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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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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자가격리자는 어떡해야 하나요

세심함이 아쉬운 장애인 재난 대책, 무료 급식소·진료소 운영 중단된 쪽방촌
등록 2020-02-29 05:24 수정 2020-05-07 01:39
2월26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 단체가 ‘장애인 인권이 없는 차별적인 코로나19 대응, 국가인권위원회 긴급구제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2월26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 단체가 ‘장애인 인권이 없는 차별적인 코로나19 대응, 국가인권위원회 긴급구제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재난 상황은 모두를 힘들게 하지만 취약계층에게 더 가혹하다. 바이러스도 마찬가지다. 장애인·노인·빈곤층 등 취약계층은 바이러스 공격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 감염병과 총력전을 벌이다보면 취약계층은 종종 ‘투명인간’으로 취급될 수 있다. 부족한 사회 자원을 배분하는 데 우선순위에서 밀리기도 한다. 재난이 터지고 난 뒤에야 취약계층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정부 매뉴얼의 허점이 노출된다. 감염병에 걸리든 걸리지 않든 취약계층은 상황이 지속될수록 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우리 사회가 ‘소를 잃고 나서라도 외양간을 고쳐’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문 앞에 생필품 두고 전화로 상태 확인 중

“배달 앱(애플리케이션)으로 주문해서 문 앞에 놓고 가라고 해요. 거의 기어서 이동할 수밖에 없어요. 하루에 한 번 정도 밥 먹고 있어요. 그 외에는 집에 있는 미숫가루 같은 걸 먹고요.”

휴대전화로 대구에 사는 지체장애인 김아무개(37)씨의 한숨이 들려왔다. 그는 2월23일부터 자신의 집에서 홀로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그가 일하는 ㄱ장애인자립생활센터 동료의 활동지원사 1명이 코로나19가 확진됐다고 2월23일 센터에 통보했기 때문이다. 해당 직원과 같은 공간에 있거나 접촉한 것으로 파악된 사람(직원, 센터 이용자)은 29명. 이 가운데 김씨 같은 장애인은 13명이다. 센터는 사무실을 폐쇄하고 지자체에 문의한 뒤 자체적으로 29명의 자가격리를 시작했다. 가족과 살지 않고 비장애인 활동지원사 서비스를 통해 일상을 영위하던 중증장애인 8명에게 빨간불이 들어왔다. 자가격리에 들어가면서 기존에 함께하던 활동지원사와의 접촉도 차단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대비하는 정부나 지자체의 매뉴얼은 없다. 보건복지부는 2월21일 각 지자체에 ‘장애인활동지원 서비스 유지를 위한 개별지침’을 내리긴 했다. 장애인이 자가격리 대상자가 되면 의료인·사회복지사·활동지원사가 대기하는 시도별 격리시설로 이동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장애인이 집에서 자가격리할 경우 24시간 활동지원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재난 상황에서 갑자기 나온 지침은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대구에는 2월26일까지 장애인들을 위한 별도의 격리시설이 마련되지 않았다. 24시간 활동지원은 장애인들이 활동지원사를 구하지 못해 사실상 불가능하다. 민간위탁으로 운영되는 활동지원사를 갑자기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24시간 지원이 가능해도 월별로 장애 정도에 따라 할당되는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을 초과할 수 있는데 지침은 이에 따른 활동지원사 추가 급여에 대한 명확한 대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장애인 단체들은 자가격리 기간(2주)에 한해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을 별도로 편성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결국 복지부는 2월27일 지자체에 추가 지침을 내렸다. 대구는 두 곳에 격리시설을 마련하고, 자가격리 기간 활동지원사 급여도 지자체와 정부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하지만 추가 지침에는 활동지원사의 안전 확보와 별도의 위험수당을 지급하는 방안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전근배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은 “활동지원사에게 안전을 담보하는 근무조건이 제시돼야 하는데 별다른 유인책이 없다. 갑자기 사람을 구하는 것이 어렵다”고 상황을 전했다.

