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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읽기]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등록 2009-07-02 09:02 수정 2022-12-15 06:47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엄기호 지음, 낮은산 펴냄, 2009년 5월 펴냄, 9800원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자기 몸은 자기가 돌보라!”

얼핏 지당하신 말씀 같지만, 곰곰이 혹은 뒤집어 생각하면 “아무도 믿지 마라” 혹은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마라”는 무서운 뜻이 된다. 이런 교리를 가슴에 품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유인’은 아무도 믿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개발해 운이 좋으면 승자가 된다. 그래서 엄기호는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에 “이것이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취해야 하는 마지막 도덕이다”라고 썼다.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는 ‘신자유주의의 민얼굴’을 그리는 책이다. 저자는 한 인간의 유년기, 청장년기, 죽음까지의 과정을 통해 어떻게 신자유주의가 모두의 일상에 침투해 있는지 살핀다. 아이들에게 저축하는 법 대신 투자하는 법을 가르치는 사회로 문을 열어 경쟁에서 탈락한 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돌아오는지 보여준다. 이렇게 살펴본 신자유주의는 단순한 경제원리를 넘어 인간의 도덕률, 감수성까지 바꾸는 무서운 체제다. “언제나 누구나 망하리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탈락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개인들로 가득하지만, “소시민의 삶이 가능하리란 기대는 착각”이며 탈락자는 예외적 존재가 아니라 예외적 다수가 된다.

이렇게 경쟁의 광풍이 휩쓸고 간 자리엔 ‘자유’의 앙상한 깃발만 나부낀다. 그러나 실상 자유의 이름으로 인간의 권리는 인간의 의무로 교묘하게 바뀌었을 뿐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유에 맞선 자유”를 “상상해낼 수 있는 힘과 영감에 우리의 미래가 달렸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저자의 독특한 이력이 녹아 있다. 엄기호는 필리핀의 국제연대운동 단체에서 일했고, 지금도 남미와 유럽, 아시아를 넘나들며 국경을 넘어선 연대를 모색한다. 이렇게 국제연대 활동가로 10년 가까이 지구촌을 주유한 그가 보고 듣고 경험한 얘기가 책의 곳곳에 스며 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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