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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강마에와 사랑에 빠졌어요”

‘마우스필’의 해체를 애도하며 <베토벤 바이러스>의 홍진아·홍자람 작가를 만나다
등록 2008-11-13 09:10 수정 2020-05-02 19:25

11월6일 일산 문화방송 드림홀에서는 한 이름 없는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있었다. ‘마우스필’이라고 했다. 30년 활에서 손을 뗀 ‘똥덩어리’와 카바레 연주자와 종양으로 귀가 멀어져가는 암환자와 25살이 되어서야 천재성을 발견한 전직 경찰이 연주한다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들 앞에 인순이가 나서 노래를 불렀다. 제목은 . 킹 목사 이후에, 오바마 이전에 인순이의 것으로 여겨졌던 말, “난 꿈이 있어요”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노래다. 그리고 이 마우스필 ‘똥덩어리들’의 노래다. 이것을 끝으로 마우스필은 해체를 한다.
(문화방송, 수·목 밤 9시55분)가 11월12일 18회로 끝난다. 는 대작 (한국방송)와 기대작 (SBS) 두 바람을 잠재우고는 바이러스성 질병을 유포했다. 전국에 마침 독감이 돌았다. 뒤뚱거리는 ‘덕’의 꿈에 시청자가 열광했다. 인기 드라마의 ‘운명’, 팡파르 속에 이별이 2주 연기되긴 했다. 한 부는 아랍에미리트와의 축구 경기로 결방되고, 13일에는 ‘스페셜편’이 편성돼 있으니 결과적으로는 2회 더 늘었다. 을 연주하는 마우스필의 공연은 18회 중반을 장식할 예정이다.

홍진아(왼쪽)씨는 낙천적이고 홍자람씨는 염세적이라고 한다. 언니는 번뜩이는 구성력을 가졌고 동생은 부감으로 보는 눈을 가졌다. 두 작가가 집필실에서 PD가 요구한 수정 사항을 의논하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홍진아(왼쪽)씨는 낙천적이고 홍자람씨는 염세적이라고 한다. 언니는 번뜩이는 구성력을 가졌고 동생은 부감으로 보는 눈을 가졌다. 두 작가가 집필실에서 PD가 요구한 수정 사항을 의논하고 있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홍진아(41)·홍자람(38) 자매를 공연 전날 만났다. 인터뷰는 저녁에 촬영 예정인 17회 수정을 해야 하는, 밥 먹을 짬도 없는 ‘바쁜 시간’을 비집고 이루어졌다. 시간을 밤톨같이 써야 하기에 전날 인터뷰 질문지를 보냈더니, 묵언 수행을 끝내고 터진 방언처럼 긴 답변이 왔다. 실제 대면한 작가들 역시 웃고 맞장구치고 떠들썩하고 유쾌했다. “대본만 쓰다 보니 수다에 굶주렸나 봅니다.” 답변 편지 역시 대본 집필 때처럼 홍진아씨가 초고를 마련하고 홍자람씨가 덧붙이고 홍진아씨가 정리해 보냈다. 홍자람씨는 “이번 작품은 거의 언니의 작품”이라며 편지에 답을 하거나 인터뷰를 할 때 극도로 사양했다. 둘의 성격이 많이 다르다고 하는데, 인터뷰 질문과 답변은 드라마 극본처럼 뭉뚱그려 적었다.

-‘클래식 드라마’라는 용감한 결정을 했다.

=클래식을 ‘테마’가 아니라 소재로 삼았다. 하고 싶은 얘기가 먼저 있었고, 구도를 잡았고, 등장인물을 잡았다. 이걸 한 그릇에 모두 담아서 버무려야 하는데 어떤 그릇이 좋을까. 우주인 선발대회라는 그릇도 나왔고 야구, 일반 회사 등 별별 그릇이 등장했다. 그러다 오케스트라를 떠올렸다. 여러 사람들의 사는 얘기고, 그들이 부딪히면서 이뤄가는 뭔가, 오케스트라가 가장 적합했다. 더 적합한 게 있었다면 주저 없이 다른 그릇을 택했을 거다. ‘용감’이라는 건 시청률 때문인가. 잘 나올 거라고도 생각 안 했지만 클래식이라서 걸림돌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을 보면, 나조차도 클래식을 들으면 좋다. 다만 가까이하기 너무 먼 존재인데,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저 먼 곳에 있는 클래식을 어떻게 가깝게 그리느냐였다.

