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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벌언론 황제들, 브레이크가 없다

등록 2000-11-08 00:00 수정 2020-05-03 04:21

사적 이익 추구에 용병으로 동원되는 기자들… 무소불위 파워 행사하며 대선 킹메이커를 준비한다

지난 10월27일 동아일보에서는 중대한 경영진 개편이 있었다. 김병관 회장은 이날 아침 갑작스럽게 간부회의를 소집했다. 그리고 뜻밖의 ‘충격선언’을 했다. 자신이 회장에서 명예회장으로 물러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김 회장은 지난 10월13일 ‘고대앞 YS 문전박대 촌극’ 사건에 ‘우정출연’해 언론사주의 자질론 시비를 낳으며 비판여론에 직면해 있었다.

그는 이날 간부회의에서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고려대 앞 사태는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만취한 것도 아닌데, 내가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다. 아마도 마(魔)가 씌웠던 것 같다. 본의 아니게 물의를 일으킨 것을 사과한다. 나는 회장직을 그만두고 명예회장으로 남겠다.”

김병관 회장의 ‘또다른 세습’ 준비

그는 차기 경영구도와 관련해 회장에는 오명 현 사장, 사장에 김학준 현 편집논설고문, 부사장에 자신의 첫째아들 김재호 전무를 각각 승진시켰다. 다만, 내년 2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승인을 받아야 하므로 그때까지는 현재의 체제로 가겠으며, 자신은 일단 회장에서 물러나겠다는 게 선언의 내용이었다. 김 회장의 이날 발언요지는 한마디로 “경영일선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나 앉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 회장의 이런 발표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고려대 앞 추태로 말미암아 여론이 악화되자 나온 고육지책일 뿐 본질적으로 동아일보의 체제가 바뀐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가 명예회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났다고는 하지만 돈줄을 직접 쥐고 있는 이상 동아일보에 대한 무소불위의 지배력은 여전할 것이라는 전망인 것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김병관 회장 일가가 동아일보 주식을 100%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2선 퇴진의 의미는 별로 없다. 그의 행동은 고려대 앞 술주정 사건으로 인한 자신에 대한 비난을 모면하려는 정치적 제스처일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꼬집고 있다.

실제 김 회장은 지난 96년 오명 사장을 삼고초려 끝에 동아일보로 데려오면서 세 가지를 말했다고 전해진다. 회사 경영에서 ‘전권을 행사’하도록 하겠으며, 오 사장 본인이 스스로 물러날 때까지는 내보내지 않으며, 마지막으로 아들을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뒤 사정은 달랐다. 오 사장은 ‘전권 행사’을 약속받았으나 실제로는 그동안 인사권을 한번도 행사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100만원 이상의 예산집행은 김 회장이 직접 결제를 챙길 정도였다고 한다.

김 회장의 이번 선언에는 족벌언론 체제를 더욱 강화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동아일보의 한 젊은 기자는 “2선 퇴진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힘은 그대로 유지한 채 아들인 김재호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켜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김씨 일가의 힘을 강화시킨 측면이 있다”고 풀이했다. 김 회장의 2선 후퇴 선언은 결국 또다른 세습을 위한 준비과정에 불과하다는 얘기이다. 김 전무는 95년 기획실에 입사한 뒤 사회부, 정치부 기자 경험 등을 쌓고 전무를 거쳐 5년 만에 부사장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

막대한 자금력으로 신문시장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는 중앙일보 역시 사주인 홍석현 회장 체제가 급속도로 강화되고 있다. 보광의 탈세비리 혐의로 구속됐다가 올 광복절에 사면복권된 홍 회장은 사면복권 9일 만에 중앙일보 회장에 다시 취임했다. 그의 회장 복귀가 그처럼 빠르리라고는 대다수 사람들이 미처 예견하지 못했다.

‘장자세습’ 철저히 지켜지는 조선일보

홍 회장의 사면에 대해서는 조세포탈죄로 대법원 유죄가 확정된 지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특혜 논란이 강하게 일었다. 국민여론이나 법감정뿐 아니라 사법정의와 법치주의 정신에 비춰볼 때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게 당시 국민들의 비난이었다. 서울지법의 한 판사는 “5월에 형이 확정됐는데 석달도 안 돼 사면돼 놀라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쨌든 홍 회장은 중앙일보 최고경영자로 복귀했으며, 강한 친정체제 구축에 나섰다. 홍 회장은 복귀 직후 금창태 사장에게 “경영에는 손을 떼고 신문을 잘 만드는 데만 신경을 쓰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홍 회장 자신이 직접 회사 일을 챙기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중앙일보 내부에서는 받아들이고 있다. 금 사장으로서는 편집과 경영의 두 날개 중 한 날개가 꺾인 셈이다. 중앙일보는 조만간 워싱턴총국을 지사로 승격시키면서 미국에 홍 회장 비서를 따로 둘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홍 회장은 복귀 직후 윤전부문 계열사인 (주)중앙기획을 폐업조처하고 제이프린팅이란 회사를 설립해 노동계의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홍 회장은 중앙일보 사장을 지낸 고 홍진기씨의 장남이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처남으로, 삼성코닝 부사장을 거쳐 94년 중앙일보에 입성했다.

