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르몽드적’으로 세계를 뜯어보다

반세계화 앞장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심층 분석한
빈곤·금융·자유무역·환경 등 104가지 현안
등록 2009-06-18 13:24 수정 2020-05-03 04:25
<르몽드 세계사>

<르몽드 세계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지음, 권지현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 2만5천원

남북관계나 종합부동산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극단적 대립·분열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세상은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인다. ‘르몽드적 시각’이라는 말이 성립할진 모르겠지만, 프랑스의 진보적 일간지 의 국제관계 전문 시사 자매지 가 기획한 책 는, 어느새 우리와 그들을 구분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익숙해진 영미 쪽의 시각과는 좀 다르다. 가 또 다른 것은 독특한 디자인, 그리고 폭넓고 깊은 문제의식이다. “새천년 개발목표는 구조적으로 빈곤을 낳을 수밖에 없는 경제모델이 남긴 심각한 상처를 대충 붕대로 감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 커다란 실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기 냄새까지 풍긴다.” 2015년까지 세계의 빈곤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천명한 2000년의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 결정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허황된 새천년 개발목표’라는 항목의 결론 부분이다. ‘가난과의 전쟁인가, 가난한 자들과의 전쟁인가’라는 또다른 항목이 시사하듯 돈은 오히려 빈국에서 부국으로 역류했다. 그냥 이 정도로 마무리했다면 다른 책들과 크게 다를 게 있으랴.

의 큰 특징은 참으로 ‘일목요연’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도(그림 포함)와 글의 절묘한 배치 덕이다. 가로 세로 21.5×28.5㎝의 대형 판형인 이 책에는 104가지 주제들이 항목별로 나뉘어 배치돼 있다. 한 항목당 2쪽씩인데, 다양한 모양의 지도와 글이 같은 비중으로 지면을 장식한다. 항목마다 두셋에서부터 대여섯에 이르는 각양각색의 지도와 도표, 그래프들이 들어차 있다. 총 250점에 이르는 입체적인 지도와 그림이 이 책의 생명이다. 이냐시오 레모네, 도미니크 비달 등 국제문제 전문기자들과 알랭 모리스를 비롯한 인류학자, 경제학자, 지리학자, 국제정치학자 76명이 쓴 글도 뛰어나지만, 4명의 지도제작 전문가들이 글쓴이들의 문제의식을 시각적으로 살려낸 그림들만 봐도 한눈에 문제의 핵심이 들어온다.

하지만 이 책이 모양새 예쁜 잡다한 사실들의 종합판과 다른 것은 르몽드적 문제의식을 일관되게 추구하는 참신한 주제들 때문이다. 새천년 관련 항목 바로 앞 항목이 ‘만국의 억만장자들이여, 단결하라’. 그리고 ‘난공불락의 금융계’ ‘자유무역이라는 신화의 감춰진 얼굴’ ‘투기에 빠진 연기금’ ‘부채로 죽어가는 나라, 부채로 배를 불리는 나라’가 앞뒤에 포진해 있다. ‘성장 없는 발전은 가능한가’라는 항목에서 성장에 대한 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글은 막다른 골목에 처한 인류가 택할 수 있는 방도를 세 가지 든다. 하나는 유엔이 채택한 ‘지속 가능한 성장’. 또 하나는 ‘마이너스 성장’ 전략. 글쓴이는 지속적인 성장과 환경보전은 양립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무한발전 전략 자체가 서구 지배를 영속화한다는 점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은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마이너스 성장’은 극빈층의 욕구를 과소평가하고 빈곤문제를 서구의 가치와 인식으로 바라본다고 비판한다. 글쓴이가 제시하는 제3의 길은 모든 민족의 기본욕구를 충족시킬 만큼의 한정된 경제성장을 꾀하되 과잉성장한 쪽은 줄여 형평을 취하면서 부에 대한 관념을 바꿔 생산과 소비를 줄이고 전통적 가치와 공공영역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제3장 ‘세계화, 그 승자와 패자- 불평등의 폭발’이 이런 문제들을 다뤘다. 나머지 네 장의 주제는 각각 ‘위기의 지구- 환경의 대반격’ ‘새로운 지정학- 9·11 사태 이후의 세계’ ‘끝나지 않는 분쟁- 위험천만의 진퇴유곡’ ‘거역할 수 없는 아시아의 부상- 세계의 새로운 판도’이다. 2006년 출간돼 프랑스에서 50만부, 영국에서 30만부, 독일에서 70만부가 팔렸다는 는 지금의 금융공황 사태를 짚진 못했지만, 세계가 왜 이 지경에 처할 수밖에 없는지를 그야말로 일목요연하게 미리 내다본 셈이 됐다.

한승동 한겨레 선임기자 sdhan@hani.co.kr

* 2008년 11월22일치에 실렸던 글입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