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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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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모병제를 준비하자

등록 2002-09-18 15:00 수정 2020-05-02 19:22

적절한 월급은 사병의 인간 존엄성 회복과 예비역들의 박탈감을 해소하는 첫걸음

대학가에서는 올해 말 대통령 선거에서 만약 이회창 후보가 당선될 경우 강력한 집단적 병역거부운동을 벌이겠다는 이야기가 나돈다. 올 초 인기가수 유승준씨의 미국 국적 취득으로 인한 병역면제 파동에서도 볼 수 있듯 병역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언제나 뜨거운 쟁점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군대 가는 사람들은 인생의 가장 화려한 시기에 큰 고생을 하는데, 여러 가지 사유로 병역을 면제받는 사람들의 수는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국민개병제? 빈민개병제!

현역은 괴롭다. 육군 26개월, 해군 28개월, 공군 30개월이라는 복무기간도 길지만, 내무생활도 힘들다. 군대 좋아졌다는 이야기는 20여년 전 필자가 군복무를 할 때도 늘상 들은 이야기고, 지금도 계속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군대는 좋아져야 할 여지가 너무 많다. 우리 군, 특히 사병들의 복무여건을 이대로 두었다가는 병역의무에 대한 거부감만을 증폭시킬 뿐이다. 상류층 자제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줄줄이 병역면제를 받는 현실에서 우리의 국민개병제는 허울뿐이고, 사실은 ‘빈민개병제’가 되었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온 지 오래다. 현역복무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폭발 직전이다.

우리 헌법 39조 1항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라고 되어 있다. 국방부나 병무청이 병역의무의 정당성을 내세울 때 금과옥조로 여기는 조항이다. 그런데 우리는 39조 1항뿐 아니라 그 뒤에 나오는 39조 2항을 기억해야 한다.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사문화된 이 조항을 우리는 되살려야 한다. 그것이 현재 상류층 자제의 병역비리로 인해 야기된 병역의무에 대한 거부감을 해소하는 유일한 길이다.

1956년 2070만명이던 우리나라 인구는 2000년에는 4700만명을 넘어섰다. 그 사이 군대의 규모는 거의 비슷하게 유지돼왔으나 사병의 복무기간은 33개월에서 26개월로 고작 7개월 줄어들었다. 인구가 2.27배 늘어난 사이 군대의 규모가 일정하다면 복무기간은 14.5개월로 줄어들어야 계산이 맞다. 정부는 군복무기간을 줄여 병역의 형평성을 꾀하는 대신 각종 병역특례나 면제자를 양산해온 것이다. 1956년과 견줘보면 현재의 사병들은 26개월의 복무기간 중 자기 몫 14.5개월의 복무를 한 뒤, 1년 가까이 남의 몫의 군대생활을 하는 셈이다.

과도하게 긴 복무기간의 단축과 아울러 사병들의 복무여건에서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그들이 받는 월급이다. 월급이라 불러야 할지, 용돈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지만 그들이 한달에 받는 돈은 평균 2만원에 못 미친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자신이 받는, 또는 자신이 버는 돈에 의해 존재가치가 결정되는 게 현실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이나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교과서에 나오는 당위는 돈이 지배하는 현실 앞에선 무력하기 짝이 없다. 2만원이라면 하루 일당으로 666원. 8시간 근무에 1시간 야간보초를 선다고 치면 시간당 74원이다. 사병들은 사실 24시간을 다 바치고 있으니 24시간으로 나누면 시간당 28원이 채 안 된다. 21년 전 필자가 이등병이 되었을 때 첫 월급이 2700원이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이 얘기를 했더니 한 미국인 동료가 “음, 괜찮네”라고 말한다. 어이가 없어 쳐다보니 그 친구도 무언가 잘못됐느냐는 표정으로 “시간당 2700원이면 그다지 나쁜 조건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이럴 땐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대만 사병들조차 40만원을 받더라

가장 중요한 액수 문제만 빼놓으면 사병들의 월급은 아주 조건이 좋다. 필자도 이등병 시절 2700원이던 월급이 병장을 달자 4500원으로 무려 67%가 올랐다. 2년 사이에 봉급의 3분의 2가 오르는 직장은 찾아보기 힘들다. 임금 체불? 걱정할 필요 없다. 단 한번도 정한 날에 월급이 안 나온 적 없이 꼬박꼬박 나온다. 게다가 3개월마다 월정액의 50%씩 보너스도 거르지 않고 나온다. 정리해고나 명예퇴직은 제발 시켜주었으면 해도 시켜주지 않는다.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는 월급의 10%를 일률적으로 삭감해 국민경제 회복에 혁혁한(!) 기여를 하기도 했다. 벼룩의 간을 내어먹는다는 말에 한마디로 “딱 걸렸어”다.

지난해 필자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운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만을 방문해 대체복무제도를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가장 충격을 받은 부분은 대만 사병들이 우리 돈으로 40만원 가까운 월급을 받는다는 점이었다. 대만은 경제규모도 우리와 비슷하고, 거대한 중국을 미군의 주둔 없이 상대하고 있어 안보여건이 우리보다 나쁘면 나빴지 좋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 사병들이 26개월 동안 월급과 보너스를 꼬박 모아야 할 금액을 한달 월급으로 받고 있다니! 그 전까지는 필자도 우리 국민 거의 모두와 마찬가지로 징병제니까 사병들의 월급은 생각할 여지가 없는 문제라고 여겼다.

