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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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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그 우아한 밥벌이의 꿈

여유·낭만이 있는 문화적 공간 꿈꾸며 창업 시도하지만 고된 업무와 적자 누적으로 포기하는 경우도
등록 2009-05-21 05:22 수정 2020-05-02 19:25

“나이 먹기 전에 저질러야 한다. 현실감 없이 나이 든 후에 한다면 로망은 변질되어 노망이 된다.”( 중에서)
문화적 냄새가 풍기는 카페는 ‘우아한 밥벌이’의 이상향처럼 보인다. 직장생활이 무르익다 못해 지긋지긋해진 30대 직장 여성들(또는 남성들도)이 떠올리는 가장 만만하고 또 해보고픈 창업 아이템이기도 하다. 지금도 ‘로망이 노망으로’ 변질되는 걸 보지 않으려는 이들이 카페 창업을 향해 불나방처럼 뛰어든다. 젊음의 거리가 있는 상권은 카페 창업자들로 이미 포화 상태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카페 ‘가로수 맨숀’ 내부 모습. 인테리어 사무실을 겸하고 있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카페 ‘가로수 맨숀’ 내부 모습. 인테리어 사무실을 겸하고 있다.

그렇게 모여든 불나방들의 최후는? 물 위에서 우아하게 헤엄치지만 물 밑에선 발을 빠르게 놀려야 하는 백조로의 변신이다. 낭만적인 공간은 밥벌이를 위한 전쟁터가 되었고, 평화로울 것 같은 일상에서는 여유와 낭만을 찾기 어려워졌다. 우아한 밥벌이로 알고 카페 창업에 뛰어들었던 이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말한다. “미안하다, 착각했다.”

영화 등의 미술을 맡았던 최근우 미술감독은 결혼을 하면서 아내와 함께 카페 창업에 나섰다. “커피나 와인을 좋아하기도 하고, 영화인들의 고급 사교모임 장소로 쓰면 좋을 것 같아서”였다. 그의 상상 속 카페의 낮과 밤은 풍요롭기 짝이 없었다. 낮에는 영화감독들이 찾아와 글을 쓰고, 밤에는 영화인들이 어울려 왁자지껄 와인을 즐겼다. 전 재산을 ‘올인’하다시피 해 서울 홍익대 앞 주차장길 끝 상가의 카페를 인수했다. 2층에 자리한 19평대 카페 이름은 ‘은하항공 여행사’. 그룹 델리스파이스의 팬클럽 이름이기도 해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 종종 찾았던 카페를 권리금을 주고 이름까지 그대로 인수했다. 미술감독이란 직업 덕분에 인테리어 비용은 절약할 수 있었다.

창업 준비 기간은 3개월. 공부의 나날이었다. 그는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아내는 소믈리에 공부를 했다. 창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법과 세무 상식에 대한 무지였다. ‘눈 깜짝할 새에 코 베어간다’고 전 재산을 걸어 창업했는데 보증금을 떼이는 등의 불상사가 생길까봐 상가임대차계약 같은 각종 관련 법규를 보름 동안 들여다봤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손익분기점 넘어야 행복하더라”

카페를 연 뒤에는 ‘고생 끝 행복 시작’일 줄 알았다. 기존 카페를 인수한 터라 매출은 기대하는 만큼은 아니어도 선방은 해줬다. 하지만 일희일비하는 날들이 펼쳐졌다. 장사가 안 되는 날은 왜 오늘 매출이 떨어졌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이 열릴 때는 TV가 있는 술집으로 뺏긴 손님들 때문에 울상을 지었다. 카페라는 장소에 품었던 기대와 로망은 흐릿해졌다. “가게를 낸 이상 손익분기점을 넘어야 행복했다”는 게 그의 수줍은 고백이다.

카페는 ‘우아한 밥벌이’의 이상향처럼 보인다. 하지만 카페 창업부터 운영까지 과정을 살피면 착각이었음을 금세 알 수 있다. 서울 홍익대 부근의 ‘잇 카페’로 떠오르고 있는 ‘제이스 레시피’.

카페는 ‘우아한 밥벌이’의 이상향처럼 보인다. 하지만 카페 창업부터 운영까지 과정을 살피면 착각이었음을 금세 알 수 있다. 서울 홍익대 부근의 ‘잇 카페’로 떠오르고 있는 ‘제이스 레시피’.

카페 겸 레스토랑 운영이 꿈이었던 젊은 요리사는 꿈을 이뤘다. 그런데도 아직 얼떨떨하다. 기쁘기보다 피곤함이 더 크다. 그리고 걱정이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영국에서 파티시에 공부를 하고 온 전찬극씨는 홍익대 앞에 ‘제이스 레시피’를 두 달 전에 열었다. 2층짜리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카페는 중학교 때부터 품었던 그의 오랜 꿈이다. 인천에서도 카페와 레스토랑을 잠깐 운영했던 그는 “그때는 원하는 요리를 할 수 없어 재미없었다”고 했다.

상권을 바꿔 다시 카페를 차렸지만 어려움은 여전히 남아 있다. 손님들의 반응을 예측할 수 없어서다. 한번은 소금이 일절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두고 짜다며 불만을 얘기하는 손님 때문에 4번이나 다시 만든 적도 있다. 6억원 가까운 돈을 들여 오픈한 카페는 첫 달의 적자가 1500만원이었다. 고무적이라면 두 번째 달에 적자가 600만원으로 줄었다는 것. 매출에 대한 고민이 있을 법한데 그는 “돈을 벌려 했으면 국밥집을 차렸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외국인 손님들과 단골들이 조금씩 늘고 있어 희망이 있다”며 힘주어 말한 그는 다시 음식을 만들기 위해 주방으로 사라졌다.

