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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의 시대 다이쇼를 그리다


대장성 관료의 아들로 태어나 귀족교육을 받고 사회주의자가 된 아리시마 다케오
등록 2008-10-17 11:45 수정 2020-05-03 04:25
아리시마 다케오

아리시마 다케오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이 나도는 요즘, 문득 어느 자살(들)이 떠오른다. 국경을 넘어 이어진 두 커플의 자살 사건이다. 1923년 일본 소설가 아리시마 다케오와 여기자 하타노 아키코가 가루이자와의 별장에서 이른바 정사(情死)로 생을 마감했다. 남자는 8년 전 아내를 여읜 홀아비였고, 여자는 유부녀였다. 그리고 이에 영향을 받아 다이쇼(大正) 시대의 마지막 해인 3년 뒤, 오사카에서 를 녹음하고 돌아오는 길에 서른 살의 윤심덕과 김우진이 현해탄에 함께 몸을 던진다. 아리시마와 하타노의 ‘신주’(心中·동반자살)는 이처럼 두 나라를 뒤흔든 큰 사건이었는데, 아리시마 다케오가 조선에 영향을 미친 것은 단지 이 자살 사건뿐만은 아니었다.

그에게 큰 영향을 받은 두 한국 작가가 있다. 한국 근대문학의 기둥이던 김동인과 염상섭으로, 이들이 일본에서 유학했던 1910~20년대는 아리시마 다케오가 가장 활발히 창작 활동을 했던 시기다. 염상섭의 초기작에는 아리시마의 의 흔적이 엿보이며, 김동인의 은 홋카이도 농민들의 혹독한 삶을 그린 의 영향을 받았음을 숨길 수 없다.

아리시마 다케오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인물이다. 1878년 대장성 관료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귀족 자제들이 다니는 가쿠슈인(學習院)에서 훗날 다이쇼 천황이 될 황태자의 놀이 친구로 수학했다. 이후 홋카이도대학의 전신인 삿포로농업학교에 입학해 당대 많은 이들이 그랬듯 종교사상가 우치무라 간조의 영향으로 기독교도가 됐으나, 미국 하버드대학에 유학하면서 신앙에 회의를 품게 되고 이어 사회주의자가 된다. 귀국한 뒤에는 삿포로의 모교에 부임해 농민들과 삶을 함께하면서, ‘시라카바’(白樺)파의 동인으로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인도주의와 이상주의를 기반으로 삼았던 시라카바파는 ‘새마을’ 운동을 제창하며 휘트먼과 같은 자연 회귀를 부르짖었으나, 사실 가쿠슈인 출신 작가들이 모인 시라카바파의 사회적 활동이라는 것은 프랑스의 마리 앙투아네트가 트리아농 궁에서 양치기 소녀를 흉내낸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아리시마 다케오는 시가 나오야, 무사노코지 사네아쓰, 그리고 친동생인 소설가 사토미 돈 등의 동인들 중에서 모임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했다.

그리고 1922년, 그는 어쩌면 다음해 그의 자살 사건보다도 후세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사건을 벌인다. 작가로서의 양심선언이라 할 만한 ‘선언 하나’라는 글을 발표함과 동시에, 홋카이도에 있던 자신의 농장을 소작인들에게 ‘공산 농원’이라는 형태로 무상 증여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런 행위에 대해서도 낭만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이런 농원이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반드시 자본가에 의해 탕진되고 말 것이라고 예견한다.

〈어떤 여자〉

〈어떤 여자〉

그의 이런 냉정한 시각은 소설 속에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의 장편소설 중 대표작이라 할 (향연 펴냄)는 크게는 의 틀을 빌려왔으며,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설가 구니키다 돗포의 아내였던 사사키 노부코가 남편과 이혼한 뒤 미국의 약혼자를 만나러 여객선에 몸을 싣고 가던 도중, 유부남 사무장과 사랑에 빠져 몰래 일본에서 살림을 차린 사건이다. 장장 7회에 걸쳐 신문에 연재될 정도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이 사건을 소설화하면서, 아리시마 다케오는 사사키 요코로 이름지은 여주인공을 톨스토이풍의 비련의 인물로 묘사하기보다는 자의식이 강하고 대담한 현대적인 요부로 그려냈다.

요코는 인간적인 결함을 지닌 인물이지만, 그럼에도 작가는 본능과 자연에 충실한 삶을 살려는 여주인공의 손을 들어준다. “에서 내가 독자들이 감명받기를 바라는 바는, 현대 여자들의 비극적인 운명의 쓸쓸함이라는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에게 생존의 권리를 빼앗기고 있습니다. 그 결과 아무것도 없는 경지에서 오직 하나, 남자를 농락할 수 있는 무기를 이용할 것을 강요받았습니다. 거기서 남녀관계의 비극이 배태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함석헌에게도 영향을 주었던 무교회주의 종교가 우치무라 간조는 훗날 아리시마 다케오의 배교에 분노해 그의 슬픈 죽음 뒤에도 ‘배교자 아리시마’라는 글을 쓰며 비난을 멈추지 않았는데, 간조의 이런 완강함은 흥미롭게도 에서 요코를 배척하는 원리주의자 종교가 우치다 선생이라는 인물을 통해 묘사된다.

국내에 출간된 아리시마 다케오의 작품은 외에 (소화 펴냄), (꿈이 있는 세상 펴냄) 등이 있다. 나쓰메 소세키가 그려낸 메이지 시대에 이어, 노동운동과 사회주의의 시대인 다이쇼의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작가의 영혼을 엿보기엔 부족함이 없다.

태풍클럽 출판사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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