현재 2만원도 안 되는 사병들의 월급은 월급이라 부르기가 낯간지러울 정도로 터무니없이 적다. 2000년 초 헌법재판소가 하위직 공무원 시험에서 제대군인들에게 부여된 5%의 가산점을 위헌이라고 판결했을 때 전국의 예비역들은 놀라운 전우애를 과시해 헌법재판소와 여성단체의 홈페이지를 초토화시켰다. 당시 예비역들의 분노는 방향이 잘못됐을 뿐 충분히 이유가 있는 것이다. 군가산점이란 정부가 군복무를 마친 사병들에게 해준 유일한 배려였기 때문이다.

나라살림이 어려운데 징집된 사병들에게 월급을 꼭 줘야 하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유당 정권 말기인 1960년 3월을 기준으로 하면 병장의 월급은 120환. 현재의 9급 공무원 초임에 해당하는 5급 26호봉이 360환이었으니, 병장 월급은 공무원 초임의 3분의 1이었다. 당시 준장의 월급(기본급)은 1200환으로 병장은 준장 월급의 10분의 1 수준이다. 또 당시 이등병(60환)과 대장(1800환)의 월급 격차는 1대 30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금 그 격차는 수백배다. 나라살림이 어려우면 자유당 때가 더 어려웠다. 그 뒤 경제성장의 과실은 다 어디로 갔나? 정말 우리 군대가 많이 좋아진 것인가? 사병들의 교육수준과 인권의식은 크게 신장했지만 상대적인 복무기간과 처우는 뒷걸음질쳐도 한참을 뒷걸음질쳤다.

인해전술 쓸 일 있나?

현역으로 복무하는 사병들은 돈을 내는 것은 아니지만 몸으로 때운다.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함으로써 현물조세 형태의 병역세를 부담하는 것이다. 반면 면제자들, 특례자들, 그리고 상당수 대체복무자들은 현역보다 좋은 조건에서 경우에 따라서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이나 여가생활을 향유하며 정상적인 월급까지 받는다. 1990년대 초반 국방연구원이나 육군사관학교 논문집에 실린 논문들을 보면 2000년대가 되면 징집사병들에게도 지원병(부사관) 수준의 처우를 해주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1993년의 한 연구는 당시의 물가를 기준으로 24만원이라는 구체적인 금액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실현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가까운 장래에 재론될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다. 휴가 나오면 가족에게 손 벌려야 하고, 제대 뒤 복학하거나 취업하려면 막막하기만 한 사병들에게 최소한도의 월급을 지급하는 것이 그렇게 불가능한 일일까?

이제는 우리도 모병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더구나 상류층의 병역비리가 연일 방송과 신문을 장식하면서 현역으로 복무했고, 복무하고 있고, 또 앞으로 복무해야 할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극에 달했다. 이런 처지에서는 징병제가 갖고 있는 장점은 전혀 살릴 수 없다. 모병제를 채택하면 물론 초기에 돈이 많이 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징병제의 낭비도 생각해야 한다. 한창 학업에 정진하거나 생산활동에 종사할 나이의 청년들을 26개월간 군에 잡아두는 것은 국가 경제적인 면에서 매우 불합리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70만에 육박하는 대군에다 300만의 예비군, 500만의 민방위를 갖고 있다. 인해전술을 쓸 게 아니라면 이런 방대한 규모를 유지할 까닭이 없다. 현대전에서 병력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초등학교 학생들도 다 아는 상식에 속한다.

1980년부터 1995년 5월 말까지 15년 5개월 동안 군복무 중 사망한 사람은 자살 3263명, 폭행치사 387명 등 모두 8951명에 이른다. 연평균 577명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우리 군은 전쟁을 치르지 않고서도 5년마다 1개 연대 병력을 잃는 셈이다. 걸프전 당시 미군쪽 사망자가 전사 148명, 사고사 121명으로 모두 269명에 지나지 않은 것에 견준다면 이 같은 손실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엄청난 것인지 알 수 있다. 1990년대 후반 들어 사망자 수는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1996년 330명, 1997년 273명, 2000년 182명 등 평균 200∼300명선에 육박한다.

청년실업의 문제와도 연관

군당국이 안전사고를 줄이려 많은 노력을 기울임에도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제한적인 공급이 가능한 징병제 아래서 사병들의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병들에게 정당한 월급을 지급함은 ‘신성한 군복무’를 수행하는 사병들의 인간적 존엄성을 회복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현역으로 군에 복무한 적이 있는 사람들은 지긋지긋하게 땅을 파고, 사회에서라면 상상하기도 힘든 의미 없는 사역에 동원된 기억이 많을 것이다. 1960∼70년대에 비해 크게 개선되기는 했지만, 과거 사단장쯤 되면 백만장자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많은 병력을 관사에서 부릴 수 있었다. 만약 사병들에게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이 지급되면 사병들을 무의미한 사역에 동원하는 일 따위는 당연히 사라질 것이다. 이는 병력의 합리적인 운용에도 큰 도움이 된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청년 실업의 문제, 특히 고졸 실업의 문제는 군대 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의무적인 군복무가 청년들의 실업을 방지하는 효과를 갖고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취업하자마자 일할 만하면 군대 가야 하는 사람들을 정당한 조건에 기꺼이 채용할 고용주는 별로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학력을 과도하게 반영하는 선병 기준에 따라 고등학교 중퇴 이하의 학력을 가진 이들은 군대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고, 또 사회에서의 취업 기회도 마땅치 않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운동이 이 땅에서 넘어야 할 산은 많지만, 가장 어려운 문제는 국방부나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의 반발이 아니다. 오히려 더 큰 어려움은 현역으로 복무한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이다. 그리고 이 박탈감은 너무나 정당한 이유가 있다. 문제는 분노의 대상은 평생을 전과자로 살 각오를 하고 양심의 명령에 따르기로 한 병역거부자들이 아니라, 불합리하고 불공평한 제도와 그런 제도를 강요해온 대한민국 정부가 돼야 할 것이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한국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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