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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보수’와 차별성이 없다

등록 2003-05-23 00:00 수정 2020-05-03 04:23

청년 보수들 시각은 ‘조갑제 기자’의 확대재생산 수준… 새 주역으로 등장하기엔 아직 역부족

그들의 주장은 조갑제 편집장, 시스템클럽을 운영하는 지만원 박사, 97년 대통령후보 사상 검증으로 유명해진 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 젊은 보수 사이트 자유게시판 등에는 조갑제·지만원씨의 글을 퍼다 올리거나 공감을 표시하는 열성팬들이 적지 않다.

수백개의 가지가 뒤엉킨 등나무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낸다. 복잡다기한 등나무 줄기들도 한 뿌리에서 뻗어나왔다. 최근 등장한 이른바 ‘젊은 보수’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 젊은 보수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5월31일 창립발기인대회를 앞둔 청년우파연대(http://cafe.daum.net/blueff)의 인터넷 카페 첫 장면은 퍽 인상적이다. 드라마 의 배경음악인 장중한 러시아 노래가 깔리면서 ‘청년우파여! 조국의 자유를 수호하고 나라를 바로 세워 자유통일 대한민국을 이룩하자!’는 글이 나타난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지난해 말 촛불집회의 반미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가 단체 설립의 바탕이 됐다. 인터넷 카페 회원이 1500명을 넘었다. ‘청년이 나라의 주인이며 조국의 희망이다!’란 구호를 내세운 이 단체의 ‘우리의 요구’는 △한총련은 이적단체, 합법화 반대한다 △전교조는 친북반미교육 중단하라 △청년실업해소 특별대책 수립하라 등이다.

청년우파연대는 △2004 총선청년연대(부패·무능·부도덕·용공·철새 정치 5적 추방하자, 파병반대·좌익인사들에게도 낙선운동의 쓴 맛을 보여주마) △안티 국민의 힘(명계남·문성근 엿먹여서 아름다운세상 만들자) △안티한겨레 시민연합(친북·반미 망국언론 한겨레신문을 규탄한다) 등 3개 모임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청년우파연대소속 전국대학생 모임인 청년한국운동연합도 준비하고 있다.

미래한국연구회(cafe.daum.net/futurekorealab)는 지난 2월 인터넷에서 결성돼 3개월 만에 990명의 가입자를 확보했다. 이들은 우파의 논리가 단순히 좌파에 안티를 거는 논리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합리적이고 젊은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대안과 전망을 제시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헌법수호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방안들을 모색하고 있다.

2001년 8월 언론사 세무조사 뒤 만들어진 시민과 함께하는 대학생연대(www.withcitizen.dawa.to)는 △정부는 조선·동아·중앙일보 등 보수언론에 대한 언론탄압을 즉각 중단하고 사주고발을 취하하라 △정부는 유실된 공적자금의 행방을 추적해 불법제공 및 사용내역을 철저히 수사하라 △퍼주기식 대북정책을 폐기하고 상호주의에 입각한 대북정책을 수립하라 △국가보안법을 유지하고 좌익사범을 체포하라 △무의미한 김정일 답방 추진을 즉각 중단하고 대공안보태세를 강화하라는 주장을 펼친다.

젊든 늙든, 보수를 표방하는 단체들의 ‘최대공약수’는 반북·반공 이념이다. 이들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고 북한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편 이들은 ‘선 성장, 후 분배’를 선호하고 이를 위해 성장에 방해되는 노조의 파업에는 거부감을 드러낸다. 조금 차이는 있지만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불신을 숨기지 않는다. 이들 인터넷사이트 자유게시판 등에는 생각이 다른 상대방을 ‘빨갱이’, ‘김정일 추종자’로 몰고, 여차하면 ‘전라도 깽깽이’라는 지역감정까지 동원해 공격하는 거친 글도 종종 등장한다. 이들은 현안과 관련해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한총련 합법화 반대, 반미운동 반대, 전교조 반대 등을 주장한다.

젊은 보수의 주장을 접하다 보면 별로 새로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야기란 느낌도 든다.

젊은 보수의 주장은 ‘늙은 보수’인 조갑제 편집장, 시스템클럽을 운영하는 지만원 박사, 97년 대통령후보 사상 검증으로 유명해진 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 젊은 보수 사이트 자유게시판 등에는 조갑제·지만원씨의 글을 퍼다 올리거나 공감을 표시하는 열성팬들이 적지 않다. 청년우파연대 등 몇개 젊은 우파 사이트에 가입했다는 대학생 이아무개씨(22)씨는 “조갑제 편집장이 쓴 글과 한국논단에 실린 글을 자주 읽는다. 자유민주주의가 흔들리는데 이런 글을 읽는 거야말로 애국운동이다. 주위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청출어람’보다는 ‘초록동색’

보수세력 사상의 젖줄 구실은 ‘기자 조갑제의 세계’(www.chogabje.com)가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신정보 파일에는 현안에 대한 분석과 시각이 정리되어 있고, 토론방에서는 ‘친북 좌파’에 대한 성토가 불을 뿜는다. 토론방에는 가끔 ‘조갑제 선생님’에 대한 눈물 어린 헌사도 등장한다. 현실적으로 보수세력의 주장은 ‘조갑제 기자’의 주장과 시각을 확대·재생산하는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젊은 보수들의 주장을 살펴보면서 ‘청출어람, 후생가외(後生可畏)’를 기대했지만, 늙든 젊든 보수는 초록동색(草綠同色)임을 확인하게 된다. 젊은 보수가 단순히 젊다는 이유로 더 이상 사회적 주목을 끌기는 힘들 것이다. ‘장강(長江)의 뒷물이 앞물을 민다’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젊은 보수가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새 주역으로 등장하려면 늙은 보수에 대한 ‘사상적 종속성’부터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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