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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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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보는 자들’에게 저항하라

등록 2000-10-25 00:00 수정 2020-05-03 04:21

CCTV·이메일 검열 등 생활 깊숙이 들어온 감시시스템… 전국민 차원의 논의와 대책마련을

경기도 고양시 화전동 ㄷ운수 147번 버스(서울 75사 1774) 안건모(42)씨. 그는 운전석에 앉을 때마다 맘이 편치 않다. 운전석 머리 꼭대기에 달린 폐쇄회로 TV(CCTV) 카메라 때문이다. 담뱃갑 크기의 이 카메라는 안씨의 표정과 목소리까지 일거수일투족을 판박이처럼 담아낸다.

버스 문이 열릴 때나 승객이 요금함에 돈을 넣거나 할 때면 천장에 달린 센서를 통해 어김없이 카메라가 돈다. 카메라는 운전석은 물론 버스 뒷문까지 모조리 잡아챈다. “버스 문을 열 때마다 사업주가 내 몸을 스멀스멀 훑는 것 같아 기분이 몹시 좋지 않습니다.”

CCTV에 불쾌한 운전기사들

벌써 1년10개월째. 이젠 그러려니 할 때가 됐다. 하지만 안씨는 아직도 문득문득 불쾌감을 지울 수 없고, 혹 아는 사람이라도 타면 괜스레 자신도 모르게 움츠리며 말을 삼가게 된다고 한다. 스스로 “회사에서 내놓은 골통”이란 안씨가 이럴 정도면 다른 운전기사들은 더할 나위가 없다.

ㄷ운수는 매일 각 버스의 녹화테이프를 걷어 여직원 2명에게 살피도록 하고 요주의 인물의 경우에는 관리자가 직접 살피기도 한다. ㄷ운수 관계자는 “운전기사들의 ‘삥땅’을 막고 기사들이 담배를 못 피우도록 하는 등 운전상 안전을 위해서 카메라를 설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씨 등 기사들은 “누군가 나를 엿보고 있다는 생각에 불쾌감을 지울 수 없다”면서 “명백한 사생활 침해”라고 반박했다. ㄷ운수의 차량에 설치된 카메라는 버스 안 승객의 표정도 일일이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거동 하나하나가 테이프에 기록돼 누군가가 살펴보게 된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들은 매우 드물다. CCTV는 기사 500명에 일반버스, 좌석버스 등을 소유하고 있는 고양시 ㅁ운수 등 수도권은 물론 지방의 웬만한 시내버스에서 거의 설치돼 돌아가고 있다.

CCTV를 이용한 ‘감시’는 버스만의 현상이 아니다. CCTV는 어느새 우리의 일상 속에 친숙한(?) 기기가 됐다. 은행, 백화점, 버스터미널, 여관, 러브호텔 등등 그 어딜 가도 CCTV는 어김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동안 우리 사회에 ‘몰카’신드롬을 불러일으킨 것도 이 CCTV이다.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는 데이터 수집·분석시스템(DAS·Data Acquisition System)이라는 작업관리 컴퓨터 시스템이 설치돼 있다. DAS는 또다른 첨단화된 작업통제시스템. 작업자는 일을 시작할 때, 화장실에 갈 때, 휴식시간을 가질 때, 식사하러 갈 때, 퇴근할 때마다 일하는 기계에 부착된, 노트북 크기의 터치패널에 자신의 움직임을 입력하게 된다. 이 시스템에 대해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쪽은 “몇시 몇분에 그 작업자가 얼마나 생산했는지 실시간으로 체크된다”며 “교대로 돌아가는 각 조의 생산량이 얼마나 되는지 리얼타임으로 중앙전산컴퓨터에 자동 집계돼 관리된다”고 설명했다.

공장쪽은 물론 작업장 감시가 아니라 ‘생산관리’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작업자가 터치패널에 자신이 취할 행동을 입력하는 순간 이 작업자의 움직임 하나하나는 곧바로 중앙전산시스템에 체크된다. 결국 노동자는 항상 누군가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긴장해 있어야 하고 잠시 쉬거나 짬을 내기도 어렵다.

114 안내원들의 친절도를 감시한다

홍익대 신병현 교수(경영학)는 DAS시스템에 대해 “생산성 향상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현장에 있는 노동자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통제함으로써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것”이라며 “이런 노동강도 강화의 뒤편에는 감시의 얼굴이 숨어 있다”고 강조했다.