‘용감’이란 건 때문도 있다. 방영 전 ‘클래식’이라는 소재만으로 ‘의심스러운’ 눈초리가 겨눠졌다. 제작진은 소재를 결정한 뒤 “앗, 노다메” 하고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고는 이 드라마를 5번 정도 보았다. 완전히 숙지해서 피해가기 위해서였다. 외전도 보고 노다메 원작 만화까지 구해 봤다. “실제로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장면인데도 그쪽에서 먼저 나왔서 버린 에피소드도 많다.” 예를 들어 초보 연주자들이 지휘를 보지 않는 것에 대한 에피소드는, 인턴이 정맥주사를 놓으려고 잡으면서 힘들어하는 에피소드처럼 보편적이지만 집어넣지 않았다. 음악도 피하려고 했다. 에 나온 곡 목록을 뽑아놓고 선곡할 때마다 피해갔다. 딱 하나 겹치는 건 이다. 이 곡은 외전에서 치아키 지휘콩쿠르 몽타주 장면에서 몇 초 나온단다.

-클래식에 원래 관심이 많았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전 취재를 많이 했겠다.

=원래 클래식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보통 사람들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다만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들을 칠 정도는 되니까 악보나 악상, 클래식 용어들에 대해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정도? 직접 연주하는 음악이 얼마나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를 느끼고 있다는 정도? 대본 쓰면서도 막히면 피아노를 쳤다. 스트레스 풀기에는 정말 최고다. 취재는 두어 달 열심히 했다. 한 달 정도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연습 장면을 보고, 서희태 선생님(음악감독)과 단원들을 만나 얘기를 듣고 보는 ‘실루엣 취재’였다. 이후에는 서적과 음악을 들고팠다. 그리고 여주인공 설정이 바이올린 연주자라, 바이올린 강습을 받았다. 그러면서 같이 잡기 시작한 기획, 시놉시스 등에 필요한 것들은 끊임없이 메모를 해나갔다. 그게 쌓여 전체를 구성하는 에피소드들이 됐다. 그때 발견한 것들이 (클래식 곡은 아니지만 음악의 진정성을 영화 에서의 장면 하나로 보여주기엔 가장 좋았다), , 스메타나의 중 4악장(루미 귀 관련), 타악기 연주자 이블린 글레니 같은 얘기들이다. 훨씬 더 재미있는 게 많았지만 드라마에 맞지 않아 못 써먹었다. 하지만 꼭 짚고 넘어갈 게, 이 드라마를 하는 이유는 ‘클래식’이란 소재를 통해 ‘인간의 보편성’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도 그랬다. 에 있는 네 명의 선수들을 통해 그들만이 겪는 특수한 얘기가 아니라, 옆집 형이나 내가 겪을 수 있는 평범한 고민을 끄집어내려고 했다. 그게 아니라면 안다리 기술을 어떻게 습득하고 완성해내느냐만 가지고 세 편이 나올 수도 있었을 거다.

이 드라마는 전문직 드라마가 아니다. 감독님과 같이 잡았던 원칙도 있다. 스토리상, 드라마의 표현상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오케스트라, 클래식이라는 리얼리티에 비춰볼 때 부딪히는 부분이 있다. 그럴 땐 스토리, 드라마의 표현을 따르자는 것이다. 10회 에서 갑자기 합창단이 쏟아져나오는 장면이 바로 그렇다. 원곡에서 성악 파트는 중간에 남자 솔로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쏟아져나오면서 갑자기 전체 합창이 터진다는 건 편곡을 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일부 시청자가 말도 안 되는 장면이라고 말하는 게 맞다. 그렇지만 원곡처럼 남자 솔로부터 가면 그 장면의 감동은 반감됐을 거다. 반감 정도가 아니라 전혀 없었을 거다.