일찍부터 견고한 사주지배체제를 구축해 온 조선일보는 이미 사원과 사주가 일체화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여왔다. 조선은 특히 사주지배체제와 관련해 장자세습이란 집안관례가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 조선일보 족벌가문의 3세대인 방상훈 사장과 방성훈씨는 각각 방일영 고문의 장남과 방우영 회장의 독자다. 방씨 일가의 장자세습 관습으로 조선일보는 방상훈 사장이 계속 맡고, 방성훈씨는 스포츠조선의 경영권을 가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방성훈씨는 최근 일본 게이오대학 연수를 마치고 귀국해 조만간 조선일보 편집국으로 돌아올 것으로 알려졌다.

족벌체제 언론의 최대 폐해는 무엇보다 보도와 편집에 대한 사주의 강한 입김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사주가 공적인 이익보다는 사적인 이익을 추구할 때 그 폐해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의 최근 상당수 기사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다. 김 회장은 그동안 정권쪽에 대해 몇 가지 ‘민원’을 제기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경기도 고양에 있는 농지 2만6천여평의 지목을 택지로 변경해줄 것, 충정로 사옥을 정부에서 매입해 줄 것, 서울 구로동에 있는 옛 동아방송 송신시설 부지 2만7천평의 환수소송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도와줄 것, 이자율이 높은 은행대출을 싼 이자의 대출로 전환해줄 것 등이었다. 실제 김 회장은 지난 7월 김대중 대통령과 만나 이런 요구사항을 들이밀었다. 김 대통령은 일단 “검토해보겠다”고 답변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김 회장은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졌다고 판단하고 무척 고무됐다는 후문이다. 당시 동아일보는 회사와 노조간에 임금협상 문제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는데 김 회장은 청와대에서 돌아와 곧바로 노조쪽의 협상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김 회장은 그러면서 “오늘 대통령을 만나고 왔는데 기분이 매우 좋다”고 말했다고 한다. 민원이 해결됐다고 보고 노조쪽에 선심을 쓴 셈이었다.

“말 안 들으면 기사로 조진다”

하지만 정부는 동아일보가 제기한 무리한 요구에 난색을 표명했다. 그뒤부터 동아일보의 논조가 급격히 정부비판쪽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거기에다 최근에는 서울시 종로구 원서동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이사장 김병관 회장) 소유 땅 매각 문제도 한 요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언론계에서는 보고 있다.

문제의 땅은 현재 남북회담사무국이 사용하고 있는 건물 3500평을 비롯해 모두 1만200여평. 이 땅은 고려중앙학원이 1929년께 사들인 것으로, 1972년 당시 정부와 10년 무상사용의 계약을 맺었다. 계약서는 당시 중앙학원 이사장이던 이활씨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명의로 돼 있다.

