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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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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노브레인은 변했다

등록 2007-12-07 00:00 수정 2020-05-03 04:25

이명박 후보의 로고송으로 쓰인 … 혈기 넘쳤던 그 밴드의 10년 전을 회상하다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본격적으로 대선이 시작되면서 후보들이 로고송을 내놓았다. 물론 기존 인기곡들을 개사한 ‘노가바’(노래가사 바꿔부르기)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로고송들이다. 온갖 의혹에도 떨어지지 않는 철의 지지율을 과시라도 하듯, 쌍끌이 어선을 동원해 세간의 이목을 끌 만한 노래들은 다 갖다붙였다. 박현빈의 , 슈퍼주니어의 , 올라이즈밴드의 시그널, 그리고 노브레인의 다. 응? 노브레인?

문민정부에 퍼붓던 욕설

한국에서 연예인은, 특히 가수들은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걸 움찔해한다. 대중의 인식이 가수가 정치에 관련되는 걸 영 마뜩잖아하는데다 줄을 잘못 섰다가 어떤 피해(요즘은 네티즌들로부터)를 입을지 몰라서다. 지난 대선 때 공개적으로 한 후보를 지지하고 선거운동에까지 참여했던 신해철도 그 뒤 꽤나 당한 모양인지 올해 새 음반을 낸 뒤 가진 인터뷰에서 아주 학을 떼는 걸 지켜봤다. 그래서 한국에서 어느 가수나 작곡가가 특정 후보에게 자신의 노래를 로고송으로 제공했다고 해서 정치적 행동으로 볼 필요는 없다. 별로 그렇게 보는 사람도 없다. 그건 그냥 거래일 뿐이다. 그래서 같은 노래가 쓰이든 말든, 사실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노브레인이라고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중에게 각인되어 있는 노브레인은 다. 영화 에 출연하며 그 노래를 부른 노브레인은 영화의 흥행 결과 이상의 수혜를 받았다. 공중파에 진출한 건 물론이고,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전국을 돌며 온갖 축제와 행사에 불려다녔다. ‘노브레인이 행사계를 쓸고 다닌다더라’라는 소문이 업계에 파다했다. 나는 노브레인의 10년 친구다. 친구로서 그들의 성공을 축하해주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대선 로고송에 노래가 쓰였으니 꽤 짭짤했겠구나, 라며 축전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이명박’으로 가사가 바뀌어 흘러나오는 노브레인의 노래를 듣는 기분은 착잡하다. 이건 내가 다른 후보를 지지하기 때문이 아니다. 아직 뚜렷한 지지 후보도 없거니와, 친구의 노래가 내가 싫어하는 후보의 로고송으로 사용된다 해도 받아들일 톨레랑스 정도는 갖고 있다. 친구 얘기를, 그것도 안 좋을 수도 있는 얘기를 공적인 지면에 쓰는 게 썩 내킬 리도 없지만 그럼에도 이야기를 꺼내는 건 그들의 옛날 모습이 떠올라서다.

노브레인의 1999년 EP 은 한국 펑크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작품이라 해도 좋다. 네 곡이 담겨 있는 이 음반에서 마지막에 실린 곡은 이란 노래다. 당시 기타리스트였던 차승우가 곡을 썼고 지금도 노래하고 있는 이성우가 가사를 썼다. 99년 발표됐지만 96년쯤 만들어진 이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문민정부 좆까는 소리/ 문민정부란 개소리는 개한테나 줘버려라… 씨발 청와대/ 씨발 안기부….’ 97년 발표한 위퍼와의 합동 음반에는 이란 노래가 담겨 있다. 역시 이성우가 가사를 썼다. ‘우리가 가진 건 분노와 소외감/ 질리게 들어온 강요와 설교뿐/ 잘사는 사람 계속 잘살고/ 못사는 사람 계속 못사는….’ 2001년 노브레인의 2집에서 이성우는 이란 노래를 만들었다. ‘가슴속에 그려진 고통을 지워버리고/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깊은 마음속의 투혼을 목 터질 듯 불러보리라.’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며 밥 말리의 “음악으로 혁명을 일으킬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깨우치고 선동하고 미래에 대해 듣게 할 수는 있다”라는 말을 실감하곤 했다. 동세대에 이런 이야기를 멋진 음악으로 들려줄 수 있는 친구를 두고 있다는 게 더없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꽤 많은 소년소녀들이 그런 노브레인의 음악과 태도에 감화되어 펑크 키드의 길로 들어섰다.

나이테 없는 성장?

그때의 노브레인과 지금의 노브레인을 단순 비교하는 건 불가능하다. 초기의 음악적 두뇌였던 차승우가 2집을 끝으로 탈퇴한 탓이다. 그 뒤 를 발표하고 성공을 거둔 뒤 가진 인터뷰에서도 노브레인은 “우리는 변했다. 예전의 노브레인과는 다르다”라고 천명하곤 했다. 인정한다.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영원한 반항아란 좀처럼 찾기 힘든 법이다. 그들도 성장했다. 사람의 성장은 나무와 같다고 생각한다. 나무를 베어보면 중심에서 주변으로 나이테가 퍼진다. 묘목 시절의 흔적을 지키며 나무는 자란다. 노브레인이 문민정부의 후예인 이명박을 지지해서 로고송을 제공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거래일 뿐이니까. 다만, 10년 전부터 꽤 오랫동안 지켜오던 패악질과 혈기의 흔적이 사라진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이명박의 로고송으로 사용된 를 들은 날, 친구에게 이런 심경을 토로했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친구는 되물었다. “그래도 꼭 그래야만 했을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담배만 피워댔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스피커에서는 루시드 폴의 신곡 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 역시 옛 친구의 하나다. 이 노래에서 루시드 폴은 제3세계에 가해지는 선진국들의 착취를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다. ‘세련된 너의 착취/ 세련된 너의 폭력.’ 나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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