드라마가 방영된 뒤에는 얘기는 쑥 들어갔다. 음대의 ‘전문가’와 ‘핸디캡도 가벼운 똥덩어리’라는 설정부터가 판이했다. 무엇보다 큰 차별성은 톡톡 튀는 캐릭터의 탄생이다. 궁상 떠는 인생들은 실패만 하다가 매달릴 하나를 찾았다. 이들은 마조히스트임이 분명하다. 넘었다 싶으면 막아서는 벽을 웃으면서 넘는다. 그리고 한 명의 사디스트가 있다. 한국 드라마 사상 가장 악질, 독종, 철면피, 안하무인, 콤플렉스 덩어리, 고집불통. 누구와 마주하든 3초 만에 얼굴을 붉히게 하는 재주를 지녔고, 심한 말을 했으면 ‘아차’ 하는 대신 더 심한 말을 한다. 그리고 시청자는 마조히스트임이 분명하다. 그런 그를 사랑했다. 배우 김명민은 눈썹을 밀고 파마를 하고 목소리를 바꿨다. 그렇게 탄생한 강마에는 오른팔을 접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먼지 한 가닥 묻지 않게 걷는다.

<베토벤 바이러스>

<베토벤 바이러스>

-강마에, 김명민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에 이어서 연기의 ‘마에스트로’에 올랐다는 평이다. 강마에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낼 때와 이후 연기를 보면서 어땠는지.

=처음부터 김명민씨를 염두에 뒀다. 이재규 감독이 김명민씨 캐스팅됐다면서 ‘야호~!’ 문자를 보냈고, 나도 방에서 ‘야호~!’ 하며 방방 뛰었다. 김명민씨와 저는 아직껏 일면식도 없다. 대본 쓰느라 바쁘기도 했고, 감독님을 믿고 맡기기도 했다(홍 자매는 촬영장은 물론이고 외출도 거의 못했다). 어느 날 거실에서 커피를 타고 있었는데, 웬 목소리 하나가 귀에 와 꽂혔다. 어, 저건 강마에 목소린데 하고 뒤돌아보니, 내가 대본 속에 써놨던, 분명히 내 마음속에만 있었던 강마에가 떡하니 TV에 나와 있었다. 그때 드라마 예고로 본 게 강마에로 변신한 김명민씨와의 첫 대면이었다. 이제껏 십 몇 년간 드라마를 하면서 그렇게 첫 등장부터 내 느낌과 일체감을 보인 캐릭터와 연기자는 처음이었다. 꼭 김명민씨가 우리 맘속에 들어와서 샅샅이 다 뒤져보고 나간 거 같았다. 그렇지 아니고서야 어떻게 우리 강마에와 똑같을 수 있겠나.

그 뒤 몇 편의 드라마에서 강마에 연기를 모니터하고 나서는, 김명민씨 지문 쓰는 방식도 바꿨다. 원래 지문을 행동지문과 심리지문을 같이 쓰는 스타일인데, 김명민씨 관련 지문에서는 행동지문을 필요한 것만 남기고 다 없애고 심리지문을 강화했다. 본인의 느낌대로 맘껏 놀게, 펼치게 하고 싶었다. “이 장면에서 이러저러한 심리이니 맘껏 본인의 역량을 발휘해주세요”라는 거였다. 그게 작가가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응원이었다.

-강마에의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어내게 됐나. 독선과 아집의 인물로 보이지만, 사실은 순정만화의 전형적인 주인공형으로 보인다. 모르는 척하면서 감싸주고 모든 것을 다 아는.

