드를 심어두었다. 민서의 가방엔 촛불소녀 배지가 붙어 있고, 민서의 친구들이 타고 가는 학원버스엔 ‘MB 수학’이란 이름이 적혀 있다. 또 민서는 라면을 먹으면서 YTN 돌발영상을 보고, 라면 냄비 옆에는 이 있다. 신동일 감독은 자신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소녀의 배경을 그렇게 그렸다. 그렇다고 가 딱딱한 영화는 아니다. 때로 직설법으로 흐르는 순간도 있지만, 현실에서 있을 법한 순간들이 허허실실 웃음을 자아낸다.
관계 3부작의 마지막 편는 청소년이 주인공인 영화지만, 청소년이 보지 못한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전주국제영화제 등에서 이미 12살 관람가로 상영된 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판정을 내렸다. 여기에 한국인 여고생과 이주노동자 남성의 관계가 우정 이상으로 발전한단 내용이 일부 한국인 네티즌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렇게 는 개봉 전부터 한국 사회의 ‘톨레랑스’를 시험하는 영화가 되었다. 그렇게 민서가 영화에서 엄마에게 하는 대사 “마음을 열어”는 가 한국 사회에 하는 말이 되었다.
는 ‘관계 3부작’의 마지막 편이다. 신동일 감독의 (2006)는 병역거부 신념을 가진 여호와의 증인 청년과 냉소적인 386 지식인의 만남을 다뤘고, (2008)는 군대에서 만난 친구 사이인 외환딜러와 요리사의 이야기를 통해 계급 문제를 응시했다. 이렇게 신동일 감독은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보이는 이들의 만남을 통해 지금 여기의 사회를 말한다. 는 3부작 가운데 가장 따뜻한 영화다. “친구를 웃게 하는 사람은 천국에 갈 자격이 있다”, 는 이렇게 따뜻한 방글라데시 속담을 남긴다. 지연·학연·혈연 같은 연줄로 묶이지 않는 이들이 친구가 되는 일을 ‘연대’라고 말하기도 한다. 는 6월25일 개봉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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