현대자동차 전주공장도 비슷한 작업장 감시체제를 갖추고 있다. 이 공장에 도입된 알에프(R/F·라디오주파)카드는 라디오주파를 이용한 새로운 전자신분증이다. 정문을 비롯한 회사 곳곳에는 판독기가 설치돼 있어 이 카드를 지닌 노동자가 판독기로부터 1m 안을 지나치기만 하면 누가 어디에 있는지 곧바로 자동 인식된다. 따라서 회사는 노동자의 출퇴근 여부나 특정장소 출입 여부, 출입시간 따위의 정보를 언제든지 앉아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공장 관계자는 “노동자의 출퇴근과 이에 따른 급여관리 등 인사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일 뿐 출퇴근 관리 이외의 다른 ‘노동감시용’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이 시스템은 감지기에서 소리가 안 나도록 조정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판독기가 어느 곳에 추가로 설치돼 있는지 알 수 없는 만큼 노동자들의 전체 노동과정이 감시와 통제 아래 놓일 수 있는 셈이다. 전주공장의 알에프카드는 지난 98년 도입이 처음 시도됐을 때 노조와 회사쪽이 ‘작업장 감시’를 둘러싸고 논란을 빚었으나 결국 99년 1월부터 실시됐다.

이 카드는 업그레이드를 통해 인식거리를 50m 이상 넓힐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업장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감시장치를 통해 작업장에 들어오면서 나갈 때까지의 노동자의 행동 하나하나가 감시당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감시체제는 제조업뿐만 아니다. 서비스 업종쪽으로도 급격히 퍼지고 있다. 한국통신은 지난 98년부터 포커스(FOCUS)라는 고객만족도 평가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 제도는 상급관리자들이 고객인 척 위장해 114안내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친절도를 체크하는 방식이다.

한국통신 안내사업부 관계자는 “고객서비스 차원에서 전국 10개 지역마다 무작위로 뽑아 114안내원들에게 고객을 가장한 전화를 걸어보고 있다”며 “덕분에 고객에 대한 안내원들의 친절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한국통신은 분기별로 포커스를 실시해 부서단위로 내부평가를 하지만 안내원 개개인에 대한 평가자료로는 쓰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지난 6월 노동조합이 이 제도를 “노동자의 업무를 감시하는 제도”라며 반발한 것을 계기로 개개인은 평가대상에서 제외하기로 노사가 합의한데 따른 것이다. 과거에는 전화안내원 개개인의 친절도가 평가돼 낮은 평가를 받은 안내원은 인사와 급여 등에서 불이익을 당해왔다.

‘직원 이메일 검열’은 오래된 일

첨단기술에 의해 자신의 노동과정이 감시당하기는 사무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증권사의 경우, 거래 주문담당 직원들은 고객과 통화하는 모든 내용이 녹음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전화통화내용을 녹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거의 전 지점에 설치해 놓았기 때문이다.

증권업계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대우증권은 전 지점에 통화내용 녹음 시스템을 설치했고 LG투자증권도 마찬가지다. 증권사들은 “금융분쟁방지와 고객 및 직원보호 취지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라며 문제없다는 태도. 하지만 직원들은 녹음의 취지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사생활보호 측면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조처”라는 반응이다.

정보화 사회가 진척되면서 새로운 감시의 양상도 생겨났다. 온라인 감시체제다. 삼성SDS 등 시스템통합업체를 비롯한 많은 기업들은 직원들의 이메일을 일일히 검열해 온 지 오래다. 삼성전자의 경우에는 최근 외부로 이메일을 보낼 때 이를 참고인, 즉 회사관리자에게도 동시에 보내도록 지침을 내렸다.

노동이론정책연구소 허은영 연구원은 “90년대 들어 신경영전략의 일환으로 기업마다 도입을 시도했던 작업장 감시제도가 당시에는 노동자들의 거센 반발로 무산되는 경향을 보였으나 97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재도입되거나 새로운 형태로 도입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시내버스, 공장 작업장, 증권사, 정보통신업체 등 대기업 등에서 보여지는 감시 사례들. 이는 그저 일부 일터에서 실시되는 특이한 사례일 뿐인가? 그렇지 않다. 이들 사례는 정보기술 등 각종 기술의 발달로 어느덧 우리 생활 속으로 감시시스템이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생생한 실례이다. 동시에 감시시스템이 얼마나 급속히 보편화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양상이기도 하다. “감시의 보편화는 국가권력뿐 아니라 다른 사회적 주체들도 감시의 대상이자 주체가 되는 상황이다.… 휴대용 카메라는 엿보기의 도구로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다. 본래 엿듣기의 도구인 도청장비를 구입하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터넷 메일을 훔치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홍성태·사회학자)

전문가들은 일터 등에서 깊숙이 들어온 일상적 감시도 중요하지만, 감시문제의 핵심은 여전히 국가와 국민의 관계라고 진단한다. 국가가 국민을 대상으로 포괄적인 감시를 일상적으로 행하는 사회.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해, 복지정책을 펴기 위해”라는 명분으로 이뤄지는 일상적이고 보편화된 국가감시….

실제 검·경 등 수사기관의 각종 도·감청과 이메일 검열, 지문날인의 디지털화 등 국민을 대상화한 국가감시는 갈수록 첨단화, 공고화하고 있다. 경찰의 지문 전산화작업은 이런 국가기관의 개인감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례이다. 지문 전산화작업은 주민등록증 발급 신청서에 찍힌 열손가락 지문을 컴퓨터에 입력해 이른바 전자지문을 채취하는 작업을 말한다.