=미국 드라마 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극단적으로 캐릭터를 밀어붙이는 힘에 놀랐다. 원래 캐릭터물에 관심이 많았는데 더더욱 불이 붙었다. 그래서 일단 삐딱한 독설가의 실루엣을 그렸다. 그 어렴풋한 실루엣이 어떤 사람일까, 비망록을 만들었다. 작가마다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다 다를 텐데, 나는 조각을 한다고 생각한다. 즉, 어떤 캐릭터의 실루엣, 느낌에 강렬히 끌렸을 때는, 이미 내 안에 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구체화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때 그를 끌어내는 방법은, 그가 자라오면서 겪었던 일들을 비망록 형식으로 만들어보는 거다. 어디서 태어났을까, 부모는 누굴까, 가난할까 부자일까, 어렸을 때 부모를 가장 크게 놀랜 일은 어떤 걸까, 얘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강렬한 장면은 뭘까 등등. 그러다 보면 내 안에서 그 사람의 손발이, 무릎이, 팔꿈치가, 가슴이, 심장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대면하는, 정말 신기하고도 재밌고 짜릿한 작업 중 하나다.

몇십 장의 비망록 중 드라마에 반영된 것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밑그림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다듬어진 강마에는 의 독설은 닮았지만, 40대 한국 남자답게 훨씬 권위적이고 보수적이다. 훨씬 순수한 구석도 있고, 다층적이며, 돌아가신 우리 아빠와도 참 많이 닮았다(작가의 아버지는 등을 쓴 소설가 홍성원씨다. 올 드라마를 집필 중 5월1일 암으로 돌아가셨다). 우리 주위 친척들은 전화 걸어서 말한다. 형부가, 형님이, 삼촌이 TV에 강마에로 나왔다고. 아빠가 50% 모델이라는 건 우리와 PD만 아는 건데, 참 신기한 경험이다.

-강마에는 사랑에 정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다. 멋있어서 푹 빠지다가도 퍼뜩퍼뜩 정신 차리라는 소리가 강마에의 목소리로 들려오는 듯하다. 러브스토리 라인을 짜나가기가 힘들진 않았나.

=힘들다. 시놉시스에선 훨씬 멜로 진도를 뺐는데, 실제 대본에서 빨리 빼지 못한 것도 그런 면이 컸다. 참 재미있는 게 똑같이 대본을 쓰는 건데도 방송이 시작되고 나면, 드라마는 자기만의 생명력을 갖게 된다. 대본, 연출, 연기 세 가지가 맞물려서 유기체가 탄생되는 느낌이다. 제4의 동력이 생기면서 자기가 굴러간다. 근데 시놉시스 잡아놨다고 억지로 밀어붙이는 스타일도 아니고, 피드백 속에서 내 안의 강마에가 멜로에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그놈이 움직이는 대로 내버려뒀다. 단, 너무 심하게 거부한다 싶으면 엉덩이를 찰싹 쳐서 내몬 적도 있긴 하다. 아주 조금씩 가다 보니 멜로가 더 짜릿해지는 면도 있는 것 같다. 마약 가루 솔솔 뿌리는 느낌도 들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정신 차리라는 목소리, 나도 듣는다.

-직접 캐릭터를 만들어낸 작가도 사랑에 빠진다는 건가. 피그말리온이다.

=멋있다. 내가 쓴 대사를 할 때면 멋있거나 하진 않다. 그런데 대사할 때 나오는 ‘섹시함’은 내가 글로 만들어주는 게 아니다. 사실 ‘섹시하게 쳐다본다’고 하더라도 섹시해지지도 않고. 지문에는 ‘섹시하게’가 하나도 없는데 섹시하다. 강마에의 나이가 40살이다. 사랑에 빠지는 여자애가 20대 팔팔한 애다. 이 여자가 사랑하게 해야 하는데, 강마에의 섹시함 때문에 사랑에 빠졌다.

-이름이 같은 강건우 대 강건우의 대결이 재밌다.

