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례에 진심이던 조선의 정치 공간그 어느 때보다 불안한 몇 달이었다. 2025년 4월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을 파면했지만 공화국엔 치유하기 어려운 상흔이 남았다. 국제 정세도 위태롭다. 4년 만에 백악관에 돌아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보편 가치와 규범을 보란 듯이 저버렸다. 그간 한국이 지켜온...2025-04-12 21:00
잃고 싶지 않은 맛, 시금치 커리를 끓이며처음 보는 하늘이었다. 황토색 구름 뒤로 시뻘겋게 빛나는 태양이 붉은 신호등처럼 매달려 있었다. 지붕을 덮을 것처럼 낮게 흐르는 누런 구름의 틈 사이로 맑은 하늘이 비치는 기묘한 풍경이었다. 미세먼지와는 달랐다. 설마 여기까지 날아온 걸까.두껍게 하늘을 가로지르는 저것...2025-04-06 10:06
송곳 같던 계엄, 탄핵 기다리며 겨울을 달렸다불은 날카로운 낫을 들고 다닌다. 나무만 베어내는 게 아니다. 불이 지나가면 삶의 주변이 민둥해진다. 눈길 둘 곳이 없다. 어디 닿지 못하고 미끄러져 멀리 가버린다. 가슴의 상처는 덧나 무덤처럼 봉긋해진다. 검은 연기가 숨구멍을 틀어막은 탓에 누군가 찾아와 어루만져주지...2025-04-05 21:48
아픈 친구의 나라에 어떤 위로를 전할 수 있을까분노와 좌절이 널뛰는 마음으로 헌법재판소의 선고를 기다리다 4월이 왔다. 탄핵 선고가 나올 때까지 모든 일정이 긴급이고 일상은 예외 상태가 돼버린 활동가 친구가 길바닥에 앉아 김밥을 먹는 사진을 보았다. 한 손에 ‘윤석열들 없는 나라,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팻말을 든...2025-04-05 19:20
가족주의 판타지를 넘지 못한 ‘폭싹 속았수다’요새 어딜 가도 ‘폭싹 속았수다’(넷플릭스)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이야기의 포인트는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말하고, 어떤 이는 엄마 생각이 나서 휴지 한 통을 다 썼다고 한다. 한국전쟁 등 대한민국 격변기를 경험한 ‘아버지 세대’를 그린 영화 ...2025-03-30 14:06
비극으로 막 내린 젊은 지식인의 혁명막다른 길에 부딪혔을 때, 양명(梁明)은 소비에트 러시아로 망명하는 길을 택했다. 1930년 중반, 국외 근거지에서 공산당 재건 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국제당 동방비서부의 지휘를 직접 받지 않는 당 재건 운동은 모두 ‘종파’로 간주되...2025-03-29 23:21
‘굿데이’에 좋은 날 언제 올까7년8개월 만에 지드래곤이 돌아왔다. 기획사와의 재계약 여부로 케이팝 아이돌의 향후 운명이 갈린다는 ‘7년의 저주’보다도 더 긴 공백기를 거친 뒤였다. 2025년, 뮤지션 지드래곤은 일단 정량적 지표로 자신을 증명했다. 정규 3집 선공개 곡 ‘파워’(PO₩ER)부터 타...2025-03-29 21:02
박수 칠 때 떠나는 김연경, 그가 코트에 남긴 유산“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라는 찬사를 받아온 김연경이 이번 시즌을 끝으로 영원히 배구 코트를 떠난다. 종목 불문, 스포츠 스타들은 늘 가슴에 “박수 칠 때 떠나라”라는 격언을 품고 살지만,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이는 극소수였다. 김연경은 2025년 2월...2025-03-29 18:01
가지 치고 분갈이할 때 새 글이 온다봄이 되면 하는 일이 있습니다. 마당에 있는 보리수나무와 산수유나무를 가지치기하는 겁니다. 가지들이 곧게 자라게 하고, 같은 값이면 보기도 좋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가지가 한 방향으로 자라야 바람도 잘 통하고 서로의 성장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다른 방향으로 뻗어 어깃장...2025-03-29 17:02
“인권을 정치화하지 말라!”는 반인권적인 말다른 학문과 구별되는 역사만의 특징이 있다면 아마 모든 것을 시간 속에 놓고 바라본다는 점일 터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중요히 여긴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역사는 그게 무엇이든 자연히 주어진 것, 고정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긴 흐름 가운데서 대상의 변화와 지속, 연...2025-03-25 11:45
국가 붕괴의 A to Z인류가 등장한 이래 모든 나라는 결국 멸망을 피하지 못했다. 내전, 혁명, 외부와의 전쟁 등 폭력의 나선 끝에 파국을 맞았다. ‘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엘리트, 반엘리트, 정치적 해체의 경로’(피터 터친 지음, 유강은 옮김, 생각의힘 펴냄)는 이처럼 100~200년...2025-03-22 22:15
봄의 절정이 맛과 향으로 팡팡 봄나물의 계절이 왔다. 나는 제철 나물이 될 식물들을 만나고 맛볼 생각에 파릇파릇 새순처럼 들뜬다. 낮의 길이가 밤의 길이를 추월하는 춘분을 기점으로 양지를 골라가며 각종 새순이 돋는다. 민가 주변에선 냉이와 달래와 쑥이 대체로 먼저 나온다. 좀더 깊은 골짜...2025-03-22 20:42
15살이 상한선? ‘소녀 산업’의 덫얼마 전 처음 접하고 잠깐 현실을 부정했던 단어가 있다. ‘7세 고시’와 ‘4세 고시’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유명 학원과 영어유치원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을 이르는 말이었다. 특히 지긋지긋하고 지독한 시험을 의미하는 고시를 처음 치르는 나이가 4살까지 내려가는 동안, ...2025-03-22 20:27
K문학, 노벨문학상 한 번 받고 시들 위기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한국 독자들 못지않게 환호한 분들이 있으니 바로 국외 번역자와 출판사들이다. 폴란드 출판사들은 앞다투어 “우리가 ‘채식주의자’ 폴란드어 초판을 발간했다!” “우리 출판사에서는 최신작 ‘작별하지 않는다’까지 다 냈다!” 하고 홍보에 열...2025-03-16 17:49
일터에서 눈칫밥 먹는 ‘엘더’? 그대의 꿋꿋함에 박수를“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다.”드라마 ‘미생’의 명대사다. 중년의 생활인에게 이 말은 가슴 시리게 다가온다. 어느덧 직장에서는 ‘엘더’(Elder)라는 말이 생겨나고 있다. 이는 50대가 돼서도 임원이 되지 못한 채 근근이 버티는 직원들을 일컫는 말이다. ‘리더...2025-03-15 2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