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일 지음, 생각의나무 펴냄, 6800원
문학평론가 도정일(67) 경희대 명예교수가 새 저서 을 내놓았다. 지은이는 여러 매체에 왕성한 필력으로 글을 써왔지만, 그 글들을 묶어 책으로 펴내는 데는 극도로 인색한 모습을 보였다. 대담집이나 공저서는 여러 권 있었지만, 단독 저작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번에 나온 책은 문학비평집 (1994년) 이후 무려 14년 만에 펴낸 두 번째 단독 저작이다. 생각의나무 출판사가 기획한 ‘문(問)라이브러리’ 시리즈의 하나로 나온 이 저서에는 1990년대 후반에 쓴 에세이 다섯 편이 묶였다. 지은이는 머리말에서 “다시 읽어보니, 이건 꼭 내가 21세기에 부친 영혼의 안부편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썼는데, 그 고백 그대로 이 책은 10년 세월의 풍화작용을 이겨내고 생기를 발한다. 아니, 세월이 지나 오히려 더 생생한 문제의식으로 빛나는 글이 됐다고 해야 맞을 듯하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어휘를 하나만 고르라면, 이 책의 제목으로 채택된 ‘시장전체주의’라는 말일 것이다. 지은이는 문화·교육·대학·문학, 그리고 다른 어떤 것보다 인문의 풍경을 통해 우리 시대를 관찰하고 거기서 시장전체주의의 암울한 징후를 적발해 분석한다. 인문학자의 시선이 미리 포착한 21세기 대한민국의 살풍경이 이 책에서 묘사되고 있는 셈이다.
그가 말하는 시장전체주의란 “시장 논리의 지배가 확립된 사회”다. 그 사회가 ‘전체주의’인 이유를 지은이는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먼저 이 사회가 시장 논리, 시장 원리, 시장 가치를 향해 사회 전체를 훈육하고 재조직하며 채찍질하는 ‘동원 체제’이기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이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한 것 같은 겉모습을 띠고 있지만, 그 체제만이 생존의 유일한 길임을 설득하고 납득시킴으로써 모든 구성원을 체제에 복속시킨다. 둘째로, 시장전체주의는 주민들을 겁주고 통제하고 관리하는 ‘감시 체제’다. 시장에 적응하고 순응한 자만이 이 무한경쟁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하는 이 체제는 그런 이데올로기의 반복을 통해 구성원의 의식을 장악한다. 그리하여 “시장 원리를 수락하는 것은 시민의 ‘의무’가 되고 거기 적응하는 것은 시민의 ‘미덕’이, 그리고 그 적응력은 시민의 ‘능력’이 된다.” 세 번째 특징은 ‘사회적 이성의 마비’다. “과거 정치전체주의가 사회적 이성의 학살을 중요한 정치적 목표로 삼았던 것과 유사하게 시장전체주의에서도 공적 이성은 학살 대상이 되고 그 사용 능력은 마비된다.”
지은이가 이 지점에서 강조하는 것이 인문정신과 인문가치이고, 그 정신과 가치의 담지자인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그 본질적 속성상 인간의 인간다움 실현을 주제이자 목표로 삼는다. 인문학은 시장의 효율·경쟁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러므로 시장의 신은 인문학을 무가치한 것으로 보기 십상이다. “인문학은 돈을 경멸하는 것이 아니라 돈밖에 모르는 사회를 경멸한다. 인문학은 시장을 과소평가하거나 시장 논리를 전면 거부하지 않는다. 인문학이 문제 삼는 것은 시장이 아니라 ‘시장전체주의’이고 시장 논리가 아니라 ‘시장 논리의 유일 논리화’이다. 인문학은 돈 버는 사회를 우려하는 것이 아니라 돈에 미친 사회를 우려한다.”
시장전체주의는 그 맹목성과 야수성 때문에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을 잡아먹게 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문민정부 시절 날이면 날마다 ‘세계화’를 외치다가 결국 외환위기를 맞아 정권이 파산하고 국가가 부도났던 것이 시장의 자기파멸성을 증거한다. 지은이는 이 시장의 광기를 제어할 것은 비판적 이성이며, 비판이성을 가동할 주체는 시민사회라고 강조한다. “21세기를 통틀어 한국인에게 부과되는 중요한 사회적 과제 중에서도 가장 우선적인 것은 민주사회의 유지·발전·계승이다.” 그 사회를 감당할 민주시민을 길러내지 못하는 한,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고명섭 한겨레 책지성팀장 michael@hani.co.kr
* 2008년 9월20일치에 실렸던 글입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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