=강건우 대 강건우는 기획 의도 2, 3번을 다툴 정도로 중요하게 초반부터 생각했던 거다. 그래서 이름도 동명이인으로 만들었다. 살리에르와 모차르트의 대립보다는 40대와 20대의 대립, 애증을 먼저 생각했다. 완고하고 보수적인, 그러나 연륜이나 명예, 안정적인 면에서 앞서나가는 40대와 가진 것은 없으나 젊음만으로 아름다운, 패기, 도전 등이 너무나 싱그러운 20대. 그 둘의 애증. 모차르트와 살리에르는 어떻게 보면 그 애증을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덧붙인 설정 비슷하다.

왜 저 구도가 끌렸을까, 생각해봤는데 아버지와 아들 관계의 미묘함에 끌렸던 것 같다. 언젠가 역사의 뒤편으로 밀려날 아버지, 그리고 그 밑에서 무한한 애정은 있으나 언젠가 넘어서고 말 거야라는 생물학적 라이벌 의식을 가진 아들, 그 아들을 지지하고 원하면서도 위협을 느끼는,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견제를 하고 후회를 하는 아버지 등. 짜릿하지 않은가. 그 끊임없는 모순된 심리 사이의 갈등, 애정의 스파크가 끌렸다. 서로 견제하는 욕구만큼이나 둘 사이에 깔린 애정도 관심이 많다.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리더는 없다.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배신하고 배신당하며 영향을 주고 받는다. ‘바이러스’의 전염 경로는 인과관계를 따르지 않는다. 18회 희망콘서트 촬영현장의 배우들. 옆에 있는 프로들의 몸짓과 표정을 거의 똑같이 맞춰낸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리더는 없다.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배신하고 배신당하며 영향을 주고 받는다. ‘바이러스’의 전염 경로는 인과관계를 따르지 않는다. 18회 희망콘서트 촬영현장의 배우들. 옆에 있는 프로들의 몸짓과 표정을 거의 똑같이 맞춰낸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두 작가는 등 중·고등학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성장 드라마를 주로 집필했다. 한 회에 한 에피소드가 들어가는 ‘에피소드 드라마’는 남남북녀의 비극을 그린 2부작 (2003)에도 이어졌다. 2005년 발표된 두 개의 작품 은 그들의 가능성을 한껏 보여준 드라마다. 42살 남자와 20대의 깔끔한 ‘바람’ 이야기인 은 봄바람처럼 설레었고, 은 풋풋한 감성이 즐거웠다. 그러고 보면 에는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사랑을 설득해내던 고뇌가, 에서는 꿈을 좇아 달리는 젊은이들이, 그리고 천재와 노력파의 대결이 의 전주곡처럼 울린다. 이재규 PD(38)는 데뷔작으로 를, 다음 작품으로 〈패션70s〉를 한 ‘무서운’ PD다. 작품의 성격은 다 다르지만, 데뷔작부터 지금까지 몸을 혹사시키는 작품이었다. 작품마다 대규모 군중신이 많았다.

-이재규 PD와의 첫 작업이다. 시작 전 인터뷰에서 이재규 PD가 “예전에는 설득한다 80, 설득당한다가 20이었는데 지금은 50 대 50”이라고 했다.

=같이 하는 작업에 대해선 99% 만족이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즐거웠다. 싸운 적이 기억에 거의 없다. 아이디어가 퐁퐁 샘솟는 분이라 얘기를 하면서 참 즐거웠다. 서로 흥분하고 목소리 커지면서 좋아하며 박수쳤던 일이 많았다. 작가들을 이야기 속에서 마구 뛰놀게 해주었다(홍자람 작가: 맨 처음 봤을 때 쌍둥이가 만난 줄 알았다).

