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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힙합’이 예술이든 전략이든…

등록 2004-06-23 15:00 수정 2020-05-02 19:23

연예 소식지들의 ‘미아리복스’ 부풀리기가 가린 이하늘 · 베이비복스에 관한 ‘음악적’ 사실들


DJ.DOC 멤버인 이하늘씨의 ‘미아리복스’ 발언으로 연예계 수다방이 시끄럽다. 그는 정말 베이비복스를 인신공격하려 했을까. 그리고 베이비복스는 무얼 비판받아야 했는가.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사건의 꼭대기는 6월8일 케이블TV 음악채널 엠넷(M.net)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려진 이하늘씨의 글에 있다. DJ.DOC의 일원인 그는 댄스그룹 베이비복스(이하 베복)를 ‘미아리복스’ ‘섹스가수’라 표현했고, 이에 베복쪽은 격분한 상태다. 소속사 DR뮤직은 고소까지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며, 이하늘은 이후 힙합 동호회 사이트에 글을 남긴 뒤 한동안 연락을 끊고 지냈으며, 이들을 둘러싼 한 무더기의 말들이 스포츠신문을 중심으로 한 연예계 수다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 ‘미아리복스’는 사태의 핵심이 됐고, 정말 베복이 그녀들의 노래에서 미국 래퍼 투팍(2pac)의 랩을 ‘함부로’ 썼는지는 알기 힘들다. 세상과의 공감대 형성이 대중문화의 근거라고 한다면 지금 보이는 무관심과 비판은 한국 힙합과 대중 사이의 소원한 관계를 증명한다.

이하늘은 ‘힙합 더 바이브’에서 뭘 말했나

실제 힙합 팬들은 베복 7집이 출시된 뒤 “어처구니없다”는 반응들을 보여왔다(상자기사 참조). 딴지일보는 5월1일자로 ‘[딴따라]개발에 편자 혹은 베복에 투팩’이라는 기사를 실었고, 아시아 음악 포털 사이트 ‘www.grooveaia.com’에도 토론장이 개설돼 있다. 투팍 공식 사이트(www.2paclegacy.com)는 4월8일자로 한국의 베복이 음원을 불법적으로 이용한 데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이하늘씨도 6월1일 엠넷 힙합 프로그램 ‘힙합 더 바이브’에서 베복의 투팍 랩 사용을 비판했다.

그는 3월부터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에 출연해 ‘이도사에게 물어보세요’를 진행하고 있다. 6월1일 한 시청자가 ‘친구들이 투팍을 잘 몰라요. 설명해주세요’라는 궁금증을 전했고, 이하늘씨는 5분간 투팍의 생애와 의미, 대표 음반 등을 소개했다. 이 중 1분30초가량이 베복과 관련됐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한다. 오빠한테 야무지게 ‘빠따’ 한번 맞고 다시 시작하자” “베이비복스 좋아하는 사람 있는 것 알지만 이건 좀 아니잖아” “왜 투팍이 거기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투팍 랩 쓴다는 소문에 약간의 기대감이 있었는데 결국 크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빠따 맞아야겠다’는 ‘백반 한끼 대접하고’와 함께 그가 즐겨 쓰는 표현으로, 이날도 mp3 사태를 방치한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과 결혼을 서두르지 않는 지누션의 지누가 이하늘에게 ‘빠따’ 맞고 ‘한끼 대접’ 받아야 했다.

이하늘은 DJ.DOC 이전 클럽 DJ 시절부터 힙합을 자신의 음악적 주제로 생각했다. “DO(이현도)의 정통성 문제보단 그가 그 시절 우리에게 최고였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냐” “심의를 완전히 풀 수 없지만 자기 검열을 완화해주는 융통성을 발휘해달라”고 방송에서 말했듯이 외골수 음악인은 아니다.

그러나 한 스포츠신문은 방송 내용을 ‘다듬어’ 기사화했고, 다른 스포츠신문은 베복 음반에 참여한 흑인 프로듀서 플러스 피와의 통화 내용을 단독 게재했다. 그 내용에 격분한 이하늘씨는 6월8일 ‘누군가’가 해명글을 요청하자 문제의 ‘미아리’를 섞어서 반박글을 올렸고, 이후 사태는 지금과 같다. 플러스 피는 인터뷰에서 DJ.DOC를 표절가수라 칭하면서 “한국 힙합 그룹의 랩에는 ‘한국의 사상’이 없어 보인다” “머리나 빨갛게 물들이고 약간 반항적인 태도 취한다고 힙합 그룹이냐”고 말했다. DJ.DOC의 매니저 박대형씨는 “공방 자체가 어이없다. 언론플레이를 시작한 게 누구냐”며 “현 상황이 발매를 앞둔 우리 음반에 도움될 거 같냐”고 했다.

그런데 왜 베복은 ‘급진적’인 음악 전략을 채택한 걸까. 어느 날 갑자기 인연 없던 정통 힙합 음악인 투팍을 등에 업게 된 건 DR뮤직이 고심 끝에 내놓은 마케팅 7막의 결과물이다. 1991년 중국에 진출해 지사 DR차이나를 설립하고 아시아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지만, 한류 열풍이 한 차례 꺾인 분위기에서 음악적 알맹이가 필요하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됐다. 마침 부상하는 ‘힙합’ 코드에 눈돌린 DR뮤직은 지난해 말 접촉해온 미국 흑인음악 레이블 ‘벙갈로 뮤직’과 사업적 협력을 하기로 하고, 두 회사는 함께 베복 7집을 제작했다.

