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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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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블루’ 시대 심리 방역 하는 법

신체는 멀리, 마음은 더 가까이하고
믿을 만한 정보에 집중하되 혐오·비난은 멈춰라
등록 2020-03-28 13:25 수정 2020-05-02 19:29
한 시민이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지하철 역사에 비치된 손소독제로 손을 닦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한 시민이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지하철 역사에 비치된 손소독제로 손을 닦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집에만 있으니 애들이 미쳐간다.”
초등생 셋을 키우는 한 학부모의 푸념이다. 코로나19는 개개인의 반복된 일정이 쌓아온 ‘일상’이라는 톱니에서 바퀴 하나씩을 빼갔다. 바이러스로 시작된 ‘사회적 거리 두기’로 사람들은 멈추고, 중단하고, 단절했다. 특히 정시에 시작해서 정시에 끝나는, 반복된 삶을 사는 이들의 일상이 바뀌었다. 출근하던 직장인과 등교하던 학생은 각각 집을 회사와 학교로 삼게 됐다. “일어나라”는 등교 전 부모의 잔소리는 “온종일 휴대전화만 보냐”는 한탄이 됐다. 출근하지 못한 직장인은 유치원을 가지 못한 아이가 하루 종일 뛰는 층간 소음에 시달리며 사실상 ‘자가격리’ 재택근무를 이어간다.
코로나19가 만든 ‘비일상의 일상화’로 경제부터 심리까지 사회적 우울 현상(코로나 블루)을 겪고 있다. 때론 불안함이 분노로 바뀌기도 하지만 우리는 또 다른 비일상을 일상처럼 살아내고 있다. ‘코로나 블루’는 봄이 되면 ‘그린’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까.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삐-삐-.”

휴대전화 긴급재난문자 알림음이 울린다. ‘(××구청) 코로나19 ×번째 확진자 발생’. 김미진(37)씨는 이 알림음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또 어디에서 확진자가 나왔나’ ‘집 근처에서 확진자가 나온 건 아닌지’ 불안한 마음에 문자를 확인한다. 그런 그를 보고 초등학생 아이가 묻는다. “엄마, 확진자 또 나왔어? 개학 또 미뤄져?”

김씨는 초등학생 2학년, 5학년 두 아이와 종일 집에만 있다. “되도록 나가지 않으려 해요. 마트에서 장 보는 대신 인터넷 배송을 하고 외식도 안 해요. 아이들도 ‘코로나 걸릴까봐 무섭다’고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아요.”

조사 한 달 만에 ‘분노’ 감정이 3배 늘어

‘집콕 생활’이 두 달째 되니 몸도 마음도 힘들다. 항상 가슴이 답답하고 뭘 먹어도 기운이 없다. 잠도 푹 못 자고 자주 깬다. 김씨는 무엇보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는 게 제일 불안하단다.

이금숙(71)씨도 코로나19로 노인복지관이 문을 닫자 한 달째 집에서만 지낸다. 창살 없는 감옥 생활 같다. 혼자 사는 이씨는 나갈 일이 없으니 어떤 날은 사람들과 한마디도 못할 때가 있단다. 관절염으로 물리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밖에 나가는 게 겁나 병원에도 가지 않는다. 감염 공포 때문이다. “혹시라도 병원에 가서 옮을까봐 못 가고 있어요. 집에 가만히 있으니 이곳저곳 다 쑤시고 아픈 것 같고. 속도 답답하고. 병이 더 생긴 것 같아요.”

코로나19 국면이 장기화하면서 불안과 우울을 호소하는 이가 늘고 있다. 이런 우울한 감정을 ‘코로나 블루’(Corona Blue)라고 한다. ‘코로나19’와 우울증을 뜻하는 ‘블루’를 합친 말이다. 실제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에는 2월6일부터 3월24일까지 코로나19와 관련해 심리상담을 한 이가 4283(25개 자치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집계)명에 이르렀다. 그중 코로나19 자가격리자는 1431명, 일반인은 2852명이다. 무료로 코로나19 상담을 하는 한국심리학회 코로나19특별대책위에도 하루 10건 이상 상담이 접수되고 있다. 상담자들은 감염에 대한 불안과 공포, 외출 자제로 인한 답답함, 경제적 어려움 등을 호소했다.