3회 신이나 8회 루미가 물에 빠졌을 때 수중 현악4중주 신은 이게 되려나 걱정했던 장면이다. 제작비와 효율 얘기를 먼저 꺼내면서 이런 식으로까지 할 필요가 있겠느냐, 우려할 만한 신들이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제약이 들어오면 작가는 자기 검열에 걸리기 시작한다. 상상력이 위축된다. 그런데 이재규 감독은 그런 게 없었다. “너무 좋네요, 가요” 하고는 정말 그렇게 만들어냈다. 이런 식으로 믿어주면 신이 나서 더욱 좋은, 감정을 한방에 그림으로 보여줄 수 있는 신들을 고민하게 된다.

-보통 전문직 드라마를 표방하더라도 처음에는 열심히 보여주는 듯하다가 나중에는 사랑 이야기로 빠진다. 하지만 는 계속해서 대규모 공연신이 나오고, 음악적인 갈등이 이후에도 이어졌다.

=감독이 독해서 그렇다. 9~10회를 썼을 때(10회에서 11회 이어지는 대규모 공연신이 있다) 앓는 소리가 주변에서 들렸다. 공연신이 아니라 오케스트라 연습신도 하루 종일 찍어야 한다. 30초 나가는 분량을 그렇게 해야 한다. 제작진이 죽어 넘어가기 때문에 연습신 좀 줄여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하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감독은 한 번도 그런 소리를 하지 않았다. 촬영 스케줄을 보니까 판단이 되긴 하더라. 나중에 갈수록 디테일이 떨어지는 장면도 있긴 하지만 방송사에서도 이재규 아니었다면 못 찍었다고 그런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공이 많이 들어가는, 판타지 기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신도 그렇고 수중신도 그렇고 판타지 장면이 많다. 이것이 ‘게이트키핑’ 역할을 하리라고 생각했다(신은 강마에가 단원들을 연주를 통해 바람 부는 들판으로 데려간 장면, 수중 신은 두루미가 물에 빠졌을 때 본 수중 현악연주). 싸우기 시작하는데 얼굴을 사정없이 일그러뜨리면, 아 이건 오버해서 싸우는 극이구나라는 느낌을 주듯이 이건 ‘전문 드라마’가 아니다라는 것을 알려주는 장면들이다. 그렇게 깔고 간 건데, 그 장면을 좋아하면서도 다른 장면에서는 판타지의 여지를 전혀 두지 않는 점이 의아스러웠다. 처음 하면서 겪는 시행착오다. 회의를 느껴본 적은 거의 없지만, 새로운 길을 간 건데, 이런 것 하라면 안 하고 싶다. 조용히 따라가고 싶다. 나는 왜 다른 걸 해서 욕을 듣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인터넷을 떠도는 ‘똥·덩·어·리’ UCC, 연말 연기상 소감문 패러디,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클래식 인기, 사무실 곳곳에 울리는 드라마 주제가…. 발빠른 시청자는 적극적으로 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팬들의 ‘환호’가 부담스럽지는 않나.

=그전에는 이런 걸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해할 만한 사람, 보고 싶은 사람만 보는 드라마를 했다. 이번 작품도 별로 기대가 없었다. 그런데 1회부터 서서히 시청자가 열광해줘서 두근거렸다. 그리고 5회부터 같은 시간대 1위를 하면서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그러면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시청자를 만났다. 어떤 사람은 멜로만 보고, 어떤 사람은 악단만 보고, 어떤 사람은 악기만 본다. 리뷰에 활이 떴다, 손가락이 안 맞았다는 등 연주에 대한 이야기만 있다.

그리고 시청자가 열광하는 강마에와 싸우는 기분이었다. 9~10회 나오고 나서 감독의 첫 마디가 “어떡하죠?”였고 답변이 “큰일났죠?”였다. 강마에가 점점 신격화·영웅화돼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매한 민중을 강력한 지도자가 새 세상으로 이끈다, 라는 기획 의도와 정반대인, 절대 가서는 안 될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보탠 것이 질투다. 어떤 장면에서도 강마에의 편이 되어 있는 시청자에게, 욕 엄청 먹겠다 하면서도 그렇게 갔다. 다른 드라마는 캐릭터 띄우기에 여념이 없는데, 우리는 중반에 ‘박살을 내자’는 식이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 자문자답하면서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좀 있다 ‘강마에 리더십’ 책 나올 분위기다.

