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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아버지의 눈물을 발견하세요

등록 2004-05-27 15:00 수정 2020-05-02 19:23

연극 가 잔잔하게 그려낸 부성애의 의미와 감동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아버지 되기’가 부성애에 바탕한 가족애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닫기는 어렵지 않다. ‘부자 아빠’를 기대하는 아이를 바라보면 더욱 그렇다. 우리는 아버지 되기의 어려움을 현실 속에서 또는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흔하게 보았다. 영화 에서 나치의 폭압으로부터 아들을 지켜내려는 아버지의 몸부림을 보며 눈물에 젖지 않은 사람이 드물 것이다. 의 정신지체 아버지와 의 실업자 아버지는 자식을 법과 제도적 장치에 빼앗기지 않으려 발버둥쳤고, 의 남성성을 잃어버린 아버지 역시 고난을 마다하지 않으며 아들이 홀로 설 수 있도록 했다.

병 걸린 아이 곁에서 울다가 웃다가…

그렇게 일상의 고단함 속에서도 아버지의 자리를 지키려 해도 어찌할 수 없는 절망은 있게 마련. 가부장 사회의 틈바구니에서 남몰래 흐느끼는 아버지. 물론 어머니라 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눈물의 의미를 헤아리게 하는 공연이 잇따라 무대에 오른다. 극단 산울림의 107번째 정기공연인 (소극장 산울림·7월25일까지)와 극단 이루의 첫 번째 공연인 가 그것이다. 각각 백혈병과 소아암에 걸린 소년의 아버지(가족)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웃음과 눈물 속에서 가족의 의미를 재발견하도록 한다.

“오늘도 골수주사를 맞는데 너무 힘들어서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선생님, 얼마나 더 아파야 죽게 되나요”라는 백혈병에 걸린 다움이(박규남)의 내레이션이 깔리며 막이 오른 무대는 단출하기 그지없다. 작가 조창인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3년째 올린 의 무대엔 예나 지금이나 병실침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 삭막한 무대의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부성애를 발견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100만 독자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스토리의 단순함이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부자의 따뜻한 대화는 관객의 가슴속에 파고들어 존재의 기쁨을 확인하게 한다.

자식을 돌보던 수컷이 자식이 떠난 뒤 돌 틈에 머리를 박고 죽는다는 ‘가시고기’. 자신의 신장을 팔아 다움이의 골수이식 수술을 하려던 아버지(성완경)는 최후의 순간에야 마수를 드러내는 간암이라는 사실에 분노할 시간도 없었다. 다움이의 비극은 더한 고통을 껴안으려는 ‘부성애’ 앞에서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한다. “아빤 이제 널 사랑하지 않아!”라고 모진 말을 내뱉은 뒤 “잘 가라 아들아, 나의 전부인 아들아…”라고 속내를 드러내는 아버지. 관객들은 아버지와 다움이 사이에서 흐느낌을 미덕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관객의 ‘훼방’에 시선을 잃고 대사 처리가 흐릿한 다움이의 연기는 ‘백혈병 후유증’으로 여겨도 될 것이다.

연극 가 가난의 굴레와 죽음의 그림자가 엿보이는 비극에 가까웠다면, (대학로 동숭무대 소극장·6월4일~7월4일)는 경북 경주시 시골마을을 담은 수묵담채화 속에서 희극과 비극을 동시에 체험하는 무대이다. 정신 장애인으로 소아암을 앓는 12살 선호(장정애)의 아빠인 이출식(김학선)의 일상엔 눈물이 배어 있다. 그렇다고 무대에 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해프닝은 공연시간 내내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하지만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눈물이 가슴을 적시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아버지의 눈물, 그 정체를 찾아 무대로 떠나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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