이후 83년부터 건물면적 3500평에 대해서만 토지임대료를 지급했다. 정부는 3∼4년마다 한번씩 임대료를 올려줬다고 한다. 올해 임대료는 2억5300만원. 그런데 김병관 회장은 오래 전부터 이 땅을 되찾아야 한다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고 한다. 중앙학원쪽은 올해 3월 사무국에 “10여년간 땅을 무상으로 점용하고 이후 18년 동안 저가의 임대료를 내 막대한 피해를 봤다”면서 이를 보상하는 차원에서 평당 500만원씩 매수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땅값으로 500억원 정도를 요구한 것이다. 중앙학원쪽과 통일부, 남북회담사무국은 몇 차례 부지매매를 위한 협상을 했으나 가격차이가 너무 커서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기획예산처는 최근 통일부가 부지매입을 위해 신청한 209억8500만원을 내년도 예산에 반영했다. 그런데 묘한 것은 동아일보가 9월6일치 1면에 ‘내년 예산안 진통-세금 과다징수 무리’ 등의 제목으로 예산안을 비판하는 기사가 나간 뒤 209억의 예산안이 결정됐다는 점이다. 기획예산처의 한 관계자는 “땅주인이 계속 요구했다. 다 알지 않느냐”고 말해 동아일보쪽의 압박이 만만치 않았음을 시사했다. 이 관계자는 “어느 건물주라도 그렇게 많은 땅을 무상임대를 해서 가만히 있겠느냐 동아쪽의 요구는 상당히 이해되는 측면이 많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중앙학원쪽은 사유재산을 매매하면서 공시지가대로만 받을 수는 없다고 맞서고 있어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학원쪽은 “정부가 사실상 10년 동안 1만200여평을 무단으로 썼고, 담을 치고 중간에 도로를 낸 채 3500여평만 쓰고 있다”며 “이에 해당하는 임대료만 받아온 데 대해 이미 손해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김 회장은 1주일에 1번 정도 학원 사무실에 들르는 등 부지매매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지난 9월5일 중앙학원쪽은 통일부에 “사지 않으려면 나가라”는 공문까지 보낼 정도였다. 이와 관련해 중앙학원의 한 관계자는 “통일부가 신청한 부지매입 비용이 우리쪽 생각에 크게 미달해 우리 뜻을 강하게 전하기 위해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동아일보 내부에서도 격론

동아일보가 최근 ‘대구 부산엔 추석이 없다’(9월9일치), ‘청와대가 북 심부름?’(9월14일치) 등 잇따라 정부때리기 기사를 내보내는 배경에 대해서도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실제 ‘대구·부산지역에는 추석이 없다’의 경우, 이 기사를 쓴 기자들조차 그런 형식으로 기사가 나갈 줄 미처 모르고, 다만 우리나라 전체 지역경제의 어려움을 다루는 시리즈물의 첫회 정도로 생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북한에서 보내온 송이버섯을 청와대가 전달한 데 대해 강한 비판 기사를 내보낸 것도 김 회장의 지시였다고 전해진다. 김 회장은 편집국 부장들을 불러 “빨갱이가 보낸 것은 안 먹는다”, “기사 똑바로 써라. 우리 입장을 기사로 쓰는지 보겠다”고 지시했다고 한다.

10월3일치 초판에 실렸던 민병욱 논설위원의 칼럼 ‘동아광장-용기와 오기’는 배달판에서 본인의 동의없이 삭제됐다. 칼럼 삭제를 지시한 사람은 바로 김 회장. 초판이 발행된 지 1시간 정도 지난 이날 오후 7시40분께 어경택 논설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민 위원의 칼럼을 삭제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이에 대해 어 실장은 “사설과 민 위원의 칼럼이 상치되기 때문”이라는 해명을 했지만, 동아일보 기자들은 민 위원이 한나라당을 강도 높게 비판한 것에 대해 김 회장이 화를 내며 전화를 한 뒤 삭제됐다고 전한다.

가 지난 11월3일치 1면에 쓴 정현준 사설펀드 가입자 실명 기사를 두고도 내부에서 무척 강한 비판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한나라당의 이주영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권노갑 민주당 최고위원, 김옥두 사무총장, 김홍일 의원, 박준영 청와대 공보수석의 이름을 실명으로 거론하며 이들이 정씨 사설펀드에 가입한 것이 맞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이 의원의 주장은 본인이 국회 정회 뒤 사석에서 한 말(“특별한 정보가 있어서 발언한 것이 아니다. 일부 언론에서 크게 나왔고 시중에 그런 얘기들이 많이 나와서 확인차원에서 한 것이다”)처럼, 주장의 신빙성 등에서 1면 머릿기사로 다룰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는 게 언론계의 대체적인 평가였다. 실제 처럼 1면 머릿기사로 4명의 이름을 제목에까지 넣어 편집한 신문은 한 군데도 없었다.

애초 편집회의에서도 정치부장과 사회부장 등은 이 기사를 크게 쓰는 데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편집국장은 “위에서 시켰다”며 밀어붙였다고 한다.

이 기사가 나가자 일선 기자들의 반발이 무척 거셌다. 에서는 매일 각 부서에서 초판신문 내용을 검토하는 리뷰회의가 열려 그 결과를 컴퓨터망에 띄우는데 정치부 리뷰결과는 매우 격렬했다고 한다. “오늘 우리 신문 1면 톱은 기사가치나 근거로 보나 지나치게 컸다.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다. 우리 사시에도 어긋나고 누가 봐도 정치적 의도를 갖고 쓴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선배들이 우리에게 가르친 것이 뭔가.” 대략 이런 요지였다고 한다.

