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맥스 지음, 강병철 옮김, 김영사 펴냄, 1만6500원
영국에서 소들이 광우병(BSE·소 스펀지모양 뇌증)으로 쓰러지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후반이다. 이후 10여 년 동안 20세기 최대의 식품공포가 세계를 휩쓸었다. 마거릿 대처 당시 총리는 영국이 그 분야 최고 과학자들을 확보하고 있다며 국민들을 안심시켰으나 거짓말이었다. 정부는 19세기 초 양들을 무더기로 쓰러뜨렸던 ‘스크래피’일 것으로 추정하고 이미 프리온 항체까지 개발한 외국의 앞선 연구들을 무시했다. 1990년에 고양이가 스펀지모양 뇌증으로 죽은 사실이 확인되자 광우병이 종의 벽을 뛰어넘는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소비자들은 영국산 쇠고기를 외면했다. 정부와 육우업자들은 그때까지도 딴전을 피웠다. 존 거머 농수산식품부 장관이 자신의 네 살배기 딸과 텔레비전에 함께 출연해 햄버거를 먹는 깜짝쇼까지 펼쳤다.
영국에서 모든 동물사료에 동물 단백질 사용을 금하는 법은 1996년에야 발효됐다. 1993년 초 “비프버거를 달고 살았던” 16살 소녀 빅토리아 리머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광우병 걸린 소가 휘청거리듯” 걷는 병에 걸렸다는 기사가 신문에 났다. 모두들 산발성 CJD(크로이츠펠트 야코프병)라고 했으나 정부의 반응은 여전히 기만적이었다. 대처 후임으로 총리가 된 존 메이저는 비탄에 젖은 어머니에게 직접 편지를 썼다. “사람은 ‘절대로’ 광우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이 엉터리 광우병 대책은 1997년 메이저의 실각에 한몫했다. 대중은 1100만 마리에 이르는 모든 영국소의 살처분을 원했고, 결국 수십억 파운드를 들여 30개월 이상 된 소 330만 마리를 죽였다. 4천여 명의 영국인들이 프리온에 감염된 것으로 조사됐으며 그 가운데 150명이 인간광우병으로 숨졌다.
그 자신이 변형 단백질로 비롯된 질병을 앓고 있는 미국인 과학 저널리스트 대니얼 맥스의 는 미국 농무부 역시 영국 정부와 하등 다를 바 없음을 보여준다. 1990년대 중·후반까지 소와 양의 사체를 소 사료로 쓰도록 허용했던 미국 정부는 쇠고기 수출시장을 안심시키려 광우병 검사를 시작했으나 대상은 연간 도축되는 3500만 마리 가운데, 1천 마리당 1마리꼴이었다. 그것도 주저앉는 소(다우너)에 초점을 맞췄다.(영국은 그래도 처음부터 다우너의 식용 판매를 아예 금지했다.) 2003년 12월 워싱턴주 소들 가운데 다우너 한 마리가 광우병 검사 양성반응을 나타내자 최대 수입국인 일본이 당장 미국산 쇠고기 수입금지 조처를 내렸고 40여 나라들이 뒤를 따랐다. 당시 미국 농무부 장관 앤 베너먼은 검사 대상 소를 10배로 늘리겠다며(그래봤자 100마리당 1마리다) “우리는 국민들이 … 식습관을 바꾸거나 다른 조처를 취할 필요 없이 그저 즐겁고 건강하게 연휴를 즐기면 된다고 본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농무부는 자국 육가공업체들이 일본 소비자를 만족시키려고 모든 소를 검사하겠다고 발표하자 오히려 못하도록 막았다. 그나마 미국 거대 육가공업체들은 일본 못잖은 소비자인 한국은 고려 대상에 넣지도 않았다. 그 뒤 ‘알아서 기는 나라’ 한국과 벌인 쇠고기 협상 결과를 보건대 그들은 현명했다.
는 제목 그대로 ‘살인단백질’, 곧 광우병의 원인물질인 프리온의 출현과 그것을 규명해내려는 인간들의 노력을 구체적인 역사와 사건들을 통해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기법의 책이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기둥 줄거리는 200여년 전인 18세기 중엽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살던 유대인 의사가 첫 발병자인 ‘치명적 가족성 불면증’(FFI)과 지금까지 이어지는 ‘가문의 저주’다. 원제가 ‘잠들지 못하는 가문: 의학 미스터리’다. 여기에 19세기 영국 양들을 무더기로 쓰러뜨린 ‘스크래피’, 웃다가 죽는 병으로 잘못 알려진 파푸아뉴기니 오지의 괴질 ‘쿠루’, 그리고 광우병의 역사가 날줄로 엮인다. 이들 질병의 공통점은 바로 프리온이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른 인간 행동이 낳은 괴물이지만 여전히 정체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그 프리온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한승동 한겨레 선임기자 sdhan@hani.co.kr
* 2008년 6월14일치에 실렸던 글입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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