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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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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격차, 폭풍전야!

등록 2000-10-18 00:00 수정 2020-05-02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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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부른 심각한 분배구조 왜곡… 빈곤이 고착된 20 대 80 사회로 가는가

김아무개씨는 모 시중은행 VIP클럽 회원이다. 한때 임대사업소득자였던 그는 이 은행에 30억원 이상을 예치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일부 계좌는 손자 명의로 분산·운용하고 있다. 이 분산된 계좌를 통해 그는 초등학교 3, 4년생인 손자들에게 영어공부 과외를 시켜주고 있다.

외국인을 초빙해 저녁시간에 일주일에 두번씩 영어공부를 하게 하는데, 1인당 50만원씩 과외비로만 매달 100만원을 쓴다. 이 외국인이 전문강사가 아니라 아는 사람을 통해 소개받아서 그나마 싼 편이라고 한다.

전혀 다른 출발선, 세명의 어린이

역시 이 은행 VIP회원이며 고등학생 손자를 둔 60대 할아버지인 나아무개씨. 그 또한 유학 가 있는 손자에게 이자소득만으로 달마다 5천달러, 많게는 1만달러씩 부치고 있다. “용돈만 5천달러를 부치는 게 많지 않느냐”는 물음에 나씨는 “외국에서 차도 몰아야 하고 쓸 게 많지 않겠느냐”며 대수롭지 않는 듯 되묻는다.

서울 은평구 진관외동에 사는 전원구(51)·송경순(45)씨 부부는 아들이 둘이다. 초등학교 4년(11)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둘째(7). 이 부부는 서울시 봉천9동 ‘나눔의 집’에서 일한다. 전씨는 지금 나눔의 집 음식나눔은행(푸드뱅크)에서 일하고, 송씨는 사회복지도우미로 나눔의 집 살림을 맡고 있다.

이렇게 해서 부부가 한달에 버는 돈은 모두 합쳐 150만원 남짓. 그래도 봉천동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한다는 맘에 부부는 뿌듯하단다. 이들 부부가 큰아들에게 들이는 과외비는 총 12만원. 피아노 공부를 시키고 학습지 공부를 하게 한다. 하지만 둘째아들의 과외는 엄두를 낼 수 없다.

150만원으로는 가족의 한달 생활비도 대기 어렵다. 그래서 달마다 조금씩 빚질 수밖에 없는 형편. 그래도 송씨는 아들에게 한자라도 가르치고 싶어 조금 고되지만 일을 마친 뒤 직접 가르치려 애쓴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2동에 사는 이아무개(40)씨. 그는 나이에 비해 10년 이상은 늙어보인다. “워낙 고생을 해 팍 삭았다”며 자조하는 그는 초등학교 3년에 다니는 딸을 데리고 산다.

영등포시장에서 양말 장사를 하며 “입에 풀칠”한다는 그는 방과후 딸을 근처 공부방에 보내느냐고 묻자 어처구니없어 하며 되레 실소를 한다. “학교를 마치고 공부방에 보낼 수 있는 형편이 되나요? 공짜라도 어디 완전 공짜가 있나요? 험한 세상에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게 공부보다 훨씬 나아요.”

외국인 강사와 함께 영어공부에 몰두하거나 이국의 땅에서 유학의 길을 가는 어린이,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학습지로 공부하는 어린이, 그리고 고사리손으로 어머니와 양말을 파는 또 한명의 어린이. 이들 모두 대한민국의 어린이건만 이들의 초등학생 시절은 너무나 다르다. 한쪽에서는 유학 등을 통해 미래를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생존을 위해 거리를 헤매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전혀 다른 출발선상에 서 있는 세명의 아이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 사회에 짙게 드리운 교육불평등의 모습이다. 이런 격차는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실제 96년과 99년 3/4분기의 도시가계조사자료를 이용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구제금융 이후 사교육비 지출은 96년 상위 25%가 하위25% 계층보다 4.6배나 많았다. 하지만 99년 3/4분기에는 상위25% 계층이 하위25% 계층보다 무려 9.5배나 많이 사교육비를 지출했다.

화려한 백화점 그늘의 꼬방동네

(사진/붐비는 서울 강남의 나이트클럽 주변과 지하철역의 노숙자들)

한 교육전문가는 “교육기회 불평등의 심화현상을 방치하면 사회계층의 고정화가 이뤄지고 계층간 이동이 교육통로를 통해서 폐쇄되는 사회문제가 발생한다”며 “결국 이런 불평등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 유대의 끈을 위협하게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기실 교육불평등은 위 사례에서 보듯 소득불평등에서 비롯된다. 결식아동들은 그 극명한 사례. 교육부에 따르면 98년 1월에 1만1천명 정도이던 결식아동의 수는 2000년 3월에 16만4천명으로 껑충 뛰었다. 2년 안에 무려 13.8배나 늘어난 것이다. 구제금융 이후 우리 사회를 휘감아돈 신자유주의 광풍이 많은 학부모들을 실직하게 했고, 가정을 해체케 했으며 그 여파가 아이들의 결식으로 이어진 것이다.

