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식 지음, 박소현 옮김, 돌베개 펴냄, 1만6천원
그전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그야말로 전혀 개념이 다른 미술 에세이집으로 미술과 미의식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뒤흔들며 1990년대 초 베스트셀러가 됐던 재일동포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의 . 그 10여년 뒤 이 번역·출간됐고, 이번에 그의 세 번째 미술 에세이집 이 나왔다. 앞의 두 권은 일본에서 출판되고 나중에 한국어로 출간됐으나, 은 한국 쪽에 먼저 단행본으로 묶여 나왔다. 차이는 그것만이 아니다. 더 두텁게 쌓인 연륜이 더 날카롭게 벼린 최근작일 뿐만 아니라, 2006년 4월부터 2년간 서울에 머문 그의 난생 첫 장기 한국 체험이 새롭게 부가한 문제의식을 짙게 반영한 편집이라는 점에서도 분명 다르다.
바로 그 한국 체험을 토대로 그가 던진 화두는 이것이다. “왜 내가 본 모든 한국 근대미술 작품은 그렇게도 예쁘게 마감되어 있는 것일까?” 실은 이 도발적인 의문이 오토 딕스 등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을 주로 다룬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을 집약하고 있다.
서 교수에게 ‘미의식’이란 예쁜 것,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의식이 아니라 “무엇을 미라고 하고 무엇을 추라고 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의식”이다. 따라서 무언가 예쁘거나 아름답다고 느꼈을 때는 그걸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왜 그렇게 느끼는지, 그렇게 느껴도 좋은지 되물어봐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미의식은 실은 역사적·사회적으로 만들어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미술도 인간의 일인 이상 그 삶이 고뇌로 가득할 때에는 그 고뇌가 미술에 투영돼야 마땅하다. “추한 현실 속에서 발버둥치는 인간이 창작하는 미술은 추한 것이 당연하다. 조선 민족이 살아온 근대는 결코 ‘예쁜’ 것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지금도 우리의 삶은 예쁘지 않다.” 그런데 “지나치게 예쁘기만 한” 한국 근대미술은 ‘지루하다’고 그는 얘기한다.
위대한 화가들로 그가 꼽는 사람들, 곧 뒤러, 그뤼네발트, 카라바조, 고야, 렘브란트, 피카소, 그리고 이번 책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딕스, 펠릭스 누스바움, 에밀 놀데,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프랜시스 베이컨, 빈센트 반 고흐 등은 결코 그들 작품이 예뻐서 감동을 주는 게 아니다. 이 거장들은 “진실이 아무리 추하더라도 철저하게 그 현실을 직시해서 그리려 했고”, 그게 바로 감동의 원천이며, “거기에서 ‘추’가 ‘미’로 승화하는 예술적 순간이 생긴다”는 게 서 교수 지론이다.
왜 한국 근현대 미술은 지루한가? 그건 실제 삶과 유리돼 있고, 뒤틀린 현실의 본질을 드러내려는 목숨 건 대결의식도 없기 때문이다. 민중미술 계열의 일부는 예외적이라 했으나, 그것마저 거의 고사 단계란다.
애초 이런 문제의식이 겨냥한 대상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1990년대의 전세계적인 기억의 싸움 속에서 패배하고 있는 사회” “예술과 싸움이 무관한 사회”라는 말에서도 드러나듯 서 교수는 군국 일본의 참혹한 범죄행위에 침묵했을 뿐 아니라 공범자로 가담한 일본 근현대 미술이 과거 기억을 말살하고 날조하는 전후 일본 국가의 무반성과 파렴치에 편승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서 교수는 자신에겐 ‘금단의 땅’이었던 군사독재하의 처참한 한국 현실이 일본에선 불가능했던 치열한 미의식과 미술운동, 말하자면 “식민지배와 남북분단, 그리고 군사정권이라는 역사를 겪어온 조선 민족에게 그 역사들과 길항하는 미술”을 창출했을 것으로 상상한 듯하다. 그는 그 가능성을 줄기찬 서양미술 순례를 통해 확인하고 꿈꾸어왔다. 하지만 2년간 실제 겪어본 조국의 미술은 그렇지 못했다. ‘성공한’ 근대 때문에 근대의 미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과는 다른 길을 걸어온 한국, 바로 그 일본한테서 ‘실패’를 강요당한 한국 현대미술이 근대의 수입 통로였던 일본의 한계를 복제하고 여전히 답습하고 있는 현실이 그에겐 더욱 절망적으로 비쳤을지 모른다. 그게 애초 일본 사회를 겨냥했던 이 책을 한국에서 먼저 묶어내는 이유다.
한승동 한겨레 선임기자 sdhan@hani.co.kr
* 2009년 6월6일치에 실렸던 글입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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