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요즘 가장 잘나가는 아이돌 그룹 빅뱅의 멤버 지드래곤의 음악성이 누리꾼들의 입길에 오른 일이 있었다. 논란의 핵심은 등 빅뱅의 히트곡 대부분을 공동 작곡한 것으로 돼 있는 지드래곤이 실제로 얼마나 작곡에 참여했는지 의심스럽다는 것이었는데, 몇몇 누리꾼들은 ‘지드래곤이 공동 작곡자 명단에 이름만 올린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논란이 확대되면서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사장이 직접 공식적인 입장 표명에 나서는 상황까지 벌어졌는데, 해명 내용을 요약하자면 “지드래곤이 편곡 작업에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멜로디와 가사와 랩은 모두 지드래곤이 만든 것이 맞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빅뱅의 를 들으면 나오는 뿅뿅거리는 효과음과 드럼 소리, 질감 있는 베이스의 진행은 요즘 가요 차트를 도배하다시피 하는 작곡가 ‘용감한형제’가 만든 것이지만, ‘아이 돈트 워너 비 위드아웃 유 걸’(I don’t wanna be without you girl)로 시작하는 멜로디와 랩은 모두 지드래곤이 만든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해명이 나온 뒤에도 ‘그럼 작곡가가 다 만들어준 반주에 멜로디만 흥얼거려 만든 걸 작곡이라고 볼 수 있냐’는 식의 반론(?)이 제기됐지만, 정확히 말해 작곡은 멜로디를 만드는 것인 만큼 반주를 만들지 않았다고 해서 그걸 작곡이 아니라고 하기는 어렵다. 편곡과 사운드의 비중이 큰 댄스음악의 특성상 지드래곤이 작업 과정 전반을 주도했다고 보기는 어려울지언정, 멜로디를 만들었다면 그가 작곡자로 이름을 올리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이런 식의 ‘분업형’ 곡 작업은 YG엔터테인먼트뿐만 아니라 흑인음악을 만드는 동네에서는 꽤나 흔한 방식이기도 하다. 작곡자가 멜로디를 비롯해 곡의 뼈대를 만들면, 사운드를 버무려 배치하는 데 능숙한 편곡자나 프로듀서가 적절히 악기를 편성하고 프레이즈를 만드는 식으로 살을 붙여 하나의 곡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곡을 만들면, 악보를 읽지 못하고 악기를 다루지 못해도 ‘직관’으로 작곡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로 미국의 유명 뮤지션들 중에는 화성법의 기본도 모르면서 소름 끼치게 감각적인 음악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지드래곤이 화성법을 모를 거란 얘길 하는 건 아니다). 자신의 음반 수록곡 상당수를 작곡하는 머라이어 캐리도 초창기에는 그랬다고 한다. 음악이 수학과 다른 건 직관이 그토록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 아닐까. 빅뱅 특유의 찰싹 감겨드는 멜로디를 만들어낸 지드래곤을 꽤나 감각적인 작곡자로 평가하는 데 나는 이의가 없다.
‘음악성까지 갖춘 아이돌’의 전범처럼 여겨지는 서태지와 듀스, 노이즈와 언타이틀. 이들 이후로 나온 숱한 아이돌 스타들 가운데 자체적으로 곡 쓰기를 시도한 경우는 적지 않았다. 하지만 열 중 아홉은 ‘우리는 작곡도 한다’는 사실 자체를 내세우기 위해 부실한 자작곡 몇 개를 구색 맞추기 식으로 음반에 끼워넣는 수준 이상이 아니었고, 이들도 정작 타이틀곡은 가장 잘나가는 작곡가의 손에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학예회에서 장기자랑을 하듯 멤버들의 자작곡을 모아 일관성 없이 난삽한 음반을 만드는 경우는 정말이지 최악이다(언젠가 아이돌 스타 아무개가 나로서는 엄두도 못 낼 고가의 악기를 구멍가게에서 사탕 사듯 사가는 광경을 목격한 뒤로 아이돌의 자작곡에 반감이 있는 편이긴 하다).
어쨌든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을 만든 빅뱅의 송라이터 지드래곤이 그간 보여준 활약상은 충분히 평가할 만한 것이었던 만큼, 조만간 발매되는 솔로 앨범에서 세간의 오해를 불식시킬 강력한 무기들을 많이 보여주길 바랄 뿐이다. 듣자 하니 이번 논란 때문인지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 혼자 유럽 여행을 떠났다던데… 부럽다. 쩝.
정민영 기자 한겨레 사회교육팀 min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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