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러블록 지음, 이한음 옮김, 세종서적 펴냄, 1만2천원
화학약품(살충제) 남용이 부른 생태계의 비극을 파헤친 레이철 카슨의 은 환경과 문명에 대한 인간의 생각을 바꿔놓았다. 하지만 ‘가이아 이론’의 창시자 제임스 러블록(89)은 새들이 사라져 봄이 돼도 새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 것은 살충제 탓이 아니라고 말한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인간의 개발과 경작지 무한 확대, 곧 다른 생물 서식지의 무한 파괴였다는 것이다. 그의 논법대로라면 인간의 터전을 ‘습격’하는 멧돼지들을 제거하라고 부르짖는 건 적반하장이다. 그것은 지구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인간중심주의의 우화다. 러블록은 그런 착각과 오만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인류는 멸종을 피하기 어렵고, 그 시기는 불과 수십 년 앞으로 다가와 있는지도 모른다고 다급하게 경고한다.
2006년에 출간된 (The Revenge of Gaia)에서 러블록은 인류 문명의 현 상태를 사람을 가득 채운 채 대서양이나 태평양을 날고 있는 대형 여객기에 비유한다. 비행기 안 대기는 이산화탄소가 과잉돼가지만 엔진을 꺼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할 수는 없다. 추락하기 때문이다. 러블록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있는지도 모르며 늦어도 이번 세기 안에 건널 가능성이 짙다고 본다. 정부 간 기후변화협의체(IPCC) 자료가 만약의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기온이 지금보다 섭씨 5도 정도 올라갈 것으로 예측된 이번 세기말의 지구 생물 분포 상황을 보여주는 그 자료에서, 숲은 극지방에나 남아 있고, 극지를 뺀 거의 모든 바다가 불모지대로 변하며, 육지 역시 대부분 관목 정도만 남거나 아예 사막으로 바뀐다.
아직도 개발과 성장 신화에 사로잡힌 인간이 화석연료를 태워 쏟아놓는 이산화탄소는 매년 270억t으로, 고체로 만들어 쌓으면 높이 1.7km, 둘레 20km의 거대한 산이 된다. 바다는 수면의 온도가 섭씨 12도 정도를 넘으면 따뜻한 상층부를 차지한 물과 아래쪽 찬물의 역전이 불가능해지는 안정상태가 유지돼 상층부의 영양분이 고갈되면서 생명체가 사라진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과잉으로 말미암은 지구대기의 열탕화와 대멸종은 5500만 년 전에도 일어났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상황이 더 나쁘다. 태양계 초기보다 23%나 더 뜨거워진 태양은 5500만 년 전에 비해서도 0.5%(지구기온 섭씨 0.5도 상승효과) 더 뜨거워져 있다. 게다가 인간활동으로 땅과 바다, 하늘의 복원력은 이미 현저히 손상돼 있다. 열탕화의 임계점을 넘는 게 바로 ‘가이아의 복수’다. 러블록은 이를 지구상 생태계를 파괴하는 존재(인간이든 다른 종이든)를 멸종시키는 진화 시스템이라고도 일컫는다. 말하자면 자신을 병들게 한 질환의 원인균인 인간을 제거하고 기후와 화학조성을 정상으로 돌려놓음으로써 건강을 회복하려는 가이아의 몸부림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러블록이 뜻밖에도 핵에너지 활용론을 펴는 것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태양열·풍력·지열·조력 등 재생에너지의 가치를 인정하지만 그것으로는 지금 절박한 온난화 가스 확산을 막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바이오에너지는 오히려 경작지 확대로 멸망을 앞당길 것이란다. 그가 거의 유일한 대안에너지로 생각하는 것은 방사능과 폐기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원료가 무한대인 핵융합 에너지. 별의 에너지도 이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실용화하려면 수십 년이 걸린다. 따라서 그때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면서 과도기를 넘길 에너지가 필요한데 그게 바로 핵분열 에너지, 곧 지금 실용화돼 있는 원자력발전이다.
그는 종국적으로 인구를 크게 줄여 5억 명 정도로 안정화하는 게 가이아를 해치지 않으면서 인류가 자유롭게 다양한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조건이라 본다. 그렇게 보면 주로 살 만한 나라들이 안달하는 출산율 높이기도 인간, 나아가 자민족 중심의 근시안이 부른 가이아 죽이기가 되는 셈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 2008년 6월7일치에 실렸던 글입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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