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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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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E1처럼 놀아요

동세대 스타일을 체화해 롤모델이 된 ‘빅뱅’처럼,
그들의 소비자는 춤을 따라 출 또래 소녀들
등록 2009-06-26 05:29 수정 2020-05-02 19:25

그룹 ‘2NE1’의 공민지는 올해 열다섯이다. 하지만 이미 2NE1은 디지털 음원 차트에서 두 번 1위를 했고, 데뷔 한 달여 만에 SBS 의 1위상인 ‘뮤티즌송’을 받았다. 2NE1의 노래 (Fire)에서 공민지가 노래하는 “숨이 차오를 만큼 달려주는 나의 가슴이 왠지 나 싫지만은 않아 재밌죠”는 그 자신의 이야기다. 의 모글리가 그 야성 그대로 무대에 오른 것 같은, 자기 파트에서 거침없이 다리를 180도로 찢는 이 소녀는 숨이 차오를 때까지 달리면 된다. 나머지는, ‘그분’이 알아서 해준다.

2NE1처럼 놀아요. 사진 YG엔터테인먼트

2NE1처럼 놀아요. 사진 YG엔터테인먼트

‘태희 혜교 지현’이 흉내낼 수 없는 스타일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의 오너 양현석. 그는 초등학생이던 공민지를 연습생으로 발탁했고, 2NE1이 빅뱅과 함께 광고음악 을 부르도록 해 그들을 정식 데뷔 전에 음원 차트 1위에 올렸다. 이 15살 소녀와 39살 오너의 조합은 가요계의 창조주들이 어린 이브를 만드는 데 공을 쏟는 이유를 보여준다. 음반 시장이 사멸 중임에도 슈퍼주니어는 3집 음반을 20만 장 이상 팔았다. 빅뱅은 휴대전화부터 맥주까지 모든 알짜 광고(CF)에 출연하고, 소녀시대의 (Gee)는 한국방송 에 출연한 아주머니들도 부른다. 아이돌은 기존 팬덤은 물론 대중까지 팬으로 만들었고, 덕분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

2NE1은 ‘아이돌 시대’에 거대 기획사가 캐기 시작한 새 금광이다. 원더걸스의 (Tell me) 춤은 에어로빅을 하는 중년 여성들도 따라했고, 소녀시대의 는 잠실 야구장의 넥타이 부대도 따라 불렀다. 하지만 는 그들에게 너무나 높은 벽이다. 문화방송 에 출연하는 중년 여배우들은 소녀시대의 스키니진은 따라했지만, 속옷을 겉에 입은 듯한 2NE1 박봄의 스타일은 도전할 수 없을 것이다. 2NE1을 따라하는 건 공민지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될 것이다. 그건 빅뱅 또래의 남자들이 대부분 빅뱅의 패션 아이템 중 하나쯤 갖고, 을 미니홈피의 배경음악으로 했던 것과 같다. 원더걸스가 대중적인 히트곡으로 아이돌 팬덤의 바깥으로 나갔다면, 빅뱅은 동세대의 스타일을 체화해 그들의 롤모델이 돼 ‘슈퍼 아이돌’로 진화했다.

데뷔 전 ‘여자 빅뱅’으로 불렸던 2NE1은 빅뱅의 길을 따른다. 그들은 여성 후드가 달린, 마치 빅뱅과 같은 스트리트 패션을 하고서 무대 위에 선다. 그건 지금 그런 옷의 주머니에 손을 꽂고 거리를 걷는 소녀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여학생이 학교 축제에서 모두에게 귀엽게 보이고 싶다면 춤을 춰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학생들에게 멋있게 보이려면 섹시하기보다는 거칠게 가슴을 내밀며 춤을 추는 공민지를 따라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2NE1은 모든 면에서 극단적이다. 2NE1의 멤버 CL은 바지에 여우 꼬리를 붙이고, 한 갈래로 묶은 산다라박의 머리는 하늘 높이 솟아 있다.

