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샤 셰퍼드 지음, 차미례 옮김, 프레시안북 펴냄, 1만8천원
1972년 6월17일, 워싱턴 워터게이트 호텔 단지 안의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몰래 침투한 괴한 5명이 체포당했다. 비즈니스 정장 차림에 외과수술용 장갑을 낀 그들은 최신형 도청장치를 지니고 있었고, 일련번호가 이어지는 100달러짜리 고액권 수천달러를 갖고 있었다.
망명 쿠바인들이 저지른 ‘3류 주거침입’ 또는 ‘절도사건’(그들 중 4명이 쿠바 출신자였다)쯤으로 치부되던, ‘별 볼 일 없어 보이던’ 그 사건은 불과 2년 뒤 대통령의 치욕스런 하야라는 미국 역사상 초유의 대사건으로 번져간다. 법무장관과 백악관 비서실장, 백악관 고문, 국내 수석고문 등 한때 기세등등했던 권력실세들 40여 명이 감방으로 갔다. 그 사건은 미국 사회와 역사를 바꿨고 미국과 세계 언론의 존재양식도 바꿨다. 최근 반동적 역류로 어지럽지만, 한국 저널리즘이 고난을 무릅쓰고 줄기차게 도달하려 애써온 이상향도 상당 부분 워터게이트 사건을 통해 쟁취한 미국 언론의 성과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73년 4월 말 당시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보좌관을 통해 의 워터게이트 사건 담당기자 밥 우드워드를 협박했다. “그 망할 애송이 녀석들 좀 조심하라고 해.” ‘녀석들’은 당시 30살의 우드워드와 그의 29살 취재 단짝 칼 번스틴. 하지만 이미 닉슨의 패색이 짙어지고 있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정부는 자신만만해 보였다. 닉슨 재선운동본부 책임자를 지낸 전 법무장관 존 미첼은 자신의 비리에 관한 폭로기사가 나간다는 사실을 알고는 전화로 번스틴을 협박했다. “만약 그 기사가 진짜로 나가게 되면 캐서린 그레이엄(워싱턴포스트 사주)의 젖꼭지를 거대한 압착기계로 비틀어 짜버릴 줄 알아.” 로널드 지글러 백악관 대변인은 보도내용을 모조리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했다. 1973년 초 워싱턴포스트 주가는 주당 38달러에서 21달러로 폭락했다. 정부가 이 신문사 소유 텔레비전 방송국 두 곳의 재인가 문제를 걸고넘어졌기 때문이다. 1973년 9월15일 녹음된 닉슨의 발언은 이를 예고했다. “가장 중요한 건 워싱턴포스트가 이번 일로 정말 지옥 같은, 지독한 고생을 하게 될 거라는 점이지. 그 회사는 텔레비전 방송국들을 소유하고 있으니까. 정부로부터 허가를 갱신받아야 해. 앞으로 엄청나게 험악한 싸움이 벌어지게 될걸.” 하지만 불과 얼마 뒤 지옥에 떨어진 건 닉슨 자신이었다.
1972년 닉선의 대선 재선이 확실한 상황에서 대다수 언론들은 침묵했다. 와 등 초기에 경쟁했던 일부 신문들마저 워터게이트에 눈감았다. 우드워드에 따르면, “관청 쪽 배포기사에 대한 더러운 애착을 지닌 포로들”, “겉으로만 센 척”하고 “정부 보도자료를 그대로 옮겨적기나 하는 약아빠진 속기사”였던 백악관 출입 고참기자들은 백악관을 화나게 하면 돈과 명예가 보장되던 백악관 출입기자 자리를 잃을까 걱정했고, 의 새파란 전담 신참기자들(우드워드는 사건 발생 당시 입사 9개월, 번스틴은 11년차였다)을 깔봤다. 백악관 출입 정치부 기자가 아니라 사회부 수도권 담당 기자였던 우드워드와 번스틴은 기성 제약들에서 해방돼 있었다. 그 ‘애송이들’이 잠복근무와 관계자 야간취재 등 오늘날 ‘탐사보도’의 핵심기법으로 알려진 집요하고 저돌적인 취재방식을 미국 언론사상 그때 처음 도입했다. 사주와 편집인, 데스크가 똘똘 뭉친 는 외로웠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1971년 6월 베트남전쟁 확전 주범이 미국이라는 사실을 폭로한 ‘펜타곤 페이퍼’ 보도와 더불어 그때가 미국 언론으로서는 권력을 견제하는 ‘제4부’로서의 존재감이 가장 선명했던 전성기였다. 결국 닉슨은 2기 임기 절반도 못 채운 채 1974년 8월 9일 사임했다. 워터게이트 사건 자체의 전체 윤곽은 여러 사건을 두루 다룬 (프레시안북 펴냄)에도 간결하게 잘 요약돼 있다.
한승동 한겨레 선임기자 sdhan@hani.co.kr
* 2009년 4월11일치에 실린 글입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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