물론 언론이 정부의 실책을 비판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이나 비판 대상이 상궤에서 너무 벗어나고 있다는 점에 언론계는 주목하고 있다.

가 한국통신과 싸운 이유

그런 와중에서도 동아일보쪽은 충청로 사옥에 해양수산부를 입주시키는 데 성공했다. 동아쪽에서는 “매입이 어렵다면 정부부처를 입주시켜달라”며 해양수산부가 적당한 것 같다고 제안했다. 곤혹스러워진 청와대는 해양수산부가 당시 자민련 몫이라는 이유로 자민련에 공을 넘겼고, 자민련쪽의 정상천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은 결국 동아일보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중앙일보도 최근 한국통신 기사 등과 관련해서 여러 의혹을 샀다. 는 지난 10월19일 1면 ‘한통 분할론 급속 대두’라는 기사에서 한국통신이 구조조정 대신 문어발식 확장으로 수천억원의 손실을 보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수술이 시급하다는 지적과 함께 3일 연속기획으로 ‘분할론 왜 나오나’, ‘방만 경영 백태’, ‘지지부진한 민영화’를 보도했다. 이에 대해 한국통신 노동조합은 지난 10월21일 에 광고를 내 보도가 특정재벌의 이해를 대변한 음해성 기사라며 반발했다. 한국통신의 한 관계자는 “노벨평화상 축하광고가 에만 실리지 못했다. 한통 기사가 나가기 전 중앙 광고국에서 광고를 요구해 왔으나 조율이 잘되지 못했다”면서 광고문제로 ‘찍힌’ 탓이라고 말했다. 한통의 다른 관계자는 “광고문제 외에 한통이 내부적으로 제3의 광고대행사를 검토하고 있는 것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면서 “현재는 피닉스컴과 제일기획이 한통 광고대행사로 지정돼 있는데 홍석현 회장 동생이 대표로 있는 피닉스컴을 다른 광고대행사로 교체하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광고대행사의 한 관계자는 “IMT2000과 관련한 측면이 더 큰 것 같다”고 말했다. IMT2000과 관련해 삼성전자가 단말기 방식으로 동기식을 채택했는데 LG텔레콤과 SK텔레콤에 이어 한국통신마저 비동기식 방식을 고집하고 있어 이를 제어하기 위해 한통을 비판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중앙일보쪽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한다. 중앙의 한 관계자는 “그 보도들은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에 대해서는 한번 짚어봐야 한다는 의견이 내부적으로 제기된 데 따른 것”이라면서 “한국통신은 문제가 많은 만큼 앞으로도 문제점이 계속 불거진다면 지속적으로 보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의 한 기자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홍 회장이 한국통신 비판 기사를 쓰라고 지시한 것은 아닌 듯하다”면서도 “그러나 그 기사는 어쨌든 홍 회장의 마음에 쏙 들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홍 회장은 한국통신 첫 비판기사가 나간 날 낮에 차장급 이상 기자들과 점심식사를 함께 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 회장은 이 자리에서 한국통신을 비판한 기사에 대해 무척 대견스러워한 것으로 전해진다. 편집국 간부들이 홍 회장의 심기를 읽고 있는 상황에서 2∼3일 계속해 한국통신을 강하게 비판하는 기사가 나온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는 것이다.

홍 회장의 생각을 기자들이 잘 따른다

언론계에서는 몇몇 족벌언론사 사주들이 킹메이커의 역할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킹메이커를 자임한 것은 애초 조선일보가 ‘원조’격이었는데 이제 조선·중앙·동아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97년 대선에 친이회창의 입장을 분명히 한 중앙일보의 경우 서서히 킹메이커 구도형 체제를 짜려는 형국이라는 게 회사 안팎의 진단이다. 홍 회장은 중앙일보가 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밀었다가 실패한 뒤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다가 몇 개월 뒤 부장단들과 식사를 함께 했는데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정권교체가 될 수도 있고, 신문이 그렇게 무리하게 베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이에 대한 당시 중앙일보 안의 반응은 두 갈래였다고 한다. 하나는 “회장이 참 괜찮은 사람인데 밑에서 보좌를 못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식으로 입장을 바꿀 수가 있는가. 사실 대선과정에서의 보도 방향은 자신이 모두 결정해놓고 이제와서 아랫 사람들에게 떠넘기느냐”는 것이었다.