코로나19 공포는 일상을 잠식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 연구팀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1~3월 전국 1천 명에게 한 ‘코로나19 관련 국민위기 인식 설문’ 1차 조사(1월31일∼2월4일)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이 절반 이상 정지된 것으로 느낀다”는 응답이 48%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초기 때의 대답이다. 같은 연구팀이 코로나19 위기대응 단계가 심각으로 격상된 뒤 진행한 2차 조사(2월25∼28일)에선 같은 질문의 응답이 59.8%로 1차 때보다 11.8%포인트 올랐다.

감염병 출몰 초기와 현재 코로나19에 대한 시민들의 감정 양상도 달라졌다. 1차 조사 때는 코로나19 뉴스를 보면 떠오르는 감정으로 불안(60.2%)이 가장 컸고 공포(16.7%), 충격(10.9%), 분노(6.8%)가 뒤를 이었다. 2차 조사에선 불안(48.8%) 뒤를 분노(21.6%)가 차지했다. 충격(12.6%), 공포(11.6%), 슬픔(3.7%), 혐오(1.7%)가 뒤를 이었다. 조사팀은 사망자가 늘고 예방 수단으로 권고한 마스크를 구할 수 없고 자가격리 수칙을 어기는 이들의 소식을 접하며 분노가 커진 것으로 분석했다.

코로나19 물리적 방역만큼이나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는 ‘심리 방역’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과거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처럼 경제적인 재난과 달리,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은 신체적인 재난이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더 크다. 피로감, 두통, 가슴통증, 어지러움, 소화불량, 호흡곤란 등 다양한 스트레스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뜻한 봄이 와도 마스크를 쓰고 나들이 나온 시민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코로나19 확산에 따뜻한 봄이 와도 마스크를 쓰고 나들이 나온 시민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어른의 부정적 반응에 아이들은 더 불안하고 화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대한정신건강재단 재난정신건강위원회,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는 ‘코로나19 심리 방역을 위한 마음건강 지침’을 만들었다. 지침서에는 ‘혐오는 도움이 안 된다’ ‘가족·친구·동료와 소통을 지속한다’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등의 내용을 담았다. 국가트라우마센터에서도 감염병 스트레스 대처법으로 힘든 감정 털어놓기, 자신의 몸과 마음 돌보기, 격리환자의 불안 해소 도와주기 등을 제시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홍보기획위원회 홍나래 이사(한강성심병원 정신과 전문의)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는 감염 스트레스가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알고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재난을 겪으면 몸과 마음의 변화나 고통이 생길 수 있고 이런 스트레스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정상 반응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이 불안을 어떻게 다스리냐는 것이다. 정신건강 대처법에서 첫째는, ‘믿을 만한 정보에 집중하라’이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사람들은 최대한 많은 정보를 모아 불안을 해소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잘못된 정보는 오히려 스트레스를 가중하고 올바른 판단을 방해한다. 질병관리본부에서 발표한 정확한 정보를 보고 다양한 뉴스를 선별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홍나래 이사는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장을 받는 수준이라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자신의 상태에 대한 평가와 적절한 치료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시기를 놓치면 회복과 일상 복귀가 더뎌질 수밖에 없다.

감염병이 유행할 때 마음건강을 돌봐야 할 취약계층 중 하나는 소아청소년들이다. 어른들의 불안이 아이들에게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 소아청소년기에는 스트레스 반응이 어른과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미취학 어린이는 야뇨증이나 손가락 빨기, 낯선 이에 대한 공포, 공격성, 어른에게 매달리기, 짜증, 과잉행동, 감염병 이야기 반복해서 하기, 먹고 자는 습관의 변화, 설명하기 어려운 통증 등 문제행동을 보인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재난트라우마위원회 김은지 이사는 부모들이 코로나19 확진자 등 타인을 향한 혐오나 편견이 내포된 표현을 사용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다른 이들을 향한 혐오와 비난의 말을 들은 아이들은 더욱 불안해하고 다른 이들을 향해 분노감을 키워요.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고 사회성 발달에 영향을 줍니다.”