섹시 힙합 여전사로 변신한 베복

중국과 타이에서는 투팍의 명성이 높고, DVD로 음악을 소비한다는 데 착안하여 7집은 ‘음악CD+DVD’ 세트로 나왔다. 투팍 DVD를 선물로 끼울 만큼 적극적으로 섹시한 힙합 여전사 만들기를 시작했다. 음원 활용과 관련된 법률적 문제는 DR뮤직이 주장하는 대로 DR뮤직-DTTG(판권 소유사) 양자간의 계약서 내용이 확실하다면, DVD 마스터 음원을 써서 에 투팍 랩을 넣은 점이나 뮤직비디오에 투팍 영상을 일부 활용한 점은 문제가 없을 듯하다. 다만 DTTG가 어떻게 음원을 확보했는지는 그 당시의 사실관계 확인에 따라 판단할 수 있으며, 그래서 투팍 공식 사이트의 저작권 주장도 더 복잡한 배경을 가진다.

베복 7집은 힙합 팬들의 비판과는 별개로 일반 팬들에게서 큰 호응을 얻지 못한 듯하다. (사)한국음반산업협회에 따르면 베복5·6집은 발매 한달 만에 6만~8만여장 판매됐으나, 7집은 출시 한달 반이 지난 5월 말까지 총 3만5천여장이 팔려 시장 침체를 감안해도 만족스러운 판매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케이블TV의 인기순위 프로그램에서도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으니, 베복 7집은 힙합과 상업가요 양 영역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한 셈이다.

한편 이하늘씨는 공개적인 인격 비하·특정 문화에 대한 우월감 표출이라는 점에서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미아리 발언과 함께 음원 활용을 부정하면서 다양성을 거부하는 문화권력주의 또한 뒤틀린 남성 문화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정희진(여성학 강사)씨는 지적한다. 권김현영(여성학 강사)씨도 “창녀는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전제부터 위험하다"며 “남성우월주의적 시각에서 인격을 지닌 그녀들을 ‘미아리’라는 말로 창녀라 했다. 왜곡된 여성관을 바탕으로 함부로 던지는 말이 얼마나 무책임한지 보여준다”고 했다.

결국 선정적 언어는 이하늘씨가 지적하고 싶었던 베복의 투팍 활용에 대한 논란을 가렸고, ‘힙합이 한국적으로 소화되지 못한 채 미국식만 정통이라 여긴다’는 일부 비판에 대응할 수 있는 한국 힙합의 입지도 좁아졌다. 이하늘씨가 투팍을 정말 존경한다면 예상 가능한 사태를 알고 선별된 단어를 썼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피처링’이라는 이름으로 거리와 무대에서 연대를 한다는 동료 래퍼들도 스포츠신문들의 공포스러운 기사 가공력에 몸을 사리고 있다. 결과적으로 베복은 두번 실패했고, 이하늘씨는 두번 잘못한 셈이 된 듯하다.



는 어떤 노래?


논란의 대상이 된 곡은 베이비복스(이하 베복) 7집 (Ride West)에 수록된 (Xcstasy)다. 영어·한국어·영어리믹스 버전으로 녹음됐으며 ‘Featuring TUPAC(4-ever), FLOSS P & ONE GOD’라고 표기돼 있다. 피처링(Featuring)이란 다른 가수가 노래를 도와준다는 의미로, 힙합에서는 멜로디 라인을 부를 객원 보컬이나 랩을 함께할 동료 래퍼들을 초대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조PD의 는 ‘featuring 인순이’가 된다.

베복 7집엔 오디오 CD 외에 래퍼 투팍(2PAC) 이야기를 담은 ‘투팍포에버’(TUPAC4EVER) DVD가 포함돼 있다. 음반을 구입한 이들에게 주는 선물인 셈이다. 기획사는 DVD 판권 구매시 투팍의 랩 30초 분량을 베복 노래에 사용할 권리를 사서 중반부에 활용했다고 한다. 베복과 투팍이 랩을 주고받듯이 편집되니 투팍이 ‘피처링’한 셈이 됐다. 힙합 팬들은 △대화 형식인데 의미 연결이 어색하다 △임의로 편집해 투팍 랩이 왜곡됐다 △뮤직비디오에서 투팍 영상을 구색 맞추기용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비판하고 있다.
도입부에선 다른 남자 래퍼가 “How you want it baby/On the hood of the car/…/Red hot heels on in the living room”등을 읊으며 남녀 관계에 대한 노골적인 묘사를 하고, 이에 베복은 “Touch tease and please me/Tell me how you want it” 등 비슷한 분위기로 응답한다. 그 뒤 등장한 투팍은 “Depend on me when you have needs or there’s trouble/I wanna give you happiness or maybe even more/I told you before no time to waste” 등 ‘도움이 필요할 땐 내게 의지해’ ‘행복 이상을 주고 싶다’고 노래한다(가사 참조 www.lyrics.co.kr).
1990년대 미국 흑인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투팍은 미국 사회의 모순을 직시하며 소외계층의 분노를 대변했고, 나아가 흑인 내부 사회도 비판했다. 그의 랩들은 문학적이며 지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지금도 음악적·문화적으로 주요하게 여겨진다. 베복에게 랩은 ‘장식용’일 수 있고 국내 팬들은 랩을 세세히 듣지 못하는 게 사실이겠지만, 힙합 팬들이나 지하에 있는 투팍이 노래 중간에 어색하게 낀 투팍의 랩에 기분이 썩 좋지 않을 수는 있겠다. 한 스포츠신문은 “투팍과 ‘듀엣’을 했다"고 표현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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