5년 비서일 그만둔 뒤 창업

다람쥐 쳇바퀴 돌듯 변함없는 일상이 지루해 카페로 일상탈출을 꾀한 이들도 있다. 5년간 비서일을 하던 오유진씨는 회사 생활이 답답했다. 그래서 소심한 창업으로 숍인숍 형태의 2평 남짓한 테이크아웃 전문 커피숍을 서울 경복궁역 앞에 차렸다. 망해도 경험으로 생각할 만한 투자였다. 역 앞이고 유동인구가 많아 장사는 생각보다 잘됐다. 회사에서 일할 때는 아르바이트생이, 퇴근 뒤에는 그가 맡았다.

그러다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커피숍에만 매달렸다. 월매출이 400만원. 소자본 창업치고 매출이 높았다. 하지만 바깥에 노출된 테이크아웃 커피숍은 겨울에 너무 추웠다. 수도도 얼고, 커피 머신도 수시로 작동을 멈췄다. 8개월 만에 매장을 내자고 결심했다. 집과 가까운 효자동에 터를 잡고 ‘에이프릴 샤워’를 오픈했다. 2평 남짓한 가게를 12평으로 넓혔더니 챙겨야 할 일이 많았다. 옷가게였던 곳을 카페로 꾸미느라 용도변경, 전기증설 작업 등 해야 할 일도, 쫓아다녀야 할 관공서도 많았다. 아르바이트생 없이 혼자 하려니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외롭기도 했다. 차린 지 한달. “막상 차려놓으니 장사가 잘될지 불안하다”는 그는 “무식해서 저지를 수 있었는데 한편으론 회사 다닐 때가 그립기도 하다”고 말했다.

카페, 그 우아한 밥벌이의 꿈

카페, 그 우아한 밥벌이의 꿈

사진작가인 강영의씨도 생계 수단으로 카페를 차렸다. 그도 카페를 운영하는 게 회사 다니는 것보다 자유로울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창업 준비 두 달 만에 홍익대 앞 상가를 임대해 갤러리 카페 ‘언두’를 열었다. 하지만 최근 3년이란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카페 문을 닫았다. 이유는 “시간과 에너지를 너무 많이 뺏겨서”였다. 그리고 카페는 직장 다니는 것보다 많은 수익을 안겨주진 못했다.

카페에 대한 로망이 없다면 카페 운영은 쉬울까? 그들에게도 카페는 아이처럼 관심을 갖고 돌봐야 할 대상이다. 기대 없이 열어 후회는 없지만, 잘해보려고 하니 한도 끝도 없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뒤쪽에 ‘가로수 맨숀’이란 인테리어 회사 겸 카페가 있다.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 주혜준, 인테리어 디자이너 추신환 등 동료 4명이 함께 만든 공간이다. 이들이 카페까지 낸 건 손님들의 착각 때문이었다. 소품숍을 겸한 인테리어 사무실을 카페인 줄 알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그냥 카페나 차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40평대 작업실에서 카페가 차지하는 영역은 15평. 손님들은 레트로풍으로 꾸며진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이들은 벽이 나눠진 각자의 사무실에서 일을 했다. 카페 운영은 매니저와 아르바이트생에게 맡겼다. 카페를 오픈한 지 벌써 4년째. 지금은 체계가 잡히면서 손 탈 일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초반엔 신경쓸 일이 많았다. 건물 미관을 해친다고 간판도 못 달게 하는 건물주인과 다투기도 하고, 아르바이트생 관리 때문에 골치를 썩기도 했다. 주차장이 없는데 발레파킹(대리 주차)을 요구하는 손님들은 지금도 여전히 문제다. 추신환씨는 “카페를 운영하면서 세상과 타협해야 할 일들이 참 많더라”며 웃었다.

카페는 아이처럼 관심 갖고 돌볼 대상
카페, 그 우아한 밥벌이의 꿈

카페, 그 우아한 밥벌이의 꿈

카페 문을 연 지 한 달 된 사장부터 4년차 베테랑 사장까지 입을 모아 하는 말은 “카페 창업에 대한 로망은 욕망과 부딪친다”는 것이다. 일단 돈을 들여 카페를 열게 되면 손익을 맞추기 위한 셈을 안 할 수 없고, 밥벌이로 전락하면 비루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고 했다. 강영의씨는 “좋아하는 것도 일이 되면 즐길 수 없듯이 카페 운영은 낭만적인 일이 아니다”면서 “창업 이전처럼 커피와 카페를 즐기는 소시민으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란 카페 창업기를 낸 조한웅씨도 1년 반 만에 홍익대 앞에 열었던 카페 ‘리앤키키봉’을 접었다. 프리랜서 카피라이터인 그는 “카페 창업을 폼나는 부업으로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카페에 매여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더 이상 낭만을 찾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래도 이들은 “하고 싶다면 젊을 때 부딪쳐보라”고 권한다. 힘들지만 카페는 여전히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그들도 또 다른 카페를 꿈 꾸고 있다고 했다. “집, 놀이터, 휴식처 같은 카페”는 우아한 밥벌이란 착각이 영원히 깨지지 않았으면 하는 공간이다.

글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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