10월11일 서울 강남 ㄱ백화점 명품관 1층 잡화점 코너. 유명 상표가 붙은 액세서리, 구두, 보석류 매장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안내판이 눈길을 자극한다. “200만원 이상 구입시 15만원, 300만원 이상 구입시 25만원의 상품권을 드립니다.”

한 핸드백 판매점의 악어핸드백 값을 묻자 “이건 700만원이고, 또 이건 800만원”이라고 점원이 일러준다. 매장 안쪽 구두매장인 ‘잭스콜렉션’에 다가가자 코트를 날렵하게 차려입은 한 젊은 여성이 마침 부츠를 고르고 있다. 잠깐 사이 부츠를 사고 매장을 나가는데 그가 산 부츠의 값은 70만원.

일요일인 지난 10월15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골프용품점.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어머니와 함께 골프용품을 고르고 있었다. 최근 골프바람이 어린 학생들에까지 불어닥치고 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모습이었다. 어머니가 고른 도시락주머니 만한 골프화가방의 값은 무려 19만8천원. 하지만 이 학생은 “디자인과 색상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이날, 또다른 백화점의 수입품 직매점 2층. 이탈리아제 의류를 판매하는 한 매장에 수많은 여성들이 붐빈다. 한 여성이 만지작거리고 있는 검은색 롱코트의 가격표를 보니 789만8천원이다. 판매사원 서아무개씨는 “우리쪽은 수입품 중 중가격대일 뿐”이라고 말한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1동 롯데백화점의 왼쪽 골목길로 조금만 들어서면 백화점의 화려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서울의 모습이 나타난다. 다닥다닥 누더기 집들이 길게 이어져 있고, 그 집들 안을 들여다보면 0.5평∼1평이 될까말까하는 좁은 공간의 쪽방들이 성냥갑처럼 칸지어 있다. 부엌은 물론 화장실도 없다. 이 좁은 곳에서 매일 생활하는 사람들은 또 어떤 이들일까?

구제금융 이후 불평등 더욱 가속화

홍아무개(40)씨는 이 쪽방에서 하루종일 웅크리며 생을 이어가는 장애인이다. 젊은 시절 스스로 한쪽 팔을 자해한 탓에 오른쪽 팔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냉장고와 낡은 TV 하나가 유일한 가재도구인 쪽방에서 그는 다달이 10만원의 삯을 내고 기거한다. 달세를 벌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다는 그는 벌써 16년이 넘었건만 여전히 쪽방살이 신세다.

홍씨가 당장 바라는 바는 공중화장실. 그동안 사용하던 임사화장실마저 폐쇄돼 영등포역으로 가거나 아무데나 실례를 해야 할 형편이다. 홍씨는 올 초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곳에 들렀을 때 화장실을 약속했건만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라고 분통을 터뜨린다. 그의 꿈은 돈이 좀 있으면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여생을 마치는 일이라고 한다.

백화점 명품관에서 하루에 수백만원의 수입품을 거리낌없이 사는 사람들. 서울의 뒷골목 쪽방에서 하루하루 한끼의 식사를 겨우 때우는 사람들. 이들 모두 서울의 하늘 아래 살아가는 2000년 대한민국 국민이건만 그들 사이에는 도저히 맞닿을 수 없는 긴 강이 놓여 있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 구조가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소득불균형에 따른 빈부격차가 위험수위를 넘어섰으며 더욱 구조적으로 고착화하면서 확대재생산 양상을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특히 구제금융 사태 이후 이런 불평등 구조는 더욱더 깊어지고 있으며, 사회불안정 요인으로 대두될 가능성마저 다분하다.

가장 큰 문제는 소득의 양극화와 이에 따라 더욱더 깊어져 가는 빈부격차이다. 97년 1/4분기에서 99년 3/4분기까지 통계청 도시가계조사자료를 이용한 분석결과에 따르면 상위20% 계층의 소득을 100으로 보았을 때, 하위20% 계층의 소득은 97년 23.2에서 99년 3/4분기에서 18.9로 낮아졌다. 상위20% 안에 드는 사람들의 소득이 100일 때 하위20% 사람들의 소득이 18.9에 불과해 거의 5배 이상의 소득 격차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소득불균형의 확대에 대해서는 정부 또한 같은 견해를 보인다. 대통령비서실 산하 ‘삶의 질 향상기획단’이 지난 5월에 마련한 소득분배개선안에서도 분배구조의 악화를 거론하며 개선대책 마련이 시급함을 강조하고 있다. 삶의 질 향상기획단에 따르면 소득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를 통한 분석에서 도시근로자가구를 대상으로 할 때, 97년 지니계수가 0.283이다. 그러나 98년은 0.316로 증가했고 99년에도 0.320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런 증가 추세는 2000년 1/4분기에도 계속 이어져 0.325로 치솟았다.

