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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시다의 꿈이 내일을 열었다

등록 2004-03-11 00:00 수정 2020-05-03 04:23

전순옥씨의 한국 노동운동사… 대량 실업사회 진단서도 나와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한겨레출판부 펴냄)와 (갈무리 펴냄)를 읽는 것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1970년 11월 전태일의 목소리에서 시작해 “하나의 유령이 한국을 배회하고 있다. 실업이라는 유령이”라는 ‘현대 한국판 마르크스의 선언’으로 끝난다. 두 책을 읽는 것은 우울하고 힘든 경험일 수도 있지만 40년 전부터 현재까지 한국 노동의 현실을 바라보고 고민할 기회를 준다. 그 고민은 일하는 또는 일해야 하는 우리들의 삶에서 멀지 않다.

는 전태일의 누이동생이자 봉제공장 노동자였던 전순옥 박사의 박사학위 논문 ‘They are not machines’를 우리말로 옮긴 책이다. 2001년 영국 워릭대학의 최우수논문으로 선정됐고 지난해 영국과 미국에서 출판됐던 이 책은 정부의 통계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 현장조사, 100여명과의 개인 인터뷰, 4번의 집단토론, 노동자들의 일기 등 방대하고 생생한 노동자들의 목소리들을 토대로 써낸 노동운동사다.

1974년 2월28일 가발, 가죽옷, 구두 등을 만들던 럭키그룹의 계열사 반도상사의 부평공장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단식농성을 벌이며 요구한 조건은 “뺨 때리기 등 신체적 학대 금지, 폭력적인 감독의 처벌, 임금 60% 인상과 잔업 강요 폐지, 기숙사 조건의 개선” 등이었다. 하루 종일 독성이 강한 풀냄새를 맡으며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은 건강검진 한번 받지 못했고, ‘훈계’라는 이유로 뺨이나 엉덩이를 예사로 맞았으며 매트리스도 없는 콘크리트 바닥에서 잠을 잤다.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태어난 환영받지 못하는 딸들이었고, 공장에서는 ‘1번 미싱사’ ‘3번 시다’로, 공장 밖에서는 공순이로 불렸던 여성들은 이런 상황에서 노조를 결성하고 새로운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이들 여성 노동자가 목소리를 내기 전까지 남성 중심의 노동조합이 있었지만 그 지도부는 국가와 고용주들과 결탁해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데 앞장섰다. 전순옥 박사는 “1970년대 한국 여성 노동자들이 일구어낸 비범한 성과는 순종적이라는 아시아 여성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깨뜨리고 이들이 용감하고 단호하면서 온정 많고 체계적으로 연대를 도모하는 능력 있고 지적인 개인들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기존의 노동운동사 연구에서 무시돼 왔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운동이 그들의 의식과 삶, 노동운동을 바꿨을 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흐름도 바꿔놓았다고 강조한다. YH무역 여성 노동자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한 문제와 관련해 박정희를 비난하던 김영삼이 국회에서 축출당하자 부마 시민봉기가 일어났고 그 처리 문제를 두고 박정희·차지철과 대립하던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1979년 10월26일 박정희를 쏘았다는 것이다.

사회학자 김만수 박사가 내놓은 는 2000년대 들어 내내 우리 곁을 맴도는 사상 최악의 취업대란, 이태백, 삼팔선, 사오정의 악몽이 일시적인 불경기 때문이 아닌 현재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현상임을 보여주기 위해 1960년대 이후 40년 동안의 한국 사회의 산업별 자본구조와 주요 기업의 재무재표, 회계자료를 일일이 분석하고 자본 구성 비율을 계산한 치밀한 작업의 결실이다.

자본은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고정자본 비율을 늘리는 경향이 있으며 총자본에서 임금으로 지불하는 자본 부분은 상대적으로 감소하면서 일자리가 줄거나 불안해진다. 대신 집중된 자본은 주주나 투자자, 고위관료 등 상층부 20%의 ‘우아하고 세련되며 품위 있고 격조 있는’ 삶으로 흘러들어 간다.

그런데도 정부의 공식 실업통계는 3%대다. 1주일에 한 시간만 일하면 취업자이고, 구직 활동을 포기하면 실업자가 아니라는 실업의 정의는 ‘통계상 정식 실업자’ 되기를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운 일로 둔갑시킨다. 지은이는 민주노총 등의 조사를 토대로 현재 실질 실업률이 최소한 두 자리 숫자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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