피해망상의 그늘

경찰은 일찍부터 만 17살 이상 국민의 열손가락 지문을 컴퓨터에 전산입력 해왔다. 경찰청 강대형 감식과장은 “애초 2001년 말까지 계획된 전산화 작업을 올해 말까지 끝낼 예정”이라면서 “이렇게 되면 3000여만명의 지문날인이 디지털화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 작업이 끝나면 그동안 일주일에서 한달 가까이 걸리던 범인색출과 변사자 신원 확인작업이 한두 시간 안에 이뤄져 경찰수사 업무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경찰 지문전산화는 모든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잘못된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이 기록이 악용될 경우에는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정감사에 제기된 통신감청과 금융계좌 추적 등 국가기관에 의한 개인감시 실태는 여전히 놀랍다. 대법원이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에게 제출한 전기통신감청영장 청구현황에 따르면 99년 상반기에 긴급감청 허가는 82건. 2000년 상반기에는 108건이 발부돼 26건이 늘어났다. 긴급감청 영장은 법원의 허가를 받을 수 없을 정도로 긴급한 일이 발생할 경우 먼저 감청을 하고 36시간 안에 법원의 허가를 받는 사후영장을 말한다.

감시사회는 필연적으로 그늘을 잉태한다. 환자들의 피해망상에서도 그런 그늘을 읽을 수 있다. 김병후 정신과의원 원장은 “최근 들어 ‘나를 감시한다. 누군가, 국가가 나를 미행하고 있다’고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아졌다”며 감시사회의 그림자를 설명했다.

김 원장에 따르면 예전에는 구체적으로 중앙정보부 혹은 안기부가 나를 감시한다고 특정한 국가기관을 꼭 집어서 얘기했는데 요즘에는 공포의 대상이 되는 이름이 특정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저 누군가, 혹은 알 수 없는 거대한 국가조직이 나를 감시한다고 호소하는 형태라고 한다.

“인간은 누구나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무의식의 욕망, 속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CCTV, 도청, 인터넷 검열 등 감시도구가 발달할수록 내 사생활, 나아가 내 속마음까지 탄로날 것이란 두려움이 점점 심해집니다. 정신건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성인데 그게 깨집니다. (이러면) 사회 전체가 불안에 떨게 되죠.”

김 원장은 특히 “한국사회는 관심과 개입이 모든 부문에서 일상화돼 있다”면서 이런 문화가 감시불감증의 배경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즉 부모는 자식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야 하고, 회사에서도 직원들을, 직원들끼리도 서로 잘아야 한다는 문화가 결국 감시의 일상화, 보편화를 쉽게 받아들이게끔 한다는 설명인 것이다. 이러다보니 회사에서 사생활을 침해하는 이메일을 감시한다고 해도 수긍하고 마는 게 아니냐는 얘기이다.

한 비전향 장기수의 죽음

지난 10월8일 전북 익산에서 일어난 비전향 장기수 김태수(74)씨의 자살은 국가감시의 잔혹성을 잘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이다. 해방 뒤 조선노동당 지하당원으로 활동하다 1955년 체포된 김씨는 89년까지 36년 동안 긴 세월을 감옥에서 살았다. 출소한 뒤로도 96년까지 8년 동안 보안피관찰자로 감시의 그늘에서 지내야 했던 김태수씨.

익산에 거주하는 윤석남(비전향 장기수)씨는 “혹시 우리를 만나면 ‘또 뭐라고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며 불안해했다”고 전했다. 보안관찰이 끝난 뒤에도 항상 감시의 후유증에 시달렸던 것이다. 또 최근 북송 신청을 권하자 “그건 도저히 실현불가능한 일이고 신청해봤자 경찰감시만 날카로워질 뿐’이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그가 남긴 짧은 유서는 평생 감시에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 인간의 쓸쓸한 뒷모습을 전해준다.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해 초저녁 일찍 잠에 드는 사람과 같이 내 인생의 피로를 풀기 위해…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는 죽어서야 비로소 감시의 그늘을 벗어나 편히 잠들 수 있었다.

현대사회에 드리워진 짙은 그늘, 감시. 이제 우리 사회도 감시사회에 이미 접어들었다. 지문날인을 반대해온 김기중 변호사는 “(감시문제는) 이제는 개별 사안이 아니라 전체적인 관점에서 일상에 침투해 있는 감시와 통제질서를 분석하고 그 위험성을 폭로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즉 감시사회에 대한 전 국민 차원의 논의와 대책마련이 적절히 요구되는 시점이란 설명이다.

“현대사회는 거창한 구경거리의 사회가 아니라 감시의 사회다.” (미셀 푸코의 에서) 감시사회는 지금, 여기, 우리의 문제이다.

이창곤 기자goni@hani.co.kr

조계완 기자keywan@hani.co.kr

신윤동욱 기자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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