상위20% 계층의 소득과 하위20%의 소득비율인 소득배율도 97년 4.49이던 수치가 98년 5.41, 99년 5.49로 올랐고 2000년 1/4분기에도 5.56으로 올랐다.

이런 소득불평등 구조는 도시근로자가구만이 아닌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확대·추계할 때, 더욱더 심각한 양상을 보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찬용 박사가 올해 3월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한 추계치를 보자. 전국 가구 지니계수의 경우 97년 0.399, 98년 0.440, 99년에는 0.437에 이른다. 보통 선진국 수준(0.319)에 비해 훨씬 높은 수치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로의 추락

(사진/아득한 거리. 수백만원짜리 제품들이 번쩍거리는 고급백화점의 명품관과 영등포역 주변의 ‘하꼬방’ 거리)

기업이 생산한 부가가치 중에서 인건비의 비율인 노동소득분배율은 소득불평등의 악화와 그 원인까지 잘 분명히 보여준다. 97년도 상반기에 36.7%이던 노동소득분배율은 2년 동안에 무려 13.4%나 떨어졌다. 이 통계는 그동안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따른 경제회복이 숱한 노동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했다는 걸 보여주는 수치이기도 하다.

이런 소득분배 구조의 악화는 지금 빈곤가구의 급증, 중산층 몰락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원대 행정대학원 류정순 박사에 따르면 최저생계비 이하의 빈곤인구는 대략 1천만명을 넘어선다.

그러나 최저생계비를 보충 지원받는 기초생활보장법 수급권자는 기껏 149만명 정도. 그렇다면 나머지 850만여명은 아무런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아무런 도움도 얻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는 얘기다. 중산층 비중도 97년 68.5%에서 98년 65.7%, 99년 64.8%로 대폭 떨어졌다.

류정순 박사는 “우리 사회도 상위20%는 잘살고, 나머지 80%는 더욱 빈곤해지는 20 대 80 사회로 빠르게 바뀌면서 빈곤의 고착화 또는 빈곤의 세습화가 촉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최근의 급격한 소득불평등 심화는 어디에서 비롯됐나. 전문가들은 첫번째 이유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꼽는다. 많은 은행원 등 회사원들이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회사에서 퇴출당했다. 퇴출은 물론 소득원 상실로 이어졌다. 노동시장 유연화란 이름으로 많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로 떨어졌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53%에 이른다. 이들은 같은 일을 하고도 정규직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을 받는다. 서울 약수동에 사는 전 은행원 김인옥(45)씨의 경우, 해고당한 바로 그 직장에 다시 계약직으로 재임용됐다. 그는 같은 일을 하고도 전에 비해 턱없이 적은 월급을 받아야만 했다. 구조조정과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우리 사회의 노동자 등 저소득층에게만 일방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불법행위가 아니더라도 외환위기 이후 금리폭등, 벤처열풍 등으로 급변한 경제구조도 분배왜곡의 또다른 요인이다. 또 우리 사회에서 공공연히 이뤄져온 부동산 투기, 정경유착 등 부정부패, 불법·변칙 증여도 소득분배를 악화시키는 ‘전통적’ 요인이다.

조세정의와 사회보장예산 확충을

분배왜곡으로 인한 사회적 약자는 국가가 당연히 각종 사회정책으로 보호해야 한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기본적 권리로 적어도 최저생계비는 국가가 보장한다는 것을 명시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도 바로 이런 취지에서 입법화됐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더 큰 문제는 소득분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조처인 사회복지 지출이나 조세 및 재정정책 등 각종 재분배정책이 실제 분배 개선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박찬용 박사에 따르면 98년 ‘세전 및 사회보장 급여 이전 지니계수’는 0.440. ‘세후 및 사회보장 급여 이후 지니계수’는 0.374. 따라서 사회보장정책 이후 지니계수 변동치는 0.066. 이런 변동치는 오스트레일리아 0.157, 미국 0.111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치로 세금징수와 사회복지 지출 등이 거의 소득분배 개선에 효과가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수치다.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는 “하지만 이런 지니계수조차도 우리나라에선 실제 소득불평등 구조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 소득통계는 음성소득을 반영치 않고 있기 때문에 상층일수록 소득통계가 저평가돼 지니계수를 그대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게 이 교수의 지적이다.

이 교수는 또 “조세정의 확립을 통해 사회보장 예산을 확충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류정순 박사는 “우리 사회도 조만간 분배왜곡에 따른 계층갈등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평등과 나눔의 정신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모두 더불어 잘사는 사회는 바로 이런 나눔의 정신이 꽃피는 사회가 아닐까?

이창곤 기자goni@hani.co.kr

김영배 기자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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