중앙일보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홍 회장이 생각이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당시 대선 과정에서 기사 방향을 오도해 결국 자신과 중앙일보의 처지를 어렵게 만든 책임자들을 미워해야 옳다. 미래 예측력도 없고 기사방향만 왜곡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홍 회장은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중앙일보 직원들에 따르면 홍 회장은 현재의 정권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권’으로 여기는 것 같다고 한다. 중앙의 한 젊은 기자는 “홍 회장은 자신이 잘못된 정권, 실패한 정권으로부터 부당하게 핍박을 받은 것으로 이미지를 만들려고 한다. 따라서 현 정권을 실패한 정권으로 몰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는 이런 홍 회장의 생각을 편집국에서 잘 알고 따라준다는 데 있다”고 덧붙였다.

조선일보 역시 92년, 97년 대선 등 지금까지 관행으로 볼 때 곧 킹메이커로서의 움직임을 가사화할 것으로 언론계에서는 예측하고 있다.

동아일보의 김병관 회장은 둘째아들인 김재열(31)씨를 정치인으로 만들기 위해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쓰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나중에 잡음이 없도록 군대도 전방으로 보내고, 그동안 꾸준히 정치인들에게 소개시키는 자리도 만들어 왔다고 한다. 이들 가운데는 정아무개, 손아무개 의원 등 여야 중진도 많이 포함돼 있는 걸로 전해진다. 이들과의 만남 때, 김 회장은 “내 아들을 정치인으로 키우려고 하니,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해왔다고 알려지고 있다. 재열씨를 삼성 이건희 회장의 둘째딸 서현씨와 결혼시켜 삼성과 사돈관계를 맺은 것도 재열씨의 정치적 장래를 고려한 간단치 않은 포석 같다는 게 언론계의 분석이다. 재열씨는 고교 시절 미국유학을 떠나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인터넷비즈니스를 공부한 뒤 현재 샌프란시스코 근처 실리콘밸리 한 벤처기업에 취업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경영체제’ 도입은 허공의 메아리로

문제의 심각성은 족벌경영체제 아래의 언론보도가 그릇된 방향으로 흘러가도 이를 견제할 내부 장치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족벌체제 강화와 함께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소수로 전락하면서 입지를 잃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그 대신 족벌체제에 편승한 친위세력이 굳건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점차 무기력증에 빠져드는 데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동아일보가 하락추세에 있다고 여기는 동아일보 내의 많은 사람들은 “난국을 타결하는 길은 전문경영인체제를 도입하는 것밖에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목소리는 허공의 메아리로 돌아올 뿐이라고 한다. 오히려 친위세력들의 파워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의 경우 ㅇ씨, 또다른 ㅇ씨, ㅎ씨 등이 대표적인 핵심 친위파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병관 회장은 평소에 술을 마시고 ‘기행’을 많이 하지만 취중에도 자신에게 싫은 소리를 한 사람에 대해서는 몇년이 지나도 정확히 기억한다고 동아일보 사람들은 전한다. 특히 아들 재호씨에 대해 좋지 않게 이야기하려면 인사에서 철저히 소외될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게 동아일보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중앙일보의 경우도 홍 회장 체제에 빠르게 편입되고 있다. 이름을 밝히기 꺼려한 중앙일보의 한 기자는 이렇게 진단한다. “예전에 이건희 삼성회장이 오너일 때는 오히려 오너의 지배가 약했다. 중앙일보 사장이라고 해도 이건희 회장과 만나는 횟수로 따져보면 편집국에 있는 사람 중에 더 많이 만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바뀌었다. 처음에는 홍석현 회장이 진짜 오너인가 반신반의도 있었지만 진짜 오너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충성도가 부쩍 높아졌다.” 중앙일보에 처음으로 ‘사내 폴리틱스’라는 말이 생겨난 것도 홍 회장 체제 이후부터라고 한다. 중앙일보에서는 97년 대선 이후 외국 등에 나가 있던 ㅈ씨, ㅁ씨, ㅇ씨 등이 다시 복귀해 홍 회장의 친정체제를 더욱 탄탄히 구축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한국사회에서 언론은 그 자체로 이미 확고한 권력이다. 엄청난 힘을 행사한다. 더이상 정치권력의 지배를 받지 않으며 정치권력이 통제할 수도 없다. 되레 정치권력은 이제 언론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그들에 의해 휘둘리는 형국이다.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지금, 여기’의 언론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무소불위의 파워를 행사하는 진짜 권력은 기자들이 아닌 언론사의 사주들이다. 그러나 과연 그들은 그런 힘을 행사할 자격이 있으며 그들의 권력 행사는 정당한가?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는 오늘이다.

이창곤 기자goni@hani.co.kr

조계완 기자kyewan@hani.co.kr

김성완/ 미디어오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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