=강마에는 좋은 리더가 아니다. 나쁜 사람이다. 나쁜 면을 강조해서 보여줬는데 사람들이 열광한다. 그 부분에 목말랐나 싶은 생각도 들면서 겁이 더럭 나기도 한다. 그는 독재자다. 말 안 해주고 나만 따라와라고 한다. 자기 합리화의 달인이다. 모순 많고, 말 안 되는 것이 아주 많다. 그런데 그런 것 집으면 지금은 작가가 역적 되는 분위기다.

도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된 곡이다. 오케스트라의 마지막 곡이 대중가요라는 이유로. 이 곡은 지난해 기획 과정에서 내정되었던 곡인데 최근 묘하게 겹치는 일이 일어났다. 가수 인순이씨가 예술의전당에서 대중가수의 콘서트를 허락해달라고 청원했지만 클래식계의 높은 벽에 부딪혔다. 유인촌 장관은 “예술의전당은 원 목적대로 오페라와 발레를 중심으로 공연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중들의 ‘대중가요’가 클래식에 합류하는 데 대한 거부감은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리라. 이 선입견을 깨부수는 데 강마에의 설득력이 마지막으로 발휘된다. 18회 강마에는 손수 ‘거위의 꿈’ 지휘를 맡는다. “일관성 없이, 말도 안 되게 자기 중심으로 해석”(홍 자매)하며 지휘봉을 잡는 이 장면은 강마에가 초반 신랄하게 내쏟았던 귀족/천민의 분류를 스스로 허무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의 흐름은, 강마에가 이끈 것이 아니라 강마에가 오케스트라의 ‘똥덩어리들’ 쪽으로 이동했음이 명확해진다.

-그래도 행복한 경험이었겠다.

=시청자와 같이 만든 느낌이 든다. 제작도 그렇지만 방영 이후에도 여러 가지로 같이 간다. ‘똥덩어리’ 등의 동영상 제작은 홍보비도 받지 않는데 어찌 그리 열심이신지. 지금은 고민이 많이 된다. 끝나면 드는 시원섭섭이 아니라 착잡이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은 느낌이다. 복기를 잘해봐야 되겠다. 지금은 방어벽이 있어서 이야기들이 곱게 안 들리는데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강한 마음으로 복기를 하면, 골방에 갇혔을 때는 맞았던 것 같아, 하는 생각이 든다.

홍 자매는 이후 ‘독립’하여 작품을 쓸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혹시나 이번을 끝으로 각자의 작업을 하게 되면 사람들이 사이가 나빠졌다고 말할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피터지게 싸우긴 했지만 사이가 나빠진 건 절대로 아니에요.”

홍 자매가 ‘칩거’하는 김포의 아파트에는 두 개의 집필실이 있다. 아파트의 양쪽 끝이다. 각자는 틀어박혀 전화로 혹은 급할 때는 방문을 두드려서 방문한다. “이게 뭐야” 하다가도 너무 좋은 장면이 만들어지면 복도 중간에서 딱 마주쳐 손을 맞잡고 환호한다. 새벽을 잊은 ‘큰 목소리’ 둘이 생방송됐으니 아파트 주민들이 꽤나 괴로웠을 거라고 한다. 바로 그곳이 ‘바이러스’의 발상지였다. 주민들도 행복했을 것이다. 2008년 9월10일부터 11월13일까지.