또한 는 기존 가요의 구성 방식에서 거의 완전히 벗어났다. 는 특정 멜로디를 반복한다는 점에서 ‘후크송’이라는 한국 가요계의 장르 아닌 장르 노래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후크송은 대부분 손담비의 처럼 특정 멜로디를 최대한 여러 번 반복 강조할 뿐 기본 뼈대가 기존 가요와 다르지는 않다. 일부 멜로디의 배치 순서만 바뀌었을 뿐, 대부분의 후크송은 멜로디 중심으로, 기존 가요의 기승전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반면 는 힙합의 구조를 멜로디로 치환했다. 그나마 가요적인 구성을 가진 박봄이 부르는 “내 눈빛에 빛나는 별들도 내 심장을 태우는…” 부분을 제외하면, 는 시작과 함께 나오는 신시사이저 음, 혹은 그에 이어 나오는 “에 에 에 에 에 에 에 2NE1”의 비트 위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멜로디를 다양하게 늘리고 줄이면서 변주한다. 이는 마치 힙합에서 래퍼가 같은 비트를 다양한 랩으로 맛을 내는 것과 같다.

‘얼마나 많은’보다 ‘어떤 포지션이냐’
2NE1의 스타일은 기존 걸 그룹들의 ‘예쁜’ 패션과 다르다. 과감한 의상에 튀는 액세서리까지, 스타일의 모험을 피하지 않는다. CL, 박봄, 공민지, 산다라박(왼쪽부터). 사진 YG엔터테인먼트

2NE1의 스타일은 기존 걸 그룹들의 ‘예쁜’ 패션과 다르다. 과감한 의상에 튀는 액세서리까지, 스타일의 모험을 피하지 않는다. CL, 박봄, 공민지, 산다라박(왼쪽부터). 사진 YG엔터테인먼트

미국 음악계에서 힙합과 팝, 랩과 멜로디의 경계가 사라진 지금, YG의 수석 프로듀서인 테디는 2NE1에게 바로 그들과 ‘동시대적’인 곡을 안겼다. 그리고 를 소비할 대상은 인터넷으로 리한나(Rihanna)의 노래를 듣고, 그의 춤을 따라할 소녀들이다. 이 극단적인 스타일은 2NE1의 멤버들과 비슷한 또래를 더 강하게 끌어들이는 ‘코어’다. 처음부터 끝까지 숨찬 비트로 달리는 처럼, 2NE1의 팬들은 “머리가 찰랑찰랑찰랑찰랑 되도록” 엉덩이를 “살랑살랑살랑살랑 흔들”며 “미미미미미미미치고” 싶을 것이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2NE1은 당장은 대중적인 호응을 얻기는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롤모델인 빅뱅의 자전적인 에세이 는 올 상반기 ‘전체’ 도서 판매량 2위를 기록했다. 아이돌 그룹이 한 세대의 스타일이 될 때, 그들은 대체 상품을 찾기 어려운 ‘절대 반지’가 된다. 2NE1에게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포지션을 차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이 미션은 다른 어떤 아이돌 그룹의 프로모션보다 어렵다. 소속된 거대 남성 아이돌 그룹을 바탕으로 신인 여성 그룹을 띄우는 전략은 ‘빅뱅-2NE1’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10여 년 전, S.E.S는 H.O.T의 대성공 직후 등장하면서 순식간에 여성 아이돌 그룹의 첫 번째 전성기를 열었다. 하지만 지금 2NE1이 당시 S.E.S의 자리에 오른다는 보장은 없다. 단지 이미 소녀시대와 원더걸스가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아이돌로서의 진정성이다. 아이돌 팬덤이 아이돌 가수들에게 싱어 송 라이팅(작곡) 능력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대신 그들은 아이돌 가수들의 MR(가수가 라이브로 부르는 목소리를 제외한 나머지 사운드를 담은 음원)를 제거해서라도 그들의 라이브 실력을 확인할 만큼 깐깐하다. 2NE1이 몇 주 동안 SBS 에만 출연한 것 역시 가 방송 3사의 프로그램 중 가장 가수들의 춤을 잘 잡아내는 것과 무관하지는 않다.

특히 2NE1은 10~20대 초반 여성의 정서와 스타일을 반영하려는 의도가 강한 그룹이다. 이런 아이돌 그룹에 가장 필요한 진정성은 그들 스스로가 또래의 정서와 스타일을 반영할 수 있는 끼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원더걸스와 소녀시대가 정제된 군무를 추는 것과 달리, 2NE1이 멤버 각자가 돌아가며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안무를 들고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공민지는 최근 무대에서 다리를 찢는 퍼포먼스를 새로 추가하면서 화제가 됐다. 그러나 2NE1은 아직 이 ‘진짜 끼’를 제대로 검증받지 않았다. 그들이 다소 어설픈 무대 매너를 보여준 첫 방송에 대해 몇몇 언론매체가 자극적인 기사들로 비난한 것은 이 그룹의 끼와 실력에 대한 평가가 대중에게 가장 잘 먹힐 수 있는 ‘떡밥’이었기 때문이다.

