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바그디키언 지음, 정연구·송정은 옮김, 프로메테우스 펴냄, 1만8500원
“말에게 사료를 충분히 먹이면, 말은 참새들을 위해 무언가를 뒤에 남기게 된다.”
부자들이 더욱 부자가 되도록 만들어주면 흘러넘치는 부의 일부가 아래로 흘러 중산층과 가난한 노동자들 일자리도 만들어준다고 줄곧 주장해온 게 1970년대부터 시작된 미국 ‘공화당 혁명’의 구호였다. 이 이론은 로널드 레이건 정권 때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 조지 부시 정권 때 절정에 이르렀다. 그 결과 말은 더욱 살찌고 참새들도 함께 잘 먹고 잘 살게 됐나? 절정이 곧 몰락의 전주였던 것으로 판명된 공화당 부시 정권의 말로에서 보듯, 폭식한 말들은 중병에 걸렸고 참새들에게 남겨진 건 구린내가 진동하는 썩은 똥뿐이었다.
퓰리처상을 받은 저널리스트로, 캘리포니아대학 저널리즘대학원 명예원장으로 재직 중인 벤 바그디키언의 는 이런 비극적 결말의 원흉을 “한 줌에 불과한 몇몇 거대 미디어 복합기업들”이라고 낙인찍는다. 1980년대 레이건 정권 등장 무렵까지 50개에 이르던 미국 주요 언론사들은 불과 20년 뒤인 부시 정권 때 5개 미디어 복합기업으로 통합됐다. 이들이 “정부는 뒤로 물러나라!”고 쉼없이 외쳐왔고 20세기 후반 미국의 정치·사회·경제의 움직임을 극단적 보수 쪽으로 돌려놓았다. 세계 최대의 미디어회사인 타임워너, 디즈니,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퍼레이션’, ‘비아콤’, ‘베텔스만 A. G.’. 이들이 미국 5대 미디어 복합기업들이다. 모두 세계 500대 기업에 들어가는 이 거대기업들은 상호 경쟁하면서도 콘텐츠를 공유하고 자금을 주고받으며 이사들까지 공유하는 강고한 협력관계를 맺고 이익을 나눠 갖는다.
이 난공불락의 보수 미디어 성채들을 묶어주는 것은 돈이다. 그들은 수익 극대화를 위해 구조조정과 인수·합병을 거듭했고, 이익이 되지 않는 모든 것을 내쳤다. 수익 하락으로 이어질 시청률과 광고시장 잠식을 우려해 공영방송 체제마저 가로막은 이 언론 카르텔 때문에 미국에는 영국의 〈BBC〉, 일본의 〈NHK〉 같은 공영방송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다. 이들은 기업과 정치인 등 기성 질서 대표자들을 주로 뉴스에 부각시키면서 선거자금을 대고 정치광고를 통해 뿌린 것 이상을 회수한다. 1952년 1억4천만 달러였던 미국의 선거 비용이 2000년에 50억 달러에 달했다. 그 돈을 대는 것은 기업들이고, 결국 그 돈들은 다시 미디어 복합기업과 로비회사로 들어가고, 세금감면 조처 등 친기업 입법을 통해 기업 환수금은 몇 배나 부풀려진다. 1996년 당시 공화당 실세였던 뉴트 깅그리치가 미디어 복합기업들에 선사한 ‘텔레커뮤니케이션법’은 방송통신 융합을 통한 멀티미디어화와 기업 간의 자유로운 합종연횡을 허용함으로써 이 독과점 체제에 날개를 달아줬다. 이를 제어해야 할 연방통신위원회(FCC)도 오히려 그들 편을 들었다.
그 결과 주류 미디어에서 국가 진로와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진지한 기사나 프로는 발붙일 땅을 잃었고 진보담론은 파편화했으며 ‘러시 림보’류의 방송 재담꾼들이 퍼뜨리는 천박한 우익 정치담론이 횡행했다. 대다수 미국 시민들은 9·11 사태의 진짜 이유를 짐작도 할 수 없었고, 이라크 침공을 합리화한 부시 정권의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으며,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의 비극에 대해서나 ‘미국이 전세계로부터 미움받는 까닭’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부패와 공멸의 ‘자살장치’는 그렇게 해서 완성되고 착착 가동됐던 것이다.
의 옮긴이 정연구 교수는 “문득 한국이 미국의 미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오바마 정권 등장 이후 새 미디어정책 방향을 잡아야 할 미국에 지금의 한국이 오히려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거꾸로 얘기하면, 그것은 신문·방송 겸영 허용을 핵으로 한 한국 정부·여당의 미디어 관련법이 통과될 경우 파탄난 지금의 미국 모습이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란 얘기와 같다.
한승동 한겨레 선임기자 sdhan@hani.co.kr
* 2009년 3월21일치에 실렸던 글입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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