[홍 자매가 뽑은 명장면] 쓴 사람이 입을 떡 벌렸습니다
토벤이 기절했을 때 강마에가 보여준 느낌

토벤이 기절했을 때 강마에가 보여준 느낌


2회: 토벤이 기절했을 때 강마에가 보여준 느낌
쓰면서 참 망설였던 신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슬퍼하는 강마에의 모습에 전율이 일어서 망설였던 제가 다 죄송할 정도였어요. 특히 전화 걸러 가면서 강마에가 자신의 양팔을 감싸는데, 동생과 보면서 입을 떡 벌렸습니다. 지문에 그런 거 없었거든요. 근데 정말 그 순간이라면, 정말 저런 상황에서의 강마에라면 저렇게 할 것이다라는 생각이 팍 들었습니다.
정희연 리베르탱고 솔로

정희연 리베르탱고 솔로


5회: 정희연 리베르탱고 솔로
제가 쓴 드라마를 볼 땐 되게 냉정해지는 입장이라 감동 같은 걸 거의 받지 못하는데, 이때는 저도 정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송옥숙 선생님의 힘이라 생각합니다.
혁권의 딸인 보라와 대사를 주고받으며 내려오는 층계신

혁권의 딸인 보라와 대사를 주고받으며 내려오는 층계신


5회: 혁권의 딸인 보라와 대사를 주고받으며 내려오는 층계신
혁권은 직장 이사 때문에 공연 참석을 포기합니다. 근데 또 공연이 걱정돼서 이사도 제대로 못하고 안절부절못하죠. 그런 그의 미묘함을 보라가 천진난만하게 찔러주는 신입니다. 보라 연기도 좋았고, 혁권 역의 정석용씨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옆에서 “그만해 보라야”라며 말리는 부인 역 황영희씨도 정말 좋았고요, 풀숏으로 아리아리하게 감정을 건드려주신 감독님 연출도 예술.
치매 문제로 지휘자실에서 대립하는 갑용 vs 강마에

치매 문제로 지휘자실에서 대립하는 갑용 vs 강마에


8회: 치매 문제로 지휘자실에서 대립하는 갑용 vs 강마에
주먹이 오간 것도 아닌데, 서로 조근조근 말하는 것뿐인데, 보면서 숨이 막혔습니다. 진정한 연기 내공이란 이런 것이구나, 절로 고개가 숙여졌어요. 특히 치욕을 감내하고 앉아 있던 갑용의 백숏은, 그 순간 감정에 관한 백 마디 대사보다 더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사과를 결심하는 강마에 & 울어주는 루미

사과를 결심하는 강마에 & 울어주는 루미


9회: 사과를 결심하는 강마에 & 울어주는 루미
개인적으로 어떻게 연기를 하실까 가장 많이 기대했던 장면입니다. 이때 강마에 심리의 복잡함이 장난이 아니거든요. 그냥 심리로 그치는 게 아니라 여러 개의 감정이 뒤섞여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기도 했고요. 보면서 역시 했습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강마에에게 미묘한 예의 바름의 벽을 쌓기 시작하는 건우

강마에에게 미묘한 예의 바름의 벽을 쌓기 시작하는 건우


11회: 강마에에게 미묘한 예의 바름의 벽을 쌓기 시작하는 건우
처음으로 건우와 강마에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장면입니다. 그것도 쫙이 아니라 보일 듯 말 듯, 찌지직도 아니고 스윽. 아주 예의 바른 대화 속에, 표정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안 드러내는 것도 아니게, 목소리도 딱딱하지 않으면서 딱딱하게. 말로 써놔도 저게 말이야 싶을 정도인데, 연기자 입장에서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쓰면서도 참 미안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한마디로, 장근석씨 브라보~!

자신을 버리고 갑용을 감싸안으려는 이든의 백숏

자신을 버리고 갑용을 감싸안으려는 이든의 백숏


13회: 자신을 버리고 갑용을 감싸안으려는 이든의 백숏
갑용의 점점 심해져가는 치매, 결국 갑용은 이든을 자신의 딸로 착각합니다. 이든은 난 딸이 아니라고 계속 버티죠. 그러다 결국 할아버지를 위해 딸로 행세하러 가기 전, 잠깐 하늘을 보는 백숏입니다. 이건 대본에도 전혀 없는 감독님의 연출입니다. 자신을 버리기 전, 잠깐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다듬는 이든의 심정이 가슴 뻐근하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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