‘#아무놀이챌린지’ 하고 사색하고

등을 펴낸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는 개학 연기, 재택근무 등으로 가족이 한 공간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부모와 자식, 부부 관계에서 갈등을 호소하는 이도 많다고 한다. “재난 같은 위기가 닥치면 사람들이 마음의 여유가 없고 자기중심적이 돼요. 유아적 애착이 커지는 등 심리적 퇴행을 합니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예전보다 많이 화내고, 공격적으로 변해요. 이럴 때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이야기하는 게 먼저입니다.”

문요한 전문의는 불안과 우울감이 커질 때 “마음의 환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땅에 닿는 발바닥의 감각을 느끼고 척추의 움직임에 집중하며 집 주변을 산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코로나 우울증을 떨쳐버릴 방법을 찾는 사람도 많다. ‘달고나 커피’ 만들기부터 #아무놀이챌린지 등 새로운 놀이가 유행하고 있다. #아무놀이챌린지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부모가 놀아주는 모습을 영상이나 사진을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것이다. 색종이접기, 요리하기, 종이컵으로 성 쌓기 등 다양한 놀이가 있다. 인스타그램에 #아무놀이챌린지 게시물이 1만여 건 있을 정도로 인기다.

이철민(37)씨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짬짬이 아이들과 다양한 놀이를 한다. #아무놀이챌린지에서 본 보자기를 이용한 슈퍼맨놀이, 딱지치기, 물감놀이 등을 한다. “어떻게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 할지 막막할 때, 다른 분들이 올린 놀이법을 찾아봐요. 밖에 나갈 수 없으니 아이들이 짜증을 자주 내는데, 이렇게 다양한 놀이를 하면 그나마 애들이 차분해져요. 저 역시 한결 기분이 나아지고요.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다른 부모들도 집에서 애쓰고 있구나, 위안도 되고요.”

고립의 시간을 사색의 시간으로 바꿔보려는 이들도 있다. 각자의 공간에서 다양한 코로나19 심리 방역전이 일어나고 있다, 이진희(29)씨는 친구들과 차 마시며 수다 떨기, 쇼핑하기, 헬스장에서 운동하기 등 당연하게 여겼던 소소한 일상이 그립다. “회식도 안 하고 친구들 약속도 못 잡으니 혼자 보내는 저녁 시간이 많아졌어요. 헬스장도 문 닫고 나가지도 못하니 강제 집순이가 됐어요. 코로나19 뉴스만 보면 계속 우울해지니 혼자 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을 찾아요. 주변 사람들도 명상하거나 그림 그리기, 책을 읽는다고 해요.” 요즘 이씨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명상하거나 요가 홈트(홈트레이닝)를 한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는 ‘마음 백신’이다.

‘외상 후 성장’할 수 있을까

아울러 재난 상황에서 리질리언스(회복력)를 높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책 에서는 개인적인 지지 체계인 가족의 지지를 강조한다. “가족의 온정, 친밀함, 격려, 지원과 돌봄이 바탕이 되어야 개인의 긍정적인 내적 특성이 더욱 잘 발휘되고 리질리언스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친구, 직장 동료, 지역사회 같은 지지 체계를 통해 고통스러운 경험을 주변과 함께 나누고 정서적 지지를 받는 긍정적인 관계를 맺는 것도 중요하다. “사회적 지지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견딜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외상 후 성장이 일어날 수 있게 돕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신체적 거리 두기를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더욱 가까워야 할 때다. 문요한 전문의도 “사회적으로 공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논쟁의 대화가 아닌 연결의 대화를 해야 합니다. 고통과 불안을 이겨나가는 가장 좋은 심리 방역은 ‘연결과 협력’이에요”라고 강조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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