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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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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로 무장한 ‘생물무기’

등록 2001-01-31 15:00 수정 2020-05-02 19:21

현실화되는 DNA 재조합 바이러스의 위험… 치명적인 파국 부를 가능성 높아

지난 70년대 중반 처음 DNA 재조합 기술이 실현되었을 때, 많은 분자생물학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기술에 스스로 놀랐다. DNA 재조합이란 말 그대로 한 생물의 DNA 일부를 잘라서 다른 생물의 DNA에 삽입하거나 접합하는 기술을 뜻한다. 당시 과학자들은 그 기술의 엄청난 힘을 감지하고 그 영향력에 대한 충분한 연구가 있기까지 일시적으로 실험을 중단하는 조처, 즉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그뒤 25년 이상이 지난 오늘날 DNA 재조합 기술은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발전했고, 많은 나라들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비견되는 이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여념이 없다. 그렇다면 그동안 기술발전과 함께 ‘판도라의 상자’, ‘호리병 속에 든 거인’ 등 무수한 별명을 얻은 DNA 재조합 기술의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그에 따른 조처는 이루어졌는가?

너무 성급하게 열린 판도라의 상자

영국에서 발간되는 과학잡지 최근호의 보도 내용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유전자 조작에 대해 우려했던 사태가 현실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유전자 조작으로 인한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등장이다. 최근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과학자팀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자연상태에서 발견되는 어떤 바이러스보다도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만들어냈다.

오스트리아 국립대학의 이언 럼쇼(Ian Ramshaw)와 그의 동료는 페스트의 전염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쥐를 불임(不姙)으로 만드는 백신을 개발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쥐의 사지(四肢)에 손상을 일으키는 마우스팍스(mousepox) 바이러스에 인터루킨-4(IL-4)를 다량으로 생성하는 유전자를 삽입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인터루킨이란 단백질의 일종으로 면역계통의 조정인자 역할을 한다. 그들이 이런 실험을 한 까닭은 쥐의 난자를 생성시키지 못하게 하는 항체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여기에서 마우스팍스 바이러스는 단지 난자의 단백질을 옮겨주어 항체 반응을 촉발시키는 구실밖에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터루킨-4 유전자를 삽입한 이유는 그 단백질이 항체 생성을 촉진시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유전자 조작의 결과는 전혀 예상치 않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 그것은 인터루킨-4 유전자가 삽입되어 유전자 조작된 바이러스가 쥐의 면역체계를 완전히 무력화시켰고, 결국 실험 대상이었던 쥐가 모두 몰살한 것이다.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변형된 바이러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쥐들에게 백신을 주사했지만 백신 효과는 절반밖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변형 바이러스가 테러집단 손에 들어간다면…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에 의하면 이 바이러스는 인체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변형된 마우스팍스 바이러스는 사람에게 감염되는 천연두의 사촌뻘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기술이 테러 집단이나 범죄자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는 사태를 우려한다. 날로 발전하는 생물공학 기술 덕분에 과거에는 거대한 연구시설과 많은 인원을 필요로 했던 유전자 조작이 소수의 인원과 간단한 설비만으로도 가능하다는 점도 우려의 현실적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영국의 생물학자들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탄생하는 악성 바이러스가 백신을 무력화시키는 치명적인 생물무기로 사용될 가능성을 두려워하고 있다. 가령 사람의 인터루킨-4 유전자를 천연두 바이러스에 삽입시킬 경우 천연두로 인한 사망률이 급격하게 높아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현재 무수한 실험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바이러스를 이용한 유전자 조작 실험에서 우연히 악성 변종 바이러스가 태어날 가능성이다. 특히 암과 같은 질병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실험에서 예측하지 못한 사태로 사람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출현하게 된다면 인류 전체에 비극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더구나 예상치 못한 악성 바이러스의 등장이 여러 가지 이유로 보고되지 않고 은폐될 가능성도 높다. 관계자들이 자신의 연구소에서 악성 바이러스가 탄생했다는 소식이 나쁜 평판을 불러일으키고 급기야 연구비 지급 중단으로 이어지는 사태를 꺼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험실 내에서의 조기발견이 중요

이번에 오스트레일리아 연구진에서 나타난 사례는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훨씬 더 심각한 사태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의 관계자들은 수많은 실험실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를 일일이 감독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연구의 투명성을 높이고 엄격한 규제 장치를 도입하는 것 이외에 실험실에서 연구자들 스스로 예상치 못한 변종 바이러스의 출현에 대처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고 능력을 기르는 것이 필수적이다. 실험실 내에서의 조기발견 체계를 확보하는 것이 파국을 막을 수 있는 중요한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험을 직접 담당하는 연구자들에 대한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생물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자신의 연구에 내포된 위험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받기 전에는 박사학위를 받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일부에서는 생물무기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는 연구결과를 학술지에 발표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조처는 과학 연구의 공유와 발표의 자유를 저해할 수 있기 때문에 강제성을 띠기 힘들 것이다. 이 문제처럼 타율적인 규제보다 연구자들 스스로의 노력이 중요한 경우는 없을 것이다.

김동광/ 과학평론가·과학세대 대표 kwahak@byulno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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