‘사장님’은 채울 수 없는 마지막 한 수

물론 비슷한 콘셉트의 빅뱅 역시 데뷔 초반에는 어설픈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만든 ‘빅뱅’의 시작이었던 은 빅뱅 멤버인 지드래곤 작곡이었고, 그는 스타일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또한 태양은 올해 대중음악상 ‘R&B 부문’을 받을 만큼 솔로로서 인정을 받았고, 탑은 MKMF(Mnet KM Music Festival)에서 이효리와 키스하며, 대성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낌없이 망가지면서 기존 아이돌의 범주를 스스로 벗어났다. 반면 2NE1은 그들 창조주의 기획 아래 모든 것을 갖춘 채 데뷔했고, 아직은 그 창조주의 보호 아래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팀이다. 그들은 온갖 상황이 벌어지는 행사도, 전쟁 같은 예능 프로그램도 해보지 않았다.

지금 2NE1에게 가장 필요한 건 자신들이 스스로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자생력을 증명하는 것이다. 한국 가요계에서 거의 창조주에 가까운 능력을 가진 몇 안 되는 최고경영자(CEO)는 모든 것을 다해 자신의 ‘어린 이브’들을 가요계의 중심에 올려세웠다. 하지만 그들이 새로운 에덴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지금부터 그들의 역량에 달려 있다. 2NE1이 정말로 흥미로운 건 이 부분이다. 그들은 대형 기획사가 신인에게 쏟아부을 수 있는 최대치를 등에 업었지만, 동시에 가장 자생적인 힘이 있는 아이돌이 돼야 살아남을 수 있다. 과연 그들은 어떤 ‘사장님’도 대신할 수 없는 마지막 한 수를 채울 수 있을까? 만약 가능하다면, 소녀 아이돌은 드디어 땅에 내려와 거리의 친구들과 놀 수 있을 것이다.




가요천하 3분지계
YG, ‘판돈’ 건 경쟁 시작하다


최근 가요계는 ‘천하 3분지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YG엔터테인먼트와 SM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가 가요계의 대세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방송 가요 프로그램의 1위는 SM 소속의 소녀시대와 슈퍼주니어, JYP의 2PM, YG의 2NE1 등이 번갈아 차지하다시피 했다. 또한 2008년 정부의 감사보고서에 바탕하면 SM·YG·JYP의 2008년 매출은 각각 434억원, 185억원, 110억원을 기록했다. 물론 매출액은 1180억원을 기록한 m.net 미디어가 더 높지만, m.net 미디어는 대기업인 CJ의 자회사로, 오버그라운드 가요계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가수들의 음원 판매와 유통을 겸한다는 점에서 다른 세 회사와 비교할 수는 없다. 적자 역시 610억원에 달한다.
가요계의 빅3, 혹은 3강이 이렇듯 막강한 힘을 가지는 것은 물론 아이돌의 힘이다. SM은 동방신기부터 샤이니까지 아이돌 그룹을 연속으로 히트시키면서 가장 많은 인기 아이돌 그룹을 보유하고 있다. JYP는 god부터 원더걸스까지 한 시대를 풍미하는 빅스타들을 만들어냈다.
YG의 2NE1이 화제가 되는 것은 단지 2NE1의 화제성뿐만 아니라, YG가 드디어 나머지 두 회사와 ‘판돈’을 건 경쟁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빅뱅 전까지, YG는 대중적인 톱스타보다는 흑인 음악을 기반으로 빅마마·세븐·휘성처럼 다양한 스타일의 가수들을 보유한 것이 강점이었다. 빅뱅은 YG 역사상 최초로 모든 시장을 점령한 아이돌 그룹이고, YG는 빅뱅을 바탕으로 2NE1에게도 그런 시장을 부여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SM이 H.O.T에 이어 S.E.S로 시장의 강자로 자리를 굳힌 것과 비슷하다. 빅뱅의 휴대전화 CF에 2NE1을 묶고, CF와 뮤직비디오의 연계를 통해 데뷔 전부터 2NE1의 스타일링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것은 빅뱅이 없던 과거의 YG에서는 불가능한 거대 프로모션이다.
늘 대륙의 중앙을 꿈꾸던 유비가 드디어 형주를 손에 넣고 대망을 이루려는 셈이다. 진정한 아이돌 시대의 개막, 또는 한국 가요계의 삼국지가 시작됐다.

강명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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