20분 끝낼 일이 1시간 넘게 걸려

ㄱ센터는 자구책으로 장애인 자가격리자 6명을 비장애인 자가격리자(센터 직원) 4명이 나눠서 담당하는 방식으로 각각 주택에서 자가격리를 하고 있다. 비장애인 직원이 활동지원사 구실을 하는 것이다. 김씨를 포함해 나머지 2명의 중증장애인(센터 직원)은 “센터 이용자(장애인)들이 우선이다. 우리는 직원이니 버텨보겠다”며 각자 자신의 집에서 홀로 자가격리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지원은 대부분 센터 스스로 해결하고 있다. 자가격리 대상이 아닌 센터 직원이 이들 집을 돌며 문 앞에 생필품을 놓아두고 전화로 건강상태를 확인 중이다.

앞서 대구 장애인 4개 단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마스크, 손소독제, 소독 스프레이 등을 구입해 대구로 보내주시길 부탁드린다”는 호소글을 올리기도 했다. 다행히 각 지역에서 여러 물품을 십시일반으로 보내 당장 사용할 물량은 확보했지만 사태가 길어지면 다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대구시와 보건소는 2월25일 장애인들에게 자가격리 대상자라고 공식 통보하고 긴급 구호물품을 보내며 이들을 공적 체계에서 관리하기 시작했다.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김씨는 두 팔과 두 다리의 활동이 자유롭지 않은 지체장애인(1급)이다. “가족이 오고 싶어 하는데 자가격리라고 못 오게 했어요.” 그는 5년여 전부터 자립생활을 이어왔다. “화장실 이용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요. 혼자 있어도 씻어야 하잖아요. 활동지원사랑 함께 하면 20분 만에 끝날 일이 1시간 넘게 걸리더라고요.” 그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죽지 않을 만큼 생활하고 있는 건데 답답하기도 하고 증상이 나타날까봐 공포감도 있어요. 집에서 곤란한 일이 생기면 제가 혼자 대처하기 어려우니 걱정도 돼요.” 김씨의 경우와 달리 지적·발달장애인 자가격리자들은 코로나19 위험성과 감염예방수칙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어 답답함을 호소한다. 이들은 2월27일 현재까지 코로나19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연희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은 <한겨레21>과 한 전화 통화에서 “대구 상황이 어쩔 수 없다보니 각 단체나 기관들이 자체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다. 이번 일을 겪으며 시스템이 없는 상황에서 위기에 처했을 때 장애인들이 고위험군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예전에도 지진이나 화재가 벌어지면 장애인이 대피와 정보 습득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가 드러났잖아요. 이번에도 역시나….”

이들에게 벌어진 일은 비상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장애인 단체들은 현재 상황에 ‘기시감’을 느낀다. “또 다른 감염병이 생기기 전에 인력체계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놓지 않으면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4년 내내 이야기했는데 결국 똑같은 상황이 발생한 거죠.”(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

코로나19 사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2월4일 한 시민이 서울 종로구 한 무료급식소에 붙은 임시휴업 안내문을 보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코로나19 사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2월4일 한 시민이 서울 종로구 한 무료급식소에 붙은 임시휴업 안내문을 보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16일 만에 브리핑에 수어통역사 배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MERS)이 퍼지던 2015년 6월, 뇌병변장애(1급)와 시청각장애 등 중복장애가 있는 ㄴ씨가 신장투석 치료를 받던 서울의 한 병원에서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했다. 지역 보건소는 ㄴ씨에게 자가격리 대상자임을 알렸고,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ㄴ씨에게 별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활동지원서비스 중단을 통보했다. 활동지원사 2명이 월 300시간 ㄴ씨의 식사와 목욕, 화장실 이용, 통원 치료 등을 보조했는데 하루아침에 서비스가 끊긴 것이다. 같이 살던 고령의 노모가 ㄴ씨를 감당하기는 벅찼고 자가격리 14일 동안 ㄴ씨는 고통과 불안에 시달렸다고 한다.

당시 ㄴ씨와 같은 병원에서 신장투석 치료를 받던 지체장애인(2급) ㄷ씨는 자가격리 대상자가 되기 전 활동지원사가 감염을 우려해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고 서비스를 중단했다. ㄷ씨는 지자체, 보건소 등에서도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했다. 홀로 지내며 활동지원사에게 전적으로 의존해 생활하던 그는 투석 치료를 위해 메르스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스스로 병원에 입원했다.

2016년 10월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장애여성공감 등은 ㄴ씨와 ㄷ씨를 대리해 정부를 상대로 차별 구제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하고 ‘감염병 위기관리 표준매뉴얼’을 작성하고 운영하라는 요구였다. 사전에 대책을 마련해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하자는 취지다. 재판 과정에서 감염병 확산시 장애인을 고려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2018년 1월 재판부는 주무 부처인 복지부에 “정부 대책에 장애인 등 감염 취약계층의 특수성을 고려한 내용을 포함하라. 이를 원고 소송대리인에게 통보하라”는 조정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정부법무공단 변호인을 통해 “정부는 장애인 안전 종합대책을 마련해 시행할 예정이다. 별도의 조정안을 마련해 정책을 수행할 필요성은 크지 않다”는 입장을 밝히며 조정안을 거부했다. 현재까지 정부의 장애인 안전 대책이나 감염병 위기 매뉴얼에는 장애인을 고려한 사항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원고 쪽 홍석표 변호사는 “정부 대책에 필요한 항목들을 넣자는 것으로 이 정도면 복지부도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여전히 소송이 진행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경주(2016년)·포항(2017년) 지진과 지난해 4월 강원도 산불에서 장애인·고령층 등 재난 약자를 위한 안전 시스템의 허점이 노출됐는데, 이번에도 사태 초기 같은 문제가 되풀이됐다. 앞서 재난 발생 초기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통역이 제공되지 않아 장애인의 정보 접근이 문제가 됐는데, 이번에도 정부의 코로나19 일일브리핑은 첫 브리핑을 시작한 지 16일 만인 2월4일 수어통역사를 배치했다. 하지만 방송 화면에서 수어통역사가 잡히지 않는 일도 벌어졌다. 장애인단체들의 요구로 질병관리본부 콜센터(1339)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카카오톡 문자상담 서비스(오전 9시~오후 6시)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요양시설 못지않은 사각지대

코로나19 지역사회 확산이 지속할수록 취약계층의 불안은 커지고 감염병 재난 안전시스템의 ‘구멍’은 하나둘씩 노출된다. 2월26일 대구 쪽방상담소와 대구·경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는 대구의 쪽방촌 700여 곳을 돌아봤다. 감염을 우려해 2m 이상 떨어진 상태에서 말하거나 문밖에서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주민들의 건강상태를 점검했는데 특이 증상이 있지는 않았다고 한다.

점검에 참여한 한 인의협 소속 의사는 <한겨레21>에 “코로나19 사태로 무료급식소만 운영을 중단한 게 아니라 무료진료소도 운영을 못하고 있다. 쪽방촌에 거주하는 분들 가운데 만성질환을 앓는 분들의 경우 급식이 안 돼 제대로 먹지 못하고 거기에 치료도 받지 못하는 상태이니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봐야 한다.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밀폐된 곳이라 만에 하나 감염되면 예기치 못한 상황에 몰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자원봉사자들의 방문도 뜸해져 반찬 등 먹거리 제공이 안 돼 돌봄 서비스의 필요성도 크다고 한다. 이는 코로나19로 대구뿐만 아니라 전국의 쪽방촌 주민이나 노숙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기도 하다. 그는 취약계층 관리가 앞으로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행정력이 미칠 여력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쪽방 상담소랑 인의협에서 나서긴 하는데 이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이미 정신병동이나 요양시설 등에서 집단감염이 나오고 있는데 이에 못지않은 사각지대가 쪽방촌이죠. 앞으로 전염을 막고